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 우리는 연관성 초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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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 우리는 연관성 초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 김용찬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 승인 2023.03.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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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포스트매스미디어: 연관성 위기에서 초위기로』 (김용찬 지음, 컬처룩, 576쪽, 2023.02)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알파고, 메타버스에 이어 미드저니나 챗GPT 같은 생성형 AI에 대한 열풍이 우리 사회에 불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혁명적’이라는 수식어도 부족한 것으로 만들 지경에 이르렀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나침반과 지도가 필요하다. 그런 나침반과 지도가 될 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 <포스트매스미디어>이다. 이 책은 21세기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거기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논하기 위해 내가 그동안 작업해 온 미디어 이론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의 문제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읽을 수 있게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이 책의 내용은 미디어 사회 이론 연구자로서 내가 그동안 고민해 온 과제 중 하나인 미디어 환경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위한 기초 공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시작한 작업은 두 개의 후속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첫 번째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로 파악하고, 미디어로서의 도시가 디지털화되는 문제를 다루는 작업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사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일종의 ‘네트워크화된 부족 사회’들로 구성되어 가는지, 미디어 환경이라는 개념의 관점에서 그것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논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토대로 내가 세워 보려는 건물은 ‘미디어 환경’ 혹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란 개념에 대한 사회 이론이다. 미디어 환경이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란 말은 분명한 개념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수사적으로만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말들은 이론적 틀 속에서 체계적으로 개념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미디어 안에서’ 사는 것이라면 말이다. <포스트매스미디어>는 미디어 환경이라는 것을 어떻게 개념화할지에 대한 나의 오랜 고민을 담고 있다.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사람들은 기대와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의 미디어 환경이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괴한 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류는 20세기에 그 어떤 시대와 비교해도 특이하다 할 미디어 환경을 이미 경험했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백만, 수천만 명이 동시에 듣는 것이 가능했던 매스 미디어 시대는 사실 인류 미디어 역사에서 가장 돌출되고 기괴한 시대였다.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 올림픽 경기 장면을 매스 미디어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켜보았다. 매스 미디어 시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스 미디어 시대는 거대 담론의 시대였고, 일상의 이야기는 주변화된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사람들은 기술 발전을 토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미디어 경험을 하면서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는 중에 있다. 그런 중에 있는 우리는 한편에서는 최근에 이루어진 기술 발전을 토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미디어 경험을 하고 있다(뉴 미디어 기술에 관한 언론 기사는 대개 이런 것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매스 미디어 시대의 위계적 억압 체제 속에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관행을 다시 복구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가령 소셜 미디어가 그런 경우이다). 

비유를 써서 이야기하자면, 매스 미디어 시대는 고대 바빌론 제국 같은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빌론 제국은 모든 것을 제국의 사상, 종교, 언어, 문화에 표준화시키고 통합시키는 중앙 집중적인 체제를 갖췄었다. 바빌론 제국 시대에서처럼 매스 미디어 시대에도 모든 것이 중앙의 것으로 표준화되고 통합되었다. 변방의 힘없고 작은 목소리들은 사라지거나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바빌론 제국이 무너진 후에 페르시아 제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바빌론과는 다른 통치 방식을 택했다. 변방의 문화, 이야기, 언어, 종교를 존중하는 정책을 폈다. 

 

매스 미디어 시대가 저물어가는 오늘날, 마치 페르시아 제국 시기에서처럼, 변방의 작은 이야기들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엔 하찮게 여겼던 이야기를, 변방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집단지성과 네트워크의 힘에 연결된 개인들은 전보다 말할 수 없이 똑똑해지고 힘이 세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바빌론 제국 시대를 지나, 새로운 기대와 두려움으로, 페르시아 제국 시대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와 두려움으로 지켜보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나는 이 책에서 포스트매스미디어 혹은 혹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라는 이름으로 추적해 보려 했다. 

이 책을 나는 세 겹 구조로 설계했다.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돌아가도록 책 전체의 구조를 짰다. 첫 번째 이야기는 ‘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미디어란 말이 이제는 일상의 용어가 되었다. 21세기 초입의 시대를 미디어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미디어라는 말 자체가 과잉인 상태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봤을 때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이 미디어라는 개념이기도 하다. 미디어라는 말의 의미는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다. 그 말의 의미는 계속 흔들렸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흔들림의 역사가 미디어란 개념의 역사다. 

이 책에서 나는 19세기 이래로 미디어라는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통시적으로 살펴봤다. 그럼으로써 그 말의 쓰임새가 어떻게 혁명적으로 바뀌어 왔는지를 추적해 보려 했다. 그러고 나서 미디어에 들어 있는 다섯 가지의 하부 차원을 제시했다. 미디어의 다섯 가지 하부 차원은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이다. 미디어는 손으로 잡을 수 있고 우리 삶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도구’이기도 하고, 도구로서의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고, 전달받고, 저장하고, 퍼뜨리는 ‘내용’이기도 하고, 도구 미디어와 내용 미디어의 생산, 공유, 소비 과정을 조직하고 규제하는 ‘제도’이기도 하고, 다른 주체와 사물의 중간에서 미디어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주체와 사물을 불러 모아 서로 마주치고, 관계하고, 소통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사람으로서의 미디어’, ‘공간으로서의 미디어’란 말이 좀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세기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도달하기 전에는 미디어의 이런 쓰임새가 도구, 내용, 제도로서의 쓰임새보다 더 지배적이었다. 그것들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 다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두 번째 이야기는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은 과거 매스 미디어가 지배하던 시기의 연장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다른 시기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에 관해 이 책이 지닌 입장은 ‘둘 다’라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 시대의 연장이면서 또 그것과 구별되는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 우리가 사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특징이다. 20세기는 매스 미디어의 시대였다. 소수가 다수에게 한꺼번에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그 시기를 지배했다.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에는 여전히 매스 미디어 시대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다. 동시에 매스 미디어 시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시대의 미디어 환경을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고, 매스 미디어란 이름의 유산을 다시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미디어 시대를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로 부르려 한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 시대가 물러가는 모습과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가 오는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구체제는 물러가고 있으나 새로운 체제가 완전히 오지 않은 일종의 인터레그넘(왕의 부재 기간) 상태에 우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 오는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거기에는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도 있고, 매스 미디어 시대의 끈질긴 유산도 남아 있고, 어쩌면 모든 것을 삼켜 버린 매스 미디어 시대의 강렬함 때문에 사람들이 매스 미디어 시대 이전에 하다가 중단했던 것을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하는 것도 있다. 매스 미디어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의 전환을 나는 앞에서 언급한 미디어의 다섯 가지 차원과 연결하여 이야기했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포스트매스미디어로 건너가는 장면을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으로서의 미디어 등 관점을 달리하면서 살펴보았다. 

세 번째는 연관성(relevance)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나는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지금, 여기에 연관된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삶을 사는가’라는 연관성의 질문the relevance question으로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나/우리,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연관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연관성 위기를 겪는 것이다. 이 질문을 이 책에서 나는 앞의 두 번째 이야기와 연결시키면서 매스 미디어 시대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 각각에 연관성의 질문을 던졌다. 

나의 결론은 매스 미디어 시대는 ‘연관성 위기’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런 위기 속에서 무엇이 연관된 것인지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가 서로 분리되었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사람들이 나/지금/여기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면서도, 나/지금/여기와 연관된 것은 오히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연관성의 범주 밖에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반면 자기와 연관된 것들은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해야 했다. 그것을 나는 연관성 위기the crisis of relevance라고 불렀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도 연관성 위기 문제에 관한 비판적 지적이 계속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20세기 내내 연관성 위기 시대의 상흔을 계속 간직한 채 살아야 했다. 

미디어의 디지털화와 더불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가 도달하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연관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했던 일상의 ‘하찮은’ 이야기들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로 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새로운 문제의 징후가 보인다. 연관성 있는 이야기들이 만들어 내는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그 이야기를 실제 생산한 개인, 집단, 공동체가 갖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제삼자들(가령 플랫폼 기업)이 가져간다. 그런 과정에서 연관성 위기가 더욱더 뒤틀린 형태로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나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위기를 연관성 초위기(the super-crisis of relevance)라 불렀다. 연관성 위기와 초위기의 이야기를 나는 두 번째 이야기(매스 미디어와 포스트매스미디어)와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서 첫 번째 이야기(미디어의 다섯 가지 차원)와도 연결시켰다. 즉 연관성 위기와 초위기의 징후를 미디어의 다섯 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살펴보았다. 그렇게 이 책 안에서 나는 미디어, 시대, 연관성의 문제들이 삼중 구조로 만나도록 했다.

이 책을 나는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앞서 언급한 삼중 구조가 장들의 배치 안에 들어 있다. 2장과 3장은 미디어의 개념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장들이다. 4장, 6장, 8장은 연관성 문제와 관련된 장들이다. 5장과 7장은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로의 전환 문제를 다룬 장들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독자들이 미디어 문제를 사회 문제로 보고, 혹은 그 반대로 사회 문제를 미디어의 문제로 보는 틀을 제시하려 했다. 미디어와 사회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의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접근 가능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내가 여기서 제기하는 새로운 문제, 가령 미디어 개념의 다섯가지 차원,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의 구분, 연관성 문제 등은 동료 학자들과 함께 계속 논의하고 싶은 주제들이다. 미디어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읽고 냉철한 비판을 해 준다면 매우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현기증이 날만큼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 책이 나침반과 지도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부류의 독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김용찬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미디어 사회 이론 연구자로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다. 미디어, 도시, 위험 사회 분야를 연구한다. 연세대학교 ‘도시커뮤니케이션센터’의 센터장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아이오아대학교, 앨라배마대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포스트매스미디어: 연관성의 위기에서 초위기로》 외에, 《The Communication Ecology in the 21st Century Urban Communities》, 《The Candlelight Movement, Democracy, and Communication in Korea》, 《미디어와 공동체》(공저), 《뉴미디어와 이주민》, 《논문, 쓰다》 등이 있다.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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