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 교육의 접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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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 교육의 접근 방향
  • 정호범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학
  • 승인 2023.03.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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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요즘 우리는 ‘챗GPT’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이는 다국적 기업인 오픈AI(Open AI, openai.com)에서 2022년 11월에 개발·출시한 인공지능 챗봇이다. 챗GPT는 수백만 개의 웹페이지로 구성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사전 훈련된 대량 생성 변환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는 원하는 정보나 모르는 지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인공지능에 더 많이 의존하며 살아갈 것이다. 가히 AI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대처하는 학교교육 특히 ‘지식’ 교육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여기서는 AI의 문제점이나 한계 등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고, AI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 교육의 방향 전환에 대하여 검토한다.

그동안 학교교육에서 지식 교육은 어떤 방향에서 실천되어왔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벽돌쌓기’ 혹은 ‘양동이’ 논리로 압축될 수 있다. 그동안의 지식 교육은 포퍼(K. Popper)가 수동적 인식론이라고 부르는 ‘양동이 이론’(the bucket theory of knowledge)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양동이 이론이란, 관찰 결과로서의 증거를 많이 제시할수록 그만큼 지식의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이 지식 교육에 접목될 때 ‘벽돌쌓기식’ 지식 형성 논리로 귀결된다. 이는 곧 학생들의 머릿속에 많은 양의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을 교육의 기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벽돌을 높이 쌓아 올리듯이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을 교육의 기능으로 여긴다. 지식 교육에 대한 이러한 접근에는 다음과 같은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 현재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지식은 오류가 없는 진리이다. 둘째,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저장할수록 유능하고 현명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가 정말로 사실일까?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지식이 정말 무오류의 진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포퍼의 이론을 통해 살펴보자. 포퍼는 ‘모든 지식은 잠정적이며 가설적’이라고 말한다. 즉 절대 불변의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일지라도 그것이 현실의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류를 내포한 지식이다. 이때 그 지식은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은 성장한다. 이러한 포퍼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전제는 무너지게 된다. 첫 번째 전제가 무너지면, 두 번째 전제는 자동적으로 무너진다. 특히 AI 시대에서는 많은 지식을 우리의 머릿속에 일일이 저장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도로 발달한 지식의 저장고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AI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 교육은 어떤 변화가 요구될까? 이에 대하여, 우리는 두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학생들이 지식을 형성하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지식을 활용하는 관점이다. 전자는 학생들이 자신의 지식을 새롭게 형성하는 과정이고, 후자는 학생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지식을 수집·분석·활용하는 것이다. 후자는 특히 AI 시대를 맞이하여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지식과 정보가 범람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학생들이 지식을 형성하는 관점에서 요구되는 변화를 살펴보자. AI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 교육은 ‘벽돌쌓기식’ 방법에서 ‘오류 찾기’ 방법으로의 전환, 그리고 ‘양동이’ 논리에서 ‘조명등’ 논리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포퍼에 따르면, 모든 지식은 잠정적이다. 즉 모든 지식은 ‘반증 사례’(falsification example)가 나타날 때까지만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증 사례에 직면한 지식은 그 사례를 설명할 수 있는 지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기존 지식에 내포된 오류를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확장된다. 즉 우리가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은 언젠가는 다듬어지고 수정될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의 성장 과정에 대하여, 개나리의 개화를 사례로 살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개나리는 봄에 핀다”는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가을에 핀 개나리’를 발견할 때가 있다. 필자는 가을에 핀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물론 봄처럼 군락을 지어 활짝 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가을에 핀 개나리’는 포퍼가 말하는 반증 사례에 해당한다. 우리가 이러한 반증 사례를 접하게 되면, “개나리는 (봄이 아니더라도) 봄과 유사한 기후 조건에서 필 것이다”라는 가설을 추측할 수 있다. 즉 기온, 일조량, 습도 등 개나리의 개화 조건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나리는 봄에 핀다”는 기존 지식은 “개나리는 기온, 일조량, 습도 등이 어떠할 때 핀다”는 식으로 더욱 정교화 될 것이다. 포퍼는 이러한 과정, 즉 추측(conjectures)과 반박(refutations)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적 지식이 성장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렇게 추측과 반박의 과정을 통해 기존 지식에 내포된 ‘오류’를 찾아냄으로써 그 지식을 보다 정교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지식의 성장 과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포퍼는 ‘양동이 이론’을 배격하고, 인식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담보하는 ‘조명등 이론’(the searchlight theory of knowledge)을 주장하였다. 즉 주어진 감각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집하는 것보다, 어떤 이론이나 가설이 실제 상황 속에서 거부되는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곧 지식 탐구에 있어서 학생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와 역할을 더 중시하는 입장이다. 우리가 포퍼의 조명등 이론에 따라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그 현상을 관찰할 때 아무런 관점이나 생각 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관점, 안목)을 미리 설정한 다음에 그것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눈’이란, 군인들이 야간에 수색 작업을 할 때 적군을 확인하기 위하여 터뜨리는 조명탄 혹은 어부들이 밤에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 고기떼가 어느 곳에 모여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비추는 조명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식 교육에 있어서 ‘조명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곧 (기존)‘이론’이나 ‘법칙’ 혹은 학습자 자신이 내세우는 ‘가설’이 이에 해당한다. 학생들이 현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론이나 법칙을 인출해내거나 새로운 가설을 생성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눈’을 통해서 현상을 관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기존의 이론이나 가설이 기각될 수도 있고 더욱 발전될 수도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많은 지식(정보)을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하는 방법은 교육적 의미가 퇴색된다. 즉 많은 양의 지식을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하는 방법(주로 해설과 암기 방법)은 이제 역사의 유물로 남겨두게 되었다. 이 역할을 AI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AI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 교육의 두 번째 관점에는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가? 우선, 수많은 양의 지식과 정보가 범람하는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오류 찾기’를 통해 관련 정보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지식의 오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현실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확인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AI의 저장고에 존재하는 지식과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 후에는 그것들을 취사선택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여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AI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지식 교육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정호범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학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과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 한국사회교과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관심 분야는 사회과 교수이론, 가치교육, 지식교육, 과학철학, 정치철학 등이다. 『자유주의 철학과 가치관 형성 교육』, 『포퍼 철학이 사회과 교육에 주는 함의』,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수업까지』(공저), 『창의성 교육의 이론과 실제』(공저), 『초등학교 수행평가』(공저) 등의 저서와 사회과교육, 가치교육, 포퍼 철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포퍼 철학이 사회과 교육에 주는 함의』는 2022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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