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절망을 넘어 온몸으로 써낸 128편의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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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절망을 넘어 온몸으로 써낸 128편의 명시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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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시의 온도: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매혹적인 일침 | 이덕무 지음, 한정주 편역 | 다산초당 | 316쪽
 

조선 후기의 문인 이덕무는 자신의 삶을 거침없이 살다간 조선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불린다. 사상적으로는 북학파, 문학적으로는 백탑파였던 그는 청나라의 근대적 지식을 받아들였으며 성리학적 규범의 문장을 버리고 동심과 개성, 실험과 일상을 담은 시를 썼다. 이덕무는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학문을 갈고닦은 모습 때문에 ‘책만 읽는 바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또 지독한 독서 편력만큼이나 시에 대한 열정과 문장 실력, 탐구 정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다. 그는 조선의 정경을 그대로 담아낸 ‘진경 시’, 어린아이의 천진함 같은 ‘동심의 글쓰기’, ‘기궤첨신’이라 평가받은 참신하고 통찰력 있는 수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새로운 글의 영역을 개척하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던 이덕무에게 반해 그의 시를 옮긴 역자는 그의 ‘불온한 혁신’이야말로 시대를 넘어 현대 독자들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한다. 이덕무의 시는 때론 짐짓 뒷짐을 지고, 때론 언 땅에 무를 자르듯 단호하게 내리는 눈처럼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이미 당대에 중국까지 널리 이름을 떨친 이덕무는 항상 꾸밈 없는 진솔한 글을 써왔다. 그의 시에는 자연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진실하고 솔직한 감성, 기운, 느낌, 생각들이 잘 담겨 있다. 이덕무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자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에게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시의 소재이자 주제였다. 특히 일반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주변의 하찮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시적 언어로 포착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인이었다.

이덕무는 개성적인 시를 썼다. 즉, 옛사람을 답습하거나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시를 쓰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했다. 아무리 잘 쓴 시라고 할지라도 옛사람과 다른 사람의 시를 닮거나 비슷하면 죽은 시라고 말한 반면, 거칠고 조잡해도 자신만의 감성, 기운, 뜻이 담긴 시는 살아 있는 시라고 했다. 그는 개성적인 시를 짓기 위해 실험과 모험과 도전을 거듭했다. 또 그는 '조선의 시'를 썼다. 동심의 시, 일상의 시, 개성적인 시, 실험적인 시의 미학이 집약된 이덕무의 시학이 바로 ‘중국 사람의 시’와는 다른 ‘조선 사람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덕무는 자신이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조선의 풍속과 풍경, 그리고 뜻과 생각이 담긴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한시 4대가’라고 불리며 찬사를 얻은 그였지만, 이에 못지 않은 혹평도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그를 혹평한 유득공의 숙부 유금은 이덕무의 시가 거칠고 비루하며, 자질구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연암 박지원은 자패의 혹평을 지적하면서 이덕무의 시가 동시대 조선의 풍속과 유행을 읊고 있기 때문에, 만약 공자가 살아 돌아와 다시 〈시경〉을 편찬한다면 반드시 이덕무의 시가 실릴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유금은 훗날 이덕무의 시를 청나라에 가져가 반정균에게서 “이덕무의 시는 평범한 길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최고의 비평을 받아왔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을 시의 소재로 삼아 보잘것 없는 것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도 했던 이덕무의 시도는 그 자체로 ‘혁신’이라고 역자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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