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시대의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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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시대의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제언
  • 김지환 인천대·중국근현대사
  • 승인 2023.03.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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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평론]

우리 사회는 길고 어두웠던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 바야흐로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023년 3월 20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병원 등 일부 감염취약시설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를 전면 해제하였다. 2020년 10월 13일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작된 지 무려 888일 만에 전면적인 방역 해제에 준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이마저도 4월 말, 5월 초경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해제할 경우 코로나19는 독감 수준의 4급 감염병으로 분류되어 마스크의 착용 의무도 전면적으로 해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혼식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한 단체사진은 먼 훗날 생소한 에피소드의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이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일상이 완전히 회복되는 셈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큰 변화를 경험하였다. 특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소위 ‘차이나포비아’, 즉 중국 공포·혐오를 비롯하여 반중 정서의 확산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20세기 개혁개방을 통해 양대 강국의 일원으로 굴기한 중국과 이에 대한 미국, 유럽 등 각국의 견제와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내 정치적 자유의 제한, 인권문제 등 세계적 보편 규범과의 부정합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20세기 이후 미국, 서구 중심의 국제 표준과 새롭게 부상한 차이니즈 스탠다드, 즉 중국적 표준·질서 간의 갈등이라는 측면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시기에 한국인의 반중 정서가 특히 심화되었다는 사실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중앙유럽아시아연구소(CEIAS) 등이 세계 56개국 주민 8만 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의 반중 정서가 이들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2위인 스위스의 72%나 3위인 일본의 69%와 비교하더라도 1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웃 나라인 중국에 대한 반감과 혐오 정서는 이미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상에서의 김치, 한복, 단오절 등 문화를 두고 한중 네티즌 간 치열한 감정대립이 고조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화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소위 ‘21세기 홍위병’으로 불리는 중국의 네티즌들에 맞서 특히 한국의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진위가 검증되지 않고 불분명한 주장과 상호비방이 경쟁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심지어 정치인과 언론이 여기에 가세하였으며, 일부 지식인, 학자도 소위 ‘사이다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면서 청년들을 자극하고 있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이, 대학 캠퍼스 안에서조차 차이나포비아는 심각한 수준이다. 21세기 국제세력 전이의 시대에 중국에 대한 관심과 학습, 연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련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이전에 비해 상당 부분 저하된 것도 사실이다. 

상당수 미래학자들 사이에서 2030년경이 되면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021년 한국의 대중국 교역액이 3,015억 달러로 전체의 23.9%를 차지하였다. 미국의 13.4%와 비교하여 두 배, 일본의 6.7%에 비해 네 배에 달한다. 21세기 중국의 굴기와 세력 전이 속에서 이러한 한중 간의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중 정서의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중 수교 30주년‥서울·베이징서 동시 기념행사 (2022.08.24/뉴스투데이/MBC)<br>
                      한중 수교 30주년‥.서울·베이징서 동시 기념행사 (2022.08.24/뉴스투데이/MBC)

올해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서른 한 돌이 되는 해이다.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그 성장이 괄목할만하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 하여, 사람이 서른 살이 되면 “올바른 길(正道)에 확실한 뜻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한중 두 나라는 지난 30년간 올바른 방향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모색해 왔는가. 한중관계는 지난 31년간 경제 교역과 인적 교류에서 엄청난 외형적 성장을 달성하였으나,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국 공동의 가치와 동질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필자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한중 양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분연히 공동으로 힘을 합쳐 항쟁한 항일전쟁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싶다. 항일전쟁에서의 협력 연대와 공동의 투쟁,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료의 발굴과 공동 연구 등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국제적 평화와 협력을 위한 모범적인 가치규범과 협력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올해 2023년도는 이차대전 종전 이후 78주년이 되는 해이자, 1937년 북경 근교의 노구교에서 일본의 침략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한지 86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는 노구교 사변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된 시기를 중일전쟁 시기라고 명명하지만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항일전쟁 시기라 부른다. 

중일전쟁과 항일전쟁은 명칭의 상이함뿐만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 역시 동일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1945년의 ‘광복’과 ‘항전 승리’라는 명칭 역시 전쟁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일본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처하여 강대국 간의 충돌과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수동적으로 승리의 과실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막대한 희생과 피의 대가로 얻은 성취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확전 과정에서 중국은 세계반파시스트전쟁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전민전쟁을 통해 막대한 희생의 대가로 마침내 전쟁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까닭에 중국에서 전승기념일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중국은 일본의 항복문서를 접수한 1945년 9월 3일을 전승기념일로 지정하고, 매년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반파시스트전쟁 승리 ○○주년’으로 명명하여 이날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다.

1937년 7월 7일 발생한 노구교 사변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자, 중국정부는 중경으로의 천도를 단행하여 결사 항전의 의지를 내외에 선포하였다. 더욱이 중국의 항전은 비단 중앙정부의 주도뿐 아니라, 전 민족의 대동단결이라는 전민항쟁으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생명과 위험을 무릅쓰고 자발적으로 반파시스트전쟁에 동참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대후방 중경으로의 천도 행렬에 동참하였다.

 

항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마련하고자 중국정부는 구국공채를 발행하였는데, 전시의 고난한 생활 속에서 일반 시민들까지도 자발적으로 푼돈을 모아 공채를 매입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탰다. 일본의 점령 치하에 있던 상해지역의 공상자본가들도 너나없이 공채의 수용을 통해 항전을 적극 지지하였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등 해외의 화교·화인들조차 중국정부가 발행한 공채를 매입하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은 해외에서 큰 화제를 뿌렸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파라마운트사의 뉴스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항일전쟁에 대한 막대한 희생과 분투의 대가로서 마침내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의 민족적 열망이었던 조계의 환수, 영사재판권의 회수, 불평등조약의 폐지 등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독립자주권을 성취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의 침략을 대륙에 묶어둠으로써 소련, 인도,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확전되는 사태를 저지하였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생명과 평화를 수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세계반파시스트전쟁에 대한 기여를 바탕으로 세계 4대 강국의 일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으며, 전후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특히 항일전쟁은 중국인뿐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 그리고 아시아인들이 반파시스트전선에 동참하여 항전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만 한다.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정부를 따라 머나먼 중경으로의 천도 행렬에 동참하였으며, 수많은 난관을 뚫고 중경에 도착한 이후 국내외에 걸쳐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중국정부의 지원하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황포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중일전쟁 시기에 수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인들과 함께 반파시스트 공동전선을 형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항일전쟁은 일본파시스트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양국인들의 평화에 대한 애호정신과 우의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겠다.

중일전쟁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서는 결코 야심을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으며, 이와 함께 독립자주권의 성취와 항전 승리, 평화로운 일상 역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비로소 획득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은 한중 양국의 정서적 유대와 우호 선린의 토대임이 분명하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진정한 이웃은 어려운 시기에 큰 힘이 되기 마련이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의 최초 발생자가 출현한 이후 많은 국가가 비난과 차가운 시선을 던졌지만, 진정한 선린이라면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팬데믹의 시대는 저물고 엔데믹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다시 중국의 14억 인구와 마주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전의 정상적인 삶과 관계를 회복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올해는 세계반파시스트전쟁에서 승리한지 78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현실의 정치와 국제관계에서 때때로 한중 간 갈등과 마찰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일전쟁 시기에 한국과 중국은 반파시스트전쟁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하였으며, 마침내 동맹국으로서 함께 항전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자산이 향후 현실의 한중관계 발전과 선린 우호의 토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지환 인천대·중국근현대사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중국경제사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교 객원연구원과 한국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 하북사범대학교 학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신문사와 통신사인 <인민일보>와 <신화사>에 역사문제 및 한중관계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글을 발표해 한중관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전후중국경제사』, 『모던 철도』, 『철도로 보는 중국역사』, 『중국 국민정부의 공업정책』, 『중일전쟁과 중국의 경제통제정책』, 『棉紡之戰』, 『中國紡織建設公司硏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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