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병역 대체복무제도와 한국 문화예술의 ‘양반·상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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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병역 대체복무제도와 한국 문화예술의 ‘양반·상놈’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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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안이 CNN, 로이터, 뉴욕타임즈, 가디언 등 언론보도를 통해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BTS 병역면제 불가 결정의 여파이다. 기존 예체능 영역의 대체복무는 유지하되, BTS를 포함한 대중문화는 제외한 이번 방안은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위계질서 체제, 특히 문화예술계에 존속해온 일종의 현대판 음서제를 드러낸다.

글로벌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건만, 정부 주도 각종 회의석상의 엘리트 전문가들의 결정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라 주인인 국민의 정서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한국 남자들이 (미안하고 고맙게도) 적정 연령에 군복무 의무를 지니지만, 문제는 대체복무제에서 특정 분야는 특례가 적용되고 다른 분야는 배제되는 잣대의 기준이다. 이 잣대는 오천 년 역사를 통해 공고한 세력을 형성한 한국 문화예술계의 ‘양반주의’ 내지 ‘엘리트주의’를 반영하며, 지난한 현대사에서 정당과 파당을 막론하고 정부와 기득권 사회가 지속해온 ‘시대착오적’ 체계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기득권 엘리트층의 음서제를 거론하는 것은 작금에 소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여 국제적 입지를 굳히는 일이 현 예술계 시스템 내에서 돈 없고 맥(인맥·학맥)없는 현대판 ‘상놈’ 출신 대다수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함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 클래식 음악경연 입상자는 병역면제 받지만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대중음악가는 불가하단다. 비틀즈가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군대 가야 했다. 어쩌면 비틀즈는 비틀즈가 되지 못하고 세계 문화사의 한 획을 긋지 못했을 것이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동시대에 살건만, 머나먼 별천지 일 같다. 한국정부는 그를 군대에 보내 세계무대 활동을 차단했겠고, 노벨상 후보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고급’ 클래식이 아니라 ‘저급’ 대중음악 종사자이기 때문이다.

알고 싶다. 21세기에 누가 고전과 대중문화, 고급과 저급문화의 우열을 규정하고 ‘클래식과 팝(popular)’의 위계체제를 만드는가? 무슨 미학적 기준인가? 아니면 역사와 전통인가? 그럼 한국 문화예술계의 ‘양반과 ‘상놈’ 혹은 ‘고전’과 ‘딴따라’식의 구시대적 판단에 따른 것인가? 하지만 현재 숭앙받는 상당수 ‘고전’들도 처음에 혁신적인 창작가들이 기존 전통예술에 대한 반동으로 선보였을 때, 고전문화 향유를 고집하는 ‘엘리트층’의 조롱, 경시,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선두주자들이 곧 인류를 새로운 도약으로 이끄는 아방가르드 전사들임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했기에, 엘리트의 선입견과 편견에 따라 하급 예술가들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 시대의 창조적 소산인 팝과 펑크는 무수한 대중들에게 비발디와 라흐마니노프만큼 소중하고, 랩과 록은 라벨과 바그너처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관습적 사고와 식견으로 신시대의 대중문화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 정부 차원에서 정당화된다. 공정과 정의를 기치로 삼는 정부에서 말이다. 순수 고급예술과 저급 대중문화를 위계구조로 분류하던 모더니즘 담론은 이미 반세기 전에 역사의 한 장으로 종착되었건만, 정책 결정권자들은 유난히 구시대 문화유산을 고수한다. 현 정부가 세간의 무성한 소문대로 정권유지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을 방안도 강구해볼 일이다. 아울러서 수십 년 전에 이미 ‘문화대국’들이 대중문화가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를 주목한 후 전면적으로 활용해온 방법론을 문체부, 아니 ‘문광부’와 공조하여, 병역 대체복무제에도 현실적으로 적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구절벽 시대에 대체복무 인원 증가에 대한 정부의 고심도 이해된다. 하지만 외국산이든 국 산이든 ‘고전·전통음악가 아닌 여타 음악 종사자는 모조리 군 복무’라는 ‘모 아니면 도’식의 개정안을 합리화하기 전에, 민중, 공정, 정의의 시대를 표방하는 정부답게 이제는 왜 고전예술은 해당되지만 대중예술은 제외되는지, 그 잣대가 무엇인지를 해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of Delaware)에서 미술사석사와 철학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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