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것을 번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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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것을 번역하기
  • 권혜린 한경국립대 강사·문학 연구자
  • 승인 2023.03.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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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_ 『광장과 젠더: 집합감정의 행방과 새로운 공동체의 구상』 (소영현 지음, 갈무리, 464쪽, 2022.11)

 

이 책을 분류하자면 문학이나 비평의 갈래에 속하겠지만, 과감하게 번역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다. 한국 문학과 한국 사회를 감정을 통해 본다는 점에서 감정 번역이라고 해도 좋겠다. 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 번역이나 윌리엄 레디의 번역 개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때의 번역 개념이 확장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한눈에 파악되지 않고 포착할 수 없는 감정들을 ‘상상’으로서 번역해 내는 작업이 5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책인 『광장과 젠더』에 담겨 있다. 저자가 ‘사유실험’(7)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잠재적인 감정까지 고려하는 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사이-패턴-연결-상상’이라는 비선형적인 목차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에 실린 내용을 거칠게 나누어 보자면 방법론으로서의 감정에 대한 글, 문학 작품을 분석한 글, 사회 현상을 분석한 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문학에 대한 글이 다수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을 단순히 작가론이나 작품론이라는 개별적 글로만 향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문학사의 틀 안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식민지 시기 김기진의 문학에서부터 한국전쟁 시기 박완서의 문학, 최근 시기의 장강명과 황정은의 문학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궤적을 그려 볼 만하지만 그 기준은 통시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김기진에게서는 “‘개인’의 감정이 다른 개인에게 옮아갈 수 있는”(71~72) ‘감염’의 감정교육을 통해 개별 인간의 집합체인 공동체가 나타난다. 박완서의 작품에 나타나는 한국전쟁은 죄의식과 수치심을 상실하게 했으며 시대감정으로서 사회적 속물화를 보여 주었다. ‘우리’에 대한 인식이 ‘나’와 ‘가족’으로 축소되고 생존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 인식은 개인의 성공적인 생존기가 아닌 ‘헬조선’을 탈출하고자 하는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와 같은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손쉽게 개인이나 공동체의 실패로 귀결하지 않는다는 데서 이 책의 치열하고도 지속적인 고민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고민과 연결되는 단어로서 책의 제목에도 나와 있는 광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광장은 최인훈의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밀실(개인)과 광장(공동체)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두 개가 연결되는 것이다. 나아가 삶과 글의 광장을 동시에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살면서 쓰고, 쓰면서 살지 고민하는 것이다. “문학과 삶 사이의 시차나 거리가 더는 가능하지 않”(355)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에 따르면 단수적인 광장이 아니라 복수의 광장‘들’(7)로 나타나야 한다. 감정을 상상하고 번역하는 작업이 문학-삶에 틈입될 때 글쓰기 자체도 새로운 광장이 된다. 감정이 고정되거나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흐름과 관련되는 유동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과거의 재편이자 은폐된 미래의 앞당겨진 현실화”(11)이며 “행위 직전의 에너지이자 방향성을 갖는 힘”(11)에 해당하므로 열린 광장이자 광장‘들’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에서 반복되는 만큼 중요하게 제시되는 광장의 감정은 집합 감정으로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죄의식과 수치심이 소멸되는 속물화와 연결된다. 타인이나 세계가 자신을 침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방어 기제로서, 최대한 무심해지면서 자신의 껍데기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에만 몰두하는 개인들이 사회의 공공선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시대적 사건은 IMF이다.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의 전면적 변화를 강제한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211)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나 강남역 살인 사건 등, “개인의 이기적 영토 바깥을 꿈꾸는 공공적 상상력”(286)이 요청되는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 공공성을 다시금 사유하고 질문해야 할 시점에서, 이는 앞서 말한 시대감정이자 집합감정으로서 수치심의 회복을 요청하는 것과도 연결될 것이다.

냉소의 바깥은 어떻게 상상되는가. 나는 부끄러움의 회복을 요청해본다. 모든 감정의 발현과 이동이 그러하지만, 특히 부끄러움의 감정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생겨난다. (…) 부끄러움의 권역과 최저선이 언제나 집합감정의 층위 조정의 결과로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해소되지 않는 인정욕망과 갈 곳을 잃은 죄의식의 상호작용에 의한 집합적 동의 없이는 부끄러움은 발현될 수 없다. (…) 부끄러움의 회복은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감수성 회복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분의 예기치 못한 향배를 이끄는 전환적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35)

‘회복’이라는 단어는 얼핏 원래의 상태를 이상적인 기준으로 두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며 흐름이나 유동성과는 배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때의 감정이나 감수성의 회복을 이상적인 목표나 도달점에 섣불리 두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자 역시 수치심이 사회적인 순응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감정 자체에 가치 평가를 하거나 위계를 두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흐름과 움직임 속에서 새로움을 상상하는 과정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인적인 성공과 생존만을 추구하며 수치를 잃은 ‘자동인형’에서 벗어나 도달할 수 없는/도달하지 않는 광장‘들’에서의 글쓰기를 계속해서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들끓고 있는 감정들을 계속해서 쓰는 것이다.

광장은 이미 펼쳐져 있다. (집합)감정은 곳곳에 흐르고 있다. 이때의 광장이 저자의 말에 따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모색”(397)으로서 포스트 민주화로의 이행과 연결된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 다시 광장‘들’로 돌아오는 질문이 이어진다. 이때의 광장‘들’은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446)로서의 질문, 계급과 젠더의 구분과 차별을 무화하는 관계성에 관한 질문이었으면 한다. 실패를 예비하더라도 움직임을 계속해서 쓰고, 감정을 계속해서 번역하는 치열한 작업으로서 말이다.


권혜린 한경국립대 강사·문학 연구자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제5회 이화글빛문학상, 2019년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작가와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2.0』(공저), 소설집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0』(공저)과 장편 소설 『불가사리 전선』, 『부어스: 별을 따는 사람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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