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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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3.19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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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41강_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섹션 총 46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기획됐다.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자유 개념과 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 수용되고 진화해왔는지 검토해보는 다섯 번째 섹션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제41강 최장집 명예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 한국에서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관한 하나의 이해 -


최장집 교수는 “한국에서의 정치 현실을 포퓰리즘으로 특징짓기에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조건을 전제하면서도, “한국 정치에서 포퓰리즘을 기존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한국 정치 체제의 맥락에서 규명해보”고자 한다. 요컨대 “전후 냉전하에서의 국가 건설 이래 정치 체제를 떠받치는 중심 이념이자 교리로서, 제도 운영의 원리로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1980년대 민주화로부터 2017년 촛불 시위 이후 “뚜렷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민중적 민주주의”의 대비를 시도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비록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냉전과 권위주의하에서의 전후 신생 국가 한국의 조건은 자유를 산 경험으로 체험하고 알기 전에 먼저 민주주의를 알게” 된 만큼 “민중의 의미가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넓혔다고 이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전체적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는 사실 또한 지적한다. 

 

지난 2월 25일, 최장집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4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포퓰리즘 또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도전이라 할까 그것이 동반하는 충격 효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있는 현상을 세계 도처의 여러 나라들에서 발견하게 된다. 지금 한국에서도 이러한 포퓰리즘 현상이 발견되며, 그것은 촛불 시위 이후 전개되는 한국 정치의 변화와 위기를 설명하는 데 일정하게 관련된다. 한국 정치에서의 포퓰리즘을 기존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한국 정치 체제의 맥락에서 규명해보고자 한다. 


1. 구체제가 만들어낸 모순적 유산

지난 세기 1980년대 “6월 항쟁”을 전환점으로 하여 한국은 민주화를 계기로 정치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기에 이르렀다. 그것을 기점으로 전과 후를 구분해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이전 시기를 “구체제” 또는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구체제를 떠받쳤던 정치 체제 또는 정부는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리고 민주화와 관련하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전개 내지는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두 정부의 역사적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커다란 패러독스를 발견한다.

이승만 정부가 수행했던 역사적 역할은 분단 국가의 건설과 냉전반공주의를 통한 북한과의 이데올로기적 투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에 부여된 이 모든 역사적 과제와 역할들은 이승만 정부 자체의 과업이었다기보다 미국의 군사, 경제적 지원과 원조에 의한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남다른 점은 분단 국가 한국에 부여된 역할을 자립적으로 할 수 있는 국가의 경제적 능력을 확장하고 제고하는 것이라는 국가의 역할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그 목적을 위해 그가 활용한 방법은 위로부터의 국가 주도 경제 발전과 운영 체계라 하겠다. 

한국에서 분단 국가 건설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는 많은 과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는 제헌 헌법을 통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 수 있었고, 분단 국가의 건설과 냉전의 국내화,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신생 국가의 근본 규범과 제도적 틀에서만큼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형태를 가졌다.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적 제도들이 작동했고,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들이 성장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교육을 통해 학습됐다. 한국 사회가 이미 교육받은 젊은 세대 지식층과 시민사회의 발전을 목도하게 됐고, 그러한 조건들이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그 자신은 분단 국가 건설의 초기 과정에서의 혼란 시기, 독재자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민주화를 크게 발전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 세대 뒤 민주화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의 기여라는 점에서 박정희 정부의 역할은 이승만 정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민주화를 위한 중심 세력이자 권위주의 국가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의 성장과 그들이 주축이 되는 시민사회의 발전이 그것이다. 그러한 조건은 경제 발전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강력한 국가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개발도상국가로 급부상한 한국의 경제 발전이 불러온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가 급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스스로 민주화를 만든 지도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민주화가 가능하고, 그것이 수립됐을 때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군부 쿠데타와 같은 방식으로 붕괴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제거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위로부터 국가 주도로 경제 성장을 성취하는 모델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통해 자유주의를 생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2.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민중주의적/포퓰리스트 민주주의의 조건

한국 민주화는 대학생과 대학을 졸업한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들이 결합한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특징으로 한다. 민주화를 성취한 세력이 구체제하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 내지 정치사회에서 활동하던 기성 정치인 집단과 젊은 세대 민주화 운동 투사들, 두 집단으로 구성됐다는 것은 서술적 특징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운동권 인사들의 연배가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을 구성하는 젊은 세대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처음 이들은 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키는 시민운동을 통해 정치사회로 진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도덕화한 시민 운동의 정치 영역과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제도화된 정치권, 즉 정치사회를 그에 대립시키는 것이 정치에 참여하는 운동의 본질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 시기 시민 운동을 통한 정치 참여 방식은, 운동이 제도권의 직업적 정당 정치인들과 그들의 행위와 책임의 영역인 의회를 공격하는 한국 포퓰리즘의 원조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권이 이해하고, 추구하고 실현하려 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즉 운동권의 민주주의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운동 시기 지배적인 슬로건은 분명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 “개혁의 조타수”로서의 대통령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헌법, 정치 제도, 대통령의 역할 등 정치 개혁을 포괄하는 것, 그뿐만 아니라 권위주의하에서 억압되고, 변형되고, 왜곡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원리의 실현에 대한 개혁과 같은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제기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운동권과 민주적 개혁파들을 위해 민주화란 정치 변화의 차원에서 별다른 역할을 갖지 않는 냉전반공주의 세력들에 의한 통치 이념 정도로 이해되었기 때문일 가능성 또한 크다. 

 

3. 촛불 시위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 포퓰리즘적 민주주의관의 대두

1)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부터는 일정하게 일탈하면서 포퓰리즘의 대두라 할 만한 현상을 어디로부터 발견할 수 있나? 한국 민주화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지난 1980년대 이후 민주주의는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순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촛불 시위”로부터 시작되는 정치적 격변으로 인하여 민주주의는 뚜렷하게 위기를 맞게 됐다.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위를 “촛불혁명”으로 정의하고, 그 시각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정의하면서,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광폭의 개혁 정책들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점에서 포퓰리즘은 제도의 경직을 향유하면서 그것을 유지하려 했던 정치적 계급이 정치와 사회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도록 끌어내는 경고 사인이라고 볼 수 있다.

2) 이론가들은 포퓰리즘을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생하는 현상으로 보면서, “운동으로서의 포퓰리즘”과 “국가 권력의 내부에서 효능을 창출해내는 정부 주도의 포퓰리즘”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 개념 구분을 따른다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그 연원을 가지며, 촛불 시위 이후 그 현상이 분명히 표출된 민주화 운동의 전개의 결과로서 운동으로서의 포퓰리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포퓰리즘은 운동으로부터의 포퓰리즘으로부터 정부 주도의 포퓰리즘으로 전개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적폐 청산, 역사 청산을 모토로 삼았던 개혁의 결과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혹은 이해 방식이 두 방향으로 분절화되기에 이르렀다. 하나는 촛불 시위 이전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주의적, 또는 포퓰리즘적 민주주의이다. 

3) 촛불 시위가 불러온 엄청난 사회적 동원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표현코자 했던 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의 방향과 내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직접적으로 효과를 불러왔다.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은 포퓰리즘적 또는 민중주의적 민주주의의 특징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치 엘리트, 내지 정치 계급(political class)이라 부를 수 있는, 기득 이익의 대변자를 민중 내지 인민(people)과 대립시키는 구도는 직접 민주주의의 중심에 위치하는 논리이다. 만약 이를 포퓰리스트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이해한다면, 한국 또한 그 사례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4) 어쨌든 촛불 시위는 민주주의의 이해와 관련하여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분출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한국 정치와 사회는, 민주화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거와 정당 정치를 중심으로 한 제도권과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공간으로 분기되었다. 진보적인 운동권의 출현이 만들어낸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응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장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 민중임을 자임했고, 동시에 “우리들이 곧 국가”라는 인식을 갖는 것처럼 느껴지게 됐다.

 

5) 촛불 시위와 그 이후 문재인 정부하에서 왜 민주주의의 의미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이해 방식이 널리 확산되기에 이르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다른 요소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한국의 구체제에 대한 유산이다. 구체제는 군부 독재, 군부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부정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많은 제도들과 그 운영 원리들이 구체제하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 개혁의 모토는 광폭의 “과거 청산”이었고, 구체제의 모든 것이 청산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개혁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가운데 직접 민주주의가 그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같은 의사소통 매체의 혁명적 기술 발전의 영향이라는 점도 직접 민주주의의 확산에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6)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이 낳은 또 하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은 “최대 정의적 민주주의(maximalist definition of democracy)”를 구현코자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곧 “현대의 정치적, 대의제적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고대의 정치적, 경제적, 직접 민주주의적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년에 들어와 민주주의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뚜렷이 증가했다. 이러한 정치 체제를 비자유주의적, 또는 포퓰리스트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현대의 민주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인간 행위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에 한정된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본질은 “최대 국가(maximal state)”가 아니라, “제한적 국가(limited state)”이다. 

7) 문재인 민주당의 포퓰리스트적 개혁 정책과 그 프로그램들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크게 눈길을 끌었던 것의 하나는 정부 여당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이 천명하고 실천코자 했던 당 쇄신 정책이었다. 민주당의 개혁자들은 “당권 주권, 당권 결정 시대를 만드는 혁신”을 통해 “대의 체계의 교정과 직접 민주주의의 체계의 기둥”이 되려 한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민주당 개혁안의 대전제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주권 개념에 대한 오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주권의 개념과 관련된 것이다. “당원 주권”이라는 말은 주권이라는 말의 의미를 혼동한 것이 아니라면,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인민 주권의 원리와 정치 참여의 평등을 중심축으로 한다. 그러나 시민 개개인을 두고 주권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들이 당원으로서 주권을 가졌다고 한다면, 개개 당원들은 “법 위에 군림”을 향유하는 사람, 즉 전제 군주나 독재자밖에는 되지 않는다. 

8) 문재인 정부하에서 광폭의 개혁 정책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초기 단계에서 청와대가 주도한 헌법 개정은, 실제로는 그 기획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포퓰리스트적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사례이다. 

개헌의 내용도 민중주의적 원리와 비전을 담는 것으로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개헌을 시도한 방법 또한 부정적 의미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헌법개정위원회나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토론하고 심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이 문제가 광범하게 논의되고, 진지하게 토론된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대통령 자신이 제시하는 광폭의 제도적 개혁안은 정치권에서, 그리고 사회의 공론장에서 광범하게 논의되고, 여러 의견들이 수렴되고 또 개혁자들이 그에 응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숙고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추진해야 할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떤 것으로 나타나듯, 광폭의 개헌안이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을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더 민중주의적 민주주의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측 가능한 것이 별로 없다.

 

맺는 말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냉전과 권위주의하에서의 전후 신생 국가 한국의 조건은 자유를 산 경험으로 체험하고 알기 전에 먼저 민주주의를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한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서는 민중의 의미가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넓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1980년대 한국 민주화는 민중주의적 민주주의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발전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세계의 정치학자, 민주주의 또는 포퓰리즘 이론가들 가운데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관점에 입각해 포퓰리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의 모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필립 슈미터는 포퓰리즘의 장단점을 균형적으로 말하고 있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면 이런 것이다. 포퓰리즘은 기존의 경쟁하는 정당들의 프로그램들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키지도 않으면서, 정당에 대한 충성이나 정당들의 프로그램들의 선택을 약화시킨다. 정치를 통해 프로그램을 성취하는 것보다 감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일관된 정책 선호를 갖지 않는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충원한다. 이슈나 정책이 아니라, 인물이나 성향으로 관심을 전환시키는 불가 예측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것으로 주의를 돌린다. 정치 행위나 정책 결정의 방식이 더 화끈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 효과 면에서 잘못 판단하거나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장점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퇴영적인 정당에 대한 충성을 해체해버리거나, 야합적인 정당 체제를 새로운 정치 형성을 통해 개방적일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 이전에는 정치에 무관심이던 사람들을 충원하고, 선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원한다. 그동안 중요하지만 산재해 있고, 무시돼왔던 정치 이슈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통해 억압돼온 균열들과 기대를 끌어내 연결하고 활성화한다. 포퓰리즘은 강대국과 약소 국가라는 국가 간 관계에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약소국의 위치에 있는 국가가 그동안 수용해온 외부적 제약에 도전하고, 외세에 대한 기존의 그리고 자주 착취적이던 의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 다른 정치학자들 카스 무데와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는 그 장단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정적인 것은, 포퓰리즘이 다수결 개념과 관례를 활용해 소수자의 권리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 분열을 조장해 안정적인 정치적 연합의 형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합의에 이르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합의를 극히 어렵게 만드는 정치의 도덕화로 귀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과는 달리 긍정적인 영향은, 정치 엘리트층에 의해 대표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집단들에 발언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회에서 배제된 부분들을 동원하는 것을 통해 정치 체제에 좀 더 통합시킬 수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 배제된 부문들이 선호하는 정책의 실험을 촉진해 정치 체제의 응답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쟁점과 정책을 정치 영역의 일부로 만들어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전체적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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