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행, 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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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행, 십악
  •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 승인 2023.03.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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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우 교수의 ‘법률과 사건으로 보는 조선시대’


범죄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법규를 어기고 저지른 잘못이라고 나온다. 우리는 종종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천인공노할 짓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 천인공노(天人共怒)는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증오스러운 악행을 지칭한다.

“임금도 몰라보고 아비도 몰라보며 인륜을 어그러뜨리고 덕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신령과 사람이 모두 분노하는 행위”

전통시대 형법서에 실린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열 가지 중대한 죄악을 ‘십악(十惡)’이라 불렀는데, 위의 인용문은 중국 대명률 해설서에 나오는 십악에 대한 풀이이다. 한마디로 천인공노할 범죄가 십악인 셈이다. 십악을 통해 전통시대 중국과 조선 사람들의 법과 도덕 관념, 범죄관을 엿볼 수 있다.


십악에 해당하는 범죄는?

십악 개념은 중국 진, 한대에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북제의 율에는 ‘중죄십조(重罪十條)’라 하여 10개 조목의 중범죄가 설정된 바 있으며, 중간에 8조목으로 조정되었다가 당률에 다시 10조목으로 복원되어 대명률까지 이르렀다. 십악이 어떤 행위를 말하는지는 대명률의 총칙에 해당하는 명례율(名例律) 앞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대명률』에 실린 십악(十惡). 규장각 소장.

십악은 구체적으로 모반, 모대역, 모반, 악역, 부도, 대불경, 불효, 불목, 불의, 내란 등 10개 죄목을 지칭한다. 먼저 모반(謀反)은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하는 행위, 모대역(謀大逆)은 종묘, 산릉, 궁궐을 훼손하려는 행위, 모반(謀叛)은 본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와 몰래 통하여 반란을 꾀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들 셋은 국가를 위협하는 중대범죄인 국사범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악역(惡逆)은 조부모나 부모, 남편의 조부모나 부모를 때리거나 죽이려는 행위, 혹은 백숙부모, 고모, 형, 누나, 외조부모, 남편을 죽이는 것을 지칭하는데, 가족을 살해하는 패륜에 해당한다. 부도(不道)는 일가족 세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을 살해하고 사지를 절단하는 행위이다. 이 둘은 반인륜적인 악행이자 잔혹 범죄라 할 수 있다.

대불경(大不敬)은 국새를 위조하거나 국왕이 사용하는 수레, 가마 등을 훔치는 등의 국왕의 권위를 훼손하는 불경한 행위를 말한다. 불효(不孝)는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행위임은 다 아는 사실인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조부모, 부모 혹은 남편의 조부모, 부모를 고발, 저주, 욕하는 것, 봉양함에 모자람이 있는 것, 부모 상중에 장례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것 등이 대상이다.

 

능지처참 집행 장면. 사형 집행 방법 중 가장 잔혹한 것으로 중국에서는 십악을 범한 상당수를 이런 식으로 처형하였다. 청대 『금산현보갑장정』 수록.

이밖에 불목(不睦)은 시마 이상 친족을 죽이려고 꾀하거나 팔아 버리는 것, 남편 및 대공 이상 존장이나 소공의 존속을 때리거나 고발하는 행위를 말한다. 불의(不義)는 고을민이나 군사가 관내 수령이나 상관을 살해하거나, 제자가 스승을 살해하거나,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도리를 다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마지막 내란(內亂)은 소공 이상 친속이나 아버지, 할아버지의 첩과 간음하는 등의 근친상간 행위를 지칭한다.


십악에 관련된 처벌 규정

앞서 본 것처럼 십악은 왕조의 존립, 국왕의 권위 및 가족질서를 해치는 범죄, 그리고 반인륜적 중대 범죄 등 대부분 당시 형률로 사형에 해당하는 행위들이다. 그런데 십악 중에는 중죄라기보다는 형량이 비교적 가벼운 일탈 행위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십악의 분류는 당대인의 유교적 사회질서 구축의 기본 방향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십악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어떠했을까? 당대 사람들은 십악 조항을 대명률 앞부분에 배치하여 경계해야 할 극악한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도록 법을 적용하였다.

그 하나의 예가 팔의(八議) 신분에 대한 예우 박탈 규정이다. 팔의란 왕실 가족, 공신, 고위관료 등 국가에서 특별히 대우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임금이 명이 있기 전까지는 함부로 처벌하지 못했다. 하지만 팔의 신분의 자들이 십악을 저지른 경우에는 이런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항복 초상.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하는 데 공을 세운 위성공신이다. 공신이라 하더라도 십악을 범한 경우에는 형사상의 특권을 상실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또한 십악을 범한 사형수는 추분 이후에 사형을 집행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바로 형을 집행하도록 했다. 그만큼 잠시라도 살려두어서는 안될 중대 범죄자라는 이유에서다.

이 외에도 십악을 범한 죄인은 아예 사면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시켰다. 당시 나라의 경사 등을 이유로 많은 범죄자들의 죄를 사하는 사면령이 종종 내려지곤 했는데, 십악을 범한 죄인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십악에서 육범으로

그런데 불효가 십악의 하나로 들어가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십악은 엄격한 형률보다는 도덕률에 가까운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부모 상중에 상복을 벗고 길복을 입는 행위는 형량이 장 80대에 불과하는 범법이지만 사형에 해당하는 다른 중대 범죄와 함께 십악의 불효 조목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부조화로 인해 십악에 대한 강조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 아래에서 보듯이 조선왕조의 사면 행정에서 이와 같은 흐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선조대에 마련되어 조선후기에 일관되게 유지된 사면 제외 대상 범죄를 보면 모반(謀反), 대역(大逆), 모반(謀叛), 자손이 조부모나 부모를 때리고 욕하거나 모살한 경우, 처첩이 남편을 모살한 경우, 노비가 주인을 모살한 경우, 모의 및 고의살인, 독약을 쓰거나 귀신에게 저주하게 한 경우, 국가 강상에 관계된 경우, 장오(贓汚), 강절도, 잡범(雜犯)을 저질러 사형에 해당한 자 등이다. 흥미롭게도 십악 중 일부만이 대상에 포함되었을 뿐이다.

 

『사전성책(赦典成冊)』. 1902년 6월 6일에 내린 사면령에 의거하여 각 재판소에서 육범(六犯) 외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사면 대상자 명단을 적은 성책. 규장각 소장.

그러다가 갑오개혁 이후에는 십악(十惡) 대신에 새롭게 육범(六犯) 개념이 출현한다. 1895년 6월 27일 고종이 반포한 사면령은 다음과 같다.

“짐이 경장(更張)한 때를 맞아 정치를 유신(維新)함에 작량(酌量)함이 없을 수 없으니 개국 504년(1895) 4월 1일 이전 죄인 중 모반, 살인, 절도, 강도, 통간(通姦), 편재(騙財)를 범한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석방하여 넓고 큰 덕을 보이라.”

위에서 보듯이 갑오개혁 이후 사면 제외 대상은 소위 ‘육범(六犯)’이라 해서 모반, 살인, 절도, 강도, 통간, 편재(재물 편취) 등 여섯 가지로 단순화되었다. 이 육범은 국가 존립 유지,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 사회 풍속 유지라는 근대국가의 법익(法益) 실현을 침해하는 핵심 범죄라 할 수 있다. 이 십악에서 육범으로의 변화는 20세기 전후 유교적 도덕률에서 근대적 법 이념으로의 전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사 연구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법률문화와 사회문화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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