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서민의 역사를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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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서민의 역사를 더듬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3.13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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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사 스무고개: 고소설 연구자가 발견한 역사의 조각들 | 이윤석 지음 | 한뼘책방 | 296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와 『승정원일기』 등 방대한 기록을 남긴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기록 문화는 상층 남성 지식인들만이 누릴 수 있었다. 한문을 익히지 못한 서민들은 기록을 남길 수 없었으므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일상을 알아보려 해도 자료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수십년 동안 『춘향전』, 『홍길동전』과 같은 고소설을 연구해 왔다. 조선시대 서민의 대중문화였던 고소설을 연구하는 일은 온갖 옛 문헌을 뒤적이며 자료를 찾아야 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소설 연구 과정에서 얻은 조선 역사의 조각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스무 가지 이야기는 곧 역사 복원을 위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서민의 삶에 대한 문헌 자료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상층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명예나 이해가 걸린 정치적 이념의 문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장황하게 써 두었지만, 그런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서민의 일상생활을 기록해 두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은 유명한 것이 아니다. 저명한 인물이나 역사적인 사건, 또는 중요한 유물이나 주류의 이념 등이 아니라, 당대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쉽게 알 수 없거나 사라진 것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았다. 그러므로 이 책이 참고 자료로 삼은 것은 조선시대 저명한 인물이 쓴 뛰어난 저술보다는, 서울과 지방에서 주고받은 문서나 죄인들을 문초한 내용을 적어 놓은 살인사건 조사서와 같이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이 책에서 다루는 스무 가지 주제는 ‘암호, 봉수대, 과거, 한양 구경, 뗏목, 얼음, 유리, 청어, 주막, 호랑이’ 등이다. 이를 통해 통해 조선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 서울의 구경거리, 집을 짓기 위해 목재를 나르는 방법, 당대의 사치품, 이동할 때 묵었던 숙소 등 잊혀진 조선의 모습을 더듬어 본다. 고준 담론에 가려 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저자는 오랫동안 허균이 지었다고 잘못 알려져 온 내용을 바로잡아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2018)를 쓴 바 있다. 기존 연구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판소리’를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학교에서는 판소리가 먼저 생겨났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소설은 판소리 가사를 옮겨 놓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저자는 “판소리 「춘향가」나 「심청가」가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다. 그리고 판소리 관련한 수많은 학교와 기관, 전문가가 있지만, 판소리의 정의와 역사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판소리에만 해당되지 않을 터이다. 거대 담론에 가려서 희미해지고 잘못 알려진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학계와 사회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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