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과 쌍벽을 이루는 궁정 처세술의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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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과 쌍벽을 이루는 궁정 처세술의 바이블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3.1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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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정론: 세기를 뛰어넘는 위대한 이인자론 |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 지음 | 신승미 옮김 | 북스토리 | 512쪽

 

『궁정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쌍벽을 이루는 르네상스 정치 교양서로서 『군주론』이 군주의 통치 기술에 관한 책이라면, 이 책은 이상적인 궁정 신하의 덕목과 처세에 관해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쓴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는 거의 전 생애를 만토바, 우르비노, 밀라노, 로마 등지의 이탈리아 궁정에서 일했던 르네상스의 외교관으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궁정론』을 집필했다.

1528년, 『궁정론』의 등장은 유럽 세계의 '문명화 과정'에 커다란 지적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유럽의 엘리트 교양 계층이나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과 관습을 담은 최초의 개론서라는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교육적으로, 문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군주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대한 군주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궁정인이 있었다. 궁정이라는 폐쇄적인 권력의 각축장 속에서 궁정인은 뚜렷한 현실 인식과 권력과의 조율을 통해 군주를 인도하고 군주가 알아야 할 모든 진리를 조언해주는 교육가이자 행정가였다. 『궁정론』에서는 이러한 이상적인 궁정인의 상과 함께 위계화된 권력의 질서를 구축하고 지탱하는 인간 행위의 '최고 보편 법칙'을 제시한다.

『궁정론』은 1507년 3월의 나흘 저녁 동안 우르비노 궁정에서 신사와 귀부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여 쓴 대화록이다. 저자 카스틸리오네는 문답 형식을 빌려 그가 살았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 아래 대두되던 생생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이상적인 기사도 정신과 고대 사회의 미덕 그리고 당시 인본주의자들의 염원을 광범위하게 담아내고 있다. 유머와 풍자가 가득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 형식은 마치 귀족들의 토론 현장에 직접 와 있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카스틸리오네의 동료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토론에서 궁정 신하를 전사이자 학자, 기독교 신자이자 고전적 영웅, 덕을 갖춘 인물이자 군주의 충실한 신하라는 상반된 두 가지 개념을 종합해서 설명함으로써 중세 사회의 가치관이 해이해져 난국을 맞고 있던 유럽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답을 품격 있고 완벽하게 제시해 준다. 르네상스의 궁정 사회는 치열한 자기검열과 상호경쟁이 벌어졌던 냉혹한 정치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카스틸리오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모델에 따라 극단적 삶의 양식을 거부하는 일종의 중용의 덕을 필수 생존 전략으로 제시한다.

『궁정론』은 모두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우르비노의 공작부인과 궁정 신하들이 오락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시작된 4일간의 토론 내용으로서, 주제가 '완벽한 궁정 신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다.

첫째 날, 1권에서는 신사와 귀부인들의 대화를 통해 궁정 신하의 기본적인 임무와 그가 갖춰야 할 육체적 정신적 조건과 자질이 논의된다. 여기서는 궁정인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와 반대로 스스로를 낮추거나 숨기는 역설적인 행위인 '무기교의 기교' 즉 기교를 기교로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진정한 기교가 강조된다.

둘째 날, 2권에서는 1권에서 다뤄진 논의가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군주를 대하는 법이다. 즉, 궁정 신하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사악하고 악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명령하는 모든 것에, 설사 그 명령이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럽더라도 복종할 의무가 있는가? 또는 중요한 사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군주의 상세한 지시를 다소 어겼을 때 군주에게 더 이득이 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군주를 보필하면서 발생하는 어려움이나 문제점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법에 대한 설전이 벌어진다.

그다음에는 신분이 같거나 비슷한 귀족들 간의 처세법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공인으로서의 궁정 신하는 자신이 언제나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자신의 삶을 포장하고 연기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사고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논의는 대화술에 관한 주제로 이어지는데, 상대방을 고려하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세 가지 유형의 화술이 유쾌한 농담과 함께 제시된다. 궁정 신하에 대한 논의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마침내 이상적인 궁정 숙녀의 모습을 형상화해야 한다는 데 다다른다. 자연히 셋째 날에는 여성의 지위와 덕성에 관한 논의가 펼쳐진다.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여성 혐오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귀족과의 설전을 통해, 3권에서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젠더와 여성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날, 4권은 다시 궁정 신하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된다. 여기에서 군주에 대한 봉사의 문제, 군주와 궁정 신하의 관계에 대해 논의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위대한 궁정인의 예로 거론되며, 군주를 교육하는 것이 궁정인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임이 강조된다.

『궁정론』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정치 교양서이다. 교양인을 자처하던 후대의 많은 유럽인들이 이 작품에 열광했던 이유는 점차 중앙집권화되어 가던 유럽의 정치 세계에 그에 걸맞은 인간의 행위 규범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군주론』이 당시의 전통적인 도덕을 무시하여 숱한 논란과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실천 불가능한 행동 양식이거나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 합의점을 찾아낼 줄 아는 지략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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