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란 무엇이며, 사서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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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란 무엇이며, 사서란 누구인가?
  • 이제환 부산대학교·문헌정보학
  • 승인 2023.03.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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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이제환 지음, 태일사, 334쪽, 2023.02)

 

도서관이란 무엇이며 사서란 누구인가? 이 책의 주제이다. 한국인의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도서관은 단순한 책의 집적체요 열람실이 아니다. 도서관은 인류가 생산한 지식의 합리적인 집합체인 동시에 지식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체계적으로 교류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도서관은, 아날로그 형태로 존재하든 디지털 형태로 작동하든, 시공간을 초월한 지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식 활동의 중추 기관이다. 그러하기에 서구사회에서 도서관(즉, library)은 도심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랜드마크’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동네마다 주민들이 접근하기 편리한 위치에 분관(branch library)이 세워져 있으며,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보와 문화 그리고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또한 대학의 캠퍼스에서도 초중등학교의 건물에서도 도서관은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교육과 학습의 심장’으로 왕성하게 기능하고 있다. 이렇듯 중요한 기관에서 지식의 보존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지식의 교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주도적인 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사서이다. 서구사회에서 사서를 흔히 ‘지적 유산의 관리자’ 나아가 “지적 교류의 중개자’로 지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도서관의 정체성과 사서의 책무에 관한 이러한 설명이 한국 도서관계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서구사회의 library와 librarian에는 적합한 설명이지만, 한국사회의 도서관과 사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설명이란 이야기이다. 돌아보면 한국의 도서관은 출발부터가 서구사회의 library와 달랐다. 그들처럼 사회적 요구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라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구사회를 모방하고자 했던 행정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구색 갖추기용’ 시설에 불과하였다. 해방 이후 구축된 한국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한국의 도서관 또한 미국식 library를 주 모델로 하여 구축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모방이 온전치 못하고 외형에만 치우친 것이 문제였다. Library에 내재하는 철학적 가치와 librarian의 막중한 직무를 이해하지 못한 채 library의 껍데기만을 수입하여 도서관 시설을 만드는 데 급급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Library를 번역한 것이 도서관이고 librarian을 번역한 것이 사서임은 분명하지만, 한국의 도서관과 사서는 그 모체인 library와 librarian과는 유전자조차 다른 ‘변종’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변종 상태가 70년이 넘게 유지되면서 한국의 도서관은 library의 짝퉁이 되었고 한국의 사서는 librarian의 아류가 되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관련 증거가 널려있다.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한국의 도서관은 건물 위치부터가 서구사회의 library와 다르다. 한국의 도서관은 대부분이 접근조차 불편한 자투리땅이나 유휴공간에 지어져 있다. 선진사회가 되는 데 필요한 구색만 갖추면 되었기 때문이다. 구색 갖추기의 영향이 어디 건물의 위치에서만 드러날까? 도서관의 핵심인 장서와 서비스에 이르면 그 격차는 더욱 뚜렷해진다. 가령, 서구사회의 library가 구축해 놓은 홈페이지만 살펴보아도 한국 도서관의 부끄러운 실체와 안타까운 민낯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들의 홈페이지는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보와 문화 그리고 교육시스템으로서의 각종 서비스와 프로그램으로 그득하다. 그리고 그러한 고객 중심적 서비스와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을 위해 전문교육을 받은 librarian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도서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 기능은 참담하며 그 와중에 감지되는 사서의 역할과 기능은 너무도 초라하다. 하긴, 사서조차 ‘구색 갖추기용’에 불과하여 인력의 규모와 자격요건을 최저 수준으로 정해 놓았으니, 사서들 스스로 librarian으로 진화하고자 노력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여건이었다.

 

(왼쪽)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의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관한 선언’과  (오른쪽) 미국도서관협회(ALA)의 '도서관 권리장전(Library Bill of Rights)'

그렇다면 한국의 사서들은 물론이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깨달아야 하며, library에 원천적으로 내재하고 도서관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철학적 가치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꽃이며, 민주화를 위한 도구이자 결실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민중이 주인인 사회체제를 의미한다. 민중이 주인이 되려면,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지적 역량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합리와 억지를 가늠하는 지적 역량을 갖춰야 비로소 주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다. 민중이 그러한 지적 역량을 스스로 갖추어 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사회기관이 바로 근대적 의미의 library이다. 이처럼 library의 철학적 가치는 민중의 지식화 혹은 지식의 대중화를 통해 사회의 민주화를 구현하는 데 있다. Library는 소수의 권력자나 지배층에 의해 배타적으로 점유된 지식자원을 민중들이 자유롭게 접근하여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따라서 지식자원에 대한 접근이나 소유가 자유로운 ‘가진 자’들보다는 지식자원에 대한 접근조차 어려운 ‘가지지 못한 자’들의 지적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고자 하는 것이 library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형이상학적 가치이자 사회적 책무이다.”

한국사회의 구성원에게 저자가 설명하는 도서관철학은 기껏해야 뜬구름 잡기요 허장성세에 불과할지 모른다. 한국인의 대부분이 삶의 여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도서관은 ‘무료 공부방’이요 ‘공짜 책방’이요 ‘무료 PC방’이요 ‘공짜 휴게실’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시절부터 도서관은 그들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명목뿐인 ‘근린생활시설’에 불과했다. 그렇듯 부정적인 이미지는 올림픽을 개최할 만큼 경제성장을 이루고 OECD에 가입할 정도로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어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국가 차원의 도서관진흥정책이 광범위하게 추진되어온 근자에 이르러서도 “별로 긴요하지 않은” 근린생활시설로서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렇듯 부차적인 근린생활시설의 관리자가 바로 사서인 것이다.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기대하는 것이 허욕일 수밖에 없는 한국적 정황이다. 실정이 그렇다 보니 도서관 관련 법제에서조차 사서의 규모를 최소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정책입안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차라리 시설의 확충에 투자하지 ‘시설 관리자’를 과도하게 고용하는 데 예산을 낭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library로 진화시키기에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장애가 한국사회에는 상존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한국사회가 서구의 도서관문화를 수입한 지 70년이 넘었는데, 어찌하여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아직도 도서관을 서적과 설비를 갖추어 놓은 공짜 책방이나 무료 공부방 혹은 PC방쯤으로 여기는 걸까? 도서관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문헌정보학)이 독립적으로 자리 잡은 지 반세기가 넘었고 사서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과정이 수십 개의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도서관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보와 문화 그리고 교육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또 기능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그토록 무지하고 무심한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전문교육을 받은 사서의 존재와 확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공감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듯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후진적인 도서관인식을 마주하면서 도서관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그리고 사서를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저자가 지난 30년 동안 느꼈던 답답함, 안타까움, 부끄러움, 좌절감, 그리고 부아와 오기가 이 책의 구석구석에 녹아있다. 특히, 이론적, 실무적, 그리고 정책적 관점에서 저자가 느꼈던 한국의 척박한 도서관문화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질환과 그러한 질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사구시적인 처방이 이 책의 곳곳에 담겨있다.

이 책은 모두 6편의 글을 담고 있다. 첫 번째 글은 library에 내재하는 철학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반추하면서, 그를 구현하기 위한 librarian의 직업적 책무와 전문적 역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한국인의 도서관인식에서 두드러지는 후진성과 그러한 후진성을 구조화하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도서관의 일상적 유용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세 번째 글은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도서관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소수자가 겪는 정보빈곤의 양태를 소개하면서 학계의 소수자 연구와 도서관의 소수자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네 번째 글은 세 번째 글의 연장에서 시도된 사례연구이다. 고령자 집단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베이비부머의 정보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도서관이 마땅히 담당해야 하는 책무와 서비스 기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다섯 번째 글은 한국의 사서직이 전문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요인을 전문직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하면서, 사서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토착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 글은 한국 문헌정보학의 건강성에 대한 논의이다. 학문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구조적 질환을 분석하면서 건강성 회복을 위한 전략과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환 부산대학교·문헌정보학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미국 UCLA에서 정보정책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 재직하면서 한국의 도서관 현실에 적합한 토착적인 이론을 연구하고 실사구시적인 정책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두어왔다. 저서로는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정보정책』, 『재일한인의 정보행태와 정보빈곤』, 『도서관의 가치와 사서직의 의미』, 『한국의 도서관정책: 쟁점과 과제』 등이 있다. 이외에 공저로 『20세기 한·일간 지식정보의 생산과 흐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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