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가 걸어온 길과 미래적 가치
상태바
한국불교가 걸어온 길과 미래적 가치
  • 김용태 동국대·한국불교사
  • 승인 2023.03.12 1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쿠스]

한국불교는 1,700년의 오랜 역사를 한국인과 함께 해왔다. 불교는 한국사의 전개 과정에서 한국인의 심성과 세계관 형성에 주축 역할을 했고, 사상과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져왔다. 특히 기독교가 자리 잡기 전의 전통 시대에 불교는 죽음 이후의 사후 영역을 주로 담당해왔다. 이는 유교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평가되는 조선 후기에도 마찬가지였고, 오늘날에도 불교는 천주교, 개신교와 함께 3대 종교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불교는 19세기 후반부터 불붙은 전통·민족·서양 종교의 치열한 각축장 속에서 문명개화의 근대화를 추구했고, 철학과 종교를 아우르고 평등과 구원을 앞세운 불교야말로 ‘근대적’이고 ‘세계적’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불교계의 인사권과 재산권을 휘두르는 사찰령을 시행하면서 식민지 체제의 모순과 굴곡을 경험해야 했다. 불교의 사회화·대중화·현대화의 염원은 현실의 벽에 부딪쳤고 정치적 종속, 대처승의 급증, 친일 행태와 같은 식민지 유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해방 이후 불교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되었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기독교 편향정책과 구법령(사찰령) 유지로 인해 불교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1954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왜색 잔재의 청산을 내세워 불교 정화의 유시를 내렸고 이후 불교계는 수행 전통을 지켜온 비구와 기득권화된 대처 측으로 양분되어 대립이 격화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했지만 대처 측은 결국 태고종으로 갈라져 나갔다. 정화는 명분과 상징성에서 여론의 호응을 받았지만, ‘급조 승’으로 인한 인적 수준 저하와 교학과 의례 등 다양한 불교 전통의 단절 같은 부정적 결과도 초래했다. 

이처럼 불교계는 현대사의 격랑과 부침을 겪으며 정치권력에 휘둘리기도 하고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법난까지 당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사회의 민주화 성취와 궤를 같이하여 1994년 개혁 불사를 단행했고 시대·사회·대중과 함께 하는 자비의 종교로 거듭나려 했다. 

불교는 2,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세계종교이자 고도의 철학적 사유체계이다. 또 붓다 이후 여러 시대와 지역을 횡단해 온 복합적 문명 코드이기도 하다. 불교 안에는 신앙과 수행, 사상의 프리즘을 통해 다문화적 스펙트럼이 빛을 발한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불교는 고대의 재래 신앙과 관념을 넘어서며 개인 심성과 내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이후 유교와의 경쟁에서도 종교적·문화적 지분을 지켜냈고 근대 서구 문명의 수용과 변용 과정에서도 고유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에서 종교의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 과거의 지분이나 역사적 권위만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리기는 어렵다. 한국사에서 불교는 어떤 역할을 해왔고,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개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불교적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래된 전통 종교라는 허울이나 당위적 정당성이 아닌, 비판적 성찰과 근본적 문제 제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배타적으로 불교의 우월성만 주장하는 것은 불교의 정신이나 가치와도 맞지 않으며 무책임한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다.

불교는 무아와 연기를 핵심 개념으로 한다. 다시 말해 영원한 실체로서의 자성이 없는 공, 인과론적 순환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사유이다. 또한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넘어서는 종교적 구원의 역할도 담당해왔다. 최근에는 인지과학 등에서 과학으로서의 마음(무자아)과 경험으로서의 마음(인간존재에 대한 믿음) 사이에 놓인 괴리와 저주받은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실천적 가치체계로서 주목받고 있다. 나아가 환경 및 생태 문제, 자연과학의 원리에 불교의 교리와 개념을 적용하고 서로의 유사성을 찾기도 한다. 무엇보다 개인의 심신을 치유하는 명상 심리와 수행 분야에서 불교는 동·서양의 구분을 뛰어넘어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서 불교는 3대 종교의 하나일 뿐 아니라 한국인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온 전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전국의 명산에는 고색창연한 사찰이 있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누구나 일상에 찌든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박물관에서 불화와 불상 특별전이 성황리에 개최되고 외국인도 참여하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끄는 것은 전통문화로서 불교가 갖는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불교의 미래적 가치는 불교가 갖는 장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달려있다. 불교는 자율과 평등, 공동체와 이타주의, 비폭력과 생태주의 등 많은 장점을 가진다. 여기에 사회복지, 죽음의 문제 등 종교로서 불교가 감당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불교는 정신과 몸을 아우르는 마음의 치유, 자비의 실천, 상생과 소통의 영역에서 한국 사회에 기여할 바가 많으며, 그 싹은 결국 불교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김용태 동국대·한국불교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수학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한문불전번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 사상사』(2021), 『토픽 한국불교사』(2021), 『韓國佛敎史』(2017, 일본 춘추사) 외 다수가 있으며, 『조계고승전』(2020)을 함께 번역했다. 『테마 한국불교(1~10)』(2013~2021), East Asian Buddhism and Modern Buddhist Studies(2017) 등을 비롯해 스무 권이 넘는 불교학술서를 기획하고 함께 펴냈다. 대원불교문화상 대상·선리연구원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