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고등교육정책의 역주행을 막고 대안을 공론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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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고등교육정책의 역주행을 막고 대안을 공론화하자
  • 교수노조
  • 승인 2023.03.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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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우리 전국교수노동조합(이하 ‘교수노조’)는 작년 말부터 윤석열 정부가 쏟아내기 시작한 고등교육정책을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전면적으로 비판해왔다. 나아가 지난 2월 1일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이하 ‘교수연대회의’)를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일곱 개 교수 단체가 모여 출범시켰다. 이 연대조직은 사회적 공론화를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을 저지하고, 현실에 맞는 고등교육정책을 논의하고 수립하도록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그동안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우리의 면담 요청을 묵살해왔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교육부로부터 면담에 응하겠다는 연락이 와서 교수연대회의 차원에서 면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하던 때와 달라진 바가 없는 장관이기에 면담을 통해 진지한 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로서는 직접 입장을 밝히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해야 한다.

이미 성명서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비판이지만, 「대학설립·운영규정」 전부개정령안과 ‘라이즈(RISE) 사업’(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의 심각한 문제를 다시 되돌아보며 몇 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교육부가 작년 12월 30일 입법예고한 「대학설립ㆍ운영규정」 전부개정령안(이하 ‘개정안’)의 요지는 대학의 기본적인 4대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기본재산)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며, 특히 설립기준과 운영기준을 구분하여 후자의 운영기준을 대폭 완화, 혹은 철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현재 운영 중인 대학들이 운영자의 입맛에만 맞게 부담과 비용을 줄이게 허용하면서 정부 책임은 방기하는 일이다. 특히,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교원 확보 기준의 완화는 경악할 수준이다. 개정안은 운영기준에서 전체 교원 중 겸임·초빙교원 비율을 현행 1/5에서 1/3로 완화하고, 학과 간 정원 조정 시 교원확보율 요건을 폐지하고 있다. 지금도 각 대학은 겸임·초빙교원 규정을 악용하여 열악한 처우와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각종 비정규교수를 양산하면서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데 이 기준을 더 완화한다면 그야말로 각 대학의 운영진이 교수와 연구자를 착취하면서 연구와 교육의 본령을 외면한 채 자기 편할대로 대학을 운영하게 허용하는 셈이다. 

이미 지역의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 건물과 토지가 현행 기준을 채우고 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교사와 교지 기준 완화는 일부 대도시의 노른자위 땅을 가진 대학을 제외하면 지역 대학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 대학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 대학들은 기준 완화로 남게 된 건물과 토지를 팔거나 다른 용도로 바꿔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또 학과 신설과 통⸱폐합, 학과 간 정원 조정이 한층 자유로워지는 것을 이용해 인기학과 위주로 대학을 재편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다시 수도권 쏠림 현상을 심화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이 지역대학의 몰락과 지역 소멸을 가속화할 것은 분명한 일이며, 지역대학의 몰락이 지역경제의 침체를 악화시켜 결국은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서울과 수도권의 다수 대학들도 수익을 중시하며 기초학문을 점점 더 외면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장기적으로 학문과 산업의 토대인 기초학문을 부실하게 만들어 마침내 응용학문이나 첨단전공마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부실하게 된다. 시장에 맡길 수 없는 고등교육을 시장에 내맡겨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전형적인 시장만능주의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대학설립·운영규정 전부개정령안이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밝힌 지역대학 정책인 ‘라이즈 사업’ 역시 지역 대학을 살리는 정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선 ‘라이즈 사업’은 지난 연말 교육부가 고등교육정책실을 폐지하는 등 대학 관리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겠다고 한 결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대학을 관리하는 능력과 경험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을 지원할 예산도 태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이 발상은 결국 대학 통폐합 등 구조조정의 궂은 뒤처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주무부서인 교육부는 빠져나가겠다는 꼴이다. 

‘라이즈 사업’은 2027년까지 각 지역에 30개의 ‘글로컬대학’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핵심사업을 설정하여 겉으로는 지역대학 생태계를 살리는 사업으로 포장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주호 장관은 ‘글로컬대학’ 지원사업이 라이즈 생태계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하면서 지역대학이 자기희생이 따르는 과감한 변화를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제안할 때 선정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각 지역별로 거점국립대 하나 외에 많아야 두세 대학 정도만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시장에 맡겨 대규모로 정리하겠다는 심산이다. 한마디로 라이즈 사업은 지역대학을 살리는 사업이 아니라 대다수의 지역대학들을 본격적으로 통폐합하겠다는 선언이다. 더구나 교육부장관은 글로컬대학 선정 기준인 과감한 개혁의 좋은 예로서 지역의 국공립대가 도립대, 시립대로 전환하는 결정을 거론하였으니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국가책임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꼭 지적해야 할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고등교육정책의 학문적, 교육적 내용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육부 보도자료는 글로컬 대학을 “지역발전 전략과 연계하여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고 지역 내 다른 대학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특화 분야에 세계적인 대학”이라고 설명하지만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정말 2020년대다운 선도적 고등교육정책이라면 현재 인류가 처한 기후-생태위기에 대한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투자 계획 정도는 명시해야 하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탄소중립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수출산업이나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흔들리게 되며, ChatGPT가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듯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혁명이 본격화되고 있다. 따라서 고등교육정책도 ‘생태적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양대 축에 대한 확고한 방향 제시를 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하는 정책은 “특화 분야”라는 말에 드러나듯이 대학 특성화라는 해묵은 타령에 머문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수노조는 교수연대회의의 틀을 바탕으로 대중적 관심을 끌고 국민여론의 지지를 얻을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과 반대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며 우리 나름의 큰 청사진,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고등교육 개혁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므로 우리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만드는 대안은 확보되는 예산 규모에 맞춰 가장 긴급하고 핵심적인 과제부터 해결하는 구체적 실행계획까지도 어느 정도 담아내야 한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2023년  3월  6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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