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 낙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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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 낙서 소회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3.03.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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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참 오랜만에 공중화장실에서 보는 낙서였다. 

“한예종 붙게 해주세요. 천운이 따라와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간절해요... 열심히 할게요.”
↳ “붙었나요? 궁금하니 후기 좀.”
↳ “꼭 붙으셨길 ♡ 저두 편입 성공할게요!”

얼마 전에 강연 차 방문한 어느 지방도시 공중화장실에 각기 다른 글씨체로 댓글이 달린 낙서를 보며 그냥 웃고 지나치지 못했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버스터미널 화장실 내부에 부착된, 반쯤 뜯겨진 광고지 여백에 대학합격을 기원했을까 싶었다. 한편으론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위주 대학교육 체제 여파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역사립대의 예술대학 소속 교수로서 학생의 편입계획을 공중화장실에서까지 보는 현실이 ‘웃프기’도 했다. 아울러서 여백마다 빼곡히 적힌 일련의 낙서들은 낯선 이에게도 격하게 공감하며 응원하고 자기소신을 피력하는 우리 정서를 은밀한 공간에서도 엿보게 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자! 회개하세요.”
↳ “예수는 없어 바보들아”
↳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 “예수♡ 믿으세요”
↳ “도대체 예수 믿어서 얻는 게 뭐임…?”
↳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 갑니다.”
↳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다들 펜 들고 다니는 이유는 뭐야”
↳ “오늘도 파이팅!”
↳ “성공할거야.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자.”

이렇게 연이은 댓글 주위로 종교경전 글귀들이 빈틈없이 적혀있었다. 남자화장실에는 들어가지 못해 모르겠지만, 그날 본 여자화장실 낙서는 사는 이유에 대한 구도의 삶, 열심히 노력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의 흔적을 여실히 담아냈다. 매일같이 이원론적 분열을 향해 점입가경으로 치달리는, 두서없는 낙서보다 훨씬 더 낙서 같은 국내외 상황에 익숙해진 터라 사뭇 신선하기까지 했다. 이 화장실 낙서를 디지털프린팅 작업으로 작품제작 해볼거나 하는 생각도 한순간 들었다. 

너도나도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 요즘에는 공공장소는 물론이요, 대학교 캠퍼스에서도 낙서가 사라졌다. 우리 대학 화장실에 건의 겸 낙서용 노트가 한동안 배치된 적도 있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소싯적에 학교, 공중화장실, 건물 벽을 포함하여 도처에 자유로운(정치적 금기소재 제외) 내용과 필체와 이미지로 난무했던 그 많은 낙서들은 종적을 완전히 감추진 않았다. 진즉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채널로 갈아탄 후, 인터넷 같은 비대면 공간에서 억눌린 생각과 욕구와 스트레스를 훨씬 더 노골적, 직설적으로 내뱉고 있다. 우리 사회 네티즌들의 의사표현 수위는 조직적인 댓글부대를 차치하고라도, 사회심리학적으로 주목해야할 정도가 되었다. 들끓는 사회 구성원의 생각을 사이버공간 밖에서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개방적 대안공간, 공공낙서의 장이 아쉽다.

길거리 낙서라는 비난과 조롱을 무릅쓰고 역사에 전설적 족적을 남긴 키스 해링, 케니 샤프, 뱅크시 등의 그라피티 아트는 물론이요, LA 같은 도시에서 동네벽화 수준을 넘어 여러 블록에 거쳐서 건물 수십 개를 뒤덮은 낙서의 장관은 감탄을 부른다. 하지만 다른 시선에서는 쓰레기나 일탈로 보이겠다. 작금에 글로벌 문화예술계에서는 예전에 화장실 낙서, 담벼락 낙서, 종잇장 낙서 같이 무가치한 폐기대상이던 것들이 하위문화의 주역들로 성장해 서브컬처 산업의 부흥을 이끌고, 막강한  ‘소프트 파워’ 문화를 형성했다. 천문학적 액수의 경제적 수익창출은 덤이다. “네 멋대로 해라”식 표현의 자유가 사회에 주는 부가가치다. 

’희망찬‘ 3월 신학기에 왜 뜬금없이 낙서를 운운하는가. 지역사립대들을 위시해 많은 대학의 존속여부가 불확실하고, 대학 설립이념과 교육철학이 상업적 성공여부에 따라 낙서보다 쓸모없는 헌신짝 마냥 버려지며, 지방도시 소멸이 가시화되는 이 시점, 그리고 대학교육이 메타버스, AR, VR, AI, 챗GPT 등과의 동행방법을 고심하는 이 시점에, 아날로그식 낙서의 효용성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휴대폰 메모장에 낙서를 끄적거린다. “가상현실, 인공지능은 애초에 어떤 낙서에서 비롯? → 가상현실에서 낙서는 어떻게 진화할까? → AI의 낙서는? → 낙서보다 더 낙서 같아지는 세상에서 대학의 의미와 역할은? 요즘 대학은 어떤 족적으로 남을까? ?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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