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ChatGPT) 시대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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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ChatGPT) 시대의 글쓰기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3.03.0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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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나 ‘챗지피티(ChatGPT, 챗GPT)’ 이야기가 넘쳐난다. 특히 학생들의 과제물을 평가하고 채점해야 하는 대학가에서는 인공지능으로 글을 써 준다는 이 도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가 주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학생들이 이 소프트웨어로 만든 글을 과제로 제출할 경우 엄격하게 감점하고 훈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가 하면, 학생들이 낸 글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것인지를 과연 쉽게 구분할 수 있겠느냐는 말까지 들린다.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글을 쓰는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되었다. ‘챗지피티’가 나오기 전부터 인공지능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 작품을 작곡하고 있었다. 단지 그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사람의 창작품과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챗지피티’에게 “챗지피티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대답이 나왔다. 대한민국 표준시로 2023년 3월 6일 오전 1시에 ‘챗지피티’가 대답한 내용이다.

 

"아니요, ChatGPT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ChatGPT는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와 정보를 바탕으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텍스트를 생성하고 응답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직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과 입력된 데이터에 한정되며, ChatGPT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거나 지배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은 항상 인간의 지도와 감독 아래에서 개발되고 사용되어야 합니다. 즉,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목적과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사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할 때 항상 적절한 감독과 조치가 필요합니다.”

 

둘째 단락 첫 문장에 쓰인 ‘사용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이 마치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것은 이 세상의 어느 도구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조건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칼은 항상 인간의 지도와 감독 아래에서 요리나 공작 등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같은 말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처음에 했던 이야기, 즉 대학가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챗지피티’가 대학생의 과제물을 만들어 줄 정도로 신통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어로 생성되어 나오는 결과물은 아직 영어나 독일어 등에 비해 품질이 좋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학술 정보와 같은 고급 정보를 다룰 때 그 수준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확인해 본 바로는, 영어나 독일어로 먼저 질문을 하고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질문할 경우 한국어와 다른 언어의 내용 수준 차이가 거의 나지 않지만 한국어로 먼저 질문을 던질 경우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답이 산출돼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결국 이 인공지능 시스템이 참고할 만한 한국어 텍스트의 양과 질이 영어와 독일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학가에서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챗지피티’로 과제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작성한 한국어 글의 품질이 높아지도록 더 수준 높고 더 읽을 만한 글을 더 많이 쓰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학생들의 과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교수들부터 한국어로 좋은 글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인터넷 검색 엔진을 활용해서 정보를 찾는 것이 어느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처럼 인공지능 글쓰기 도구를 활용해서 글을 쓰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학생들이 ‘챗지피티’를 사용하는 것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새로운 변화를 그렇게까지 겁낼 필요는 없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저작권을 엄격히 따질 필요가 없는 기계적이고 실용적인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그 결과물을 사람이 책임지고 검사하는 것을 전제로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사람은 인공지능이 찾아 준 자료들을 바탕으로 더욱 창의적인 글을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글을 슬기롭게 쓰는 길이다. 인공지능 기계가 만들어 준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글을 참고하되(물론 이때는 필자가 앞에서 직접 보여 준 바와 같이 출처가 인공지능 기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층 더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21세기에 인류가 개발한 이 새로운 도구가 인간을 감히 지배하는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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