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다윈의 샘으로 돌아가 그의 물로 목을 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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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다윈의 샘으로 돌아가 그의 물로 목을 축인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3.05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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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의 사도들: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476쪽

 

1809년 2월 12일은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 이론의 창시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태어난 날이다. 다윈 탄생으로부터 214년,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164년이 지난 현재 다윈의 이론은 현대 생물학의 기초 중의 기초, 현대 과학의 기둥 중 기둥으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다윈주의(Darwinism)라고도 불리는 다윈 진화론의 한국 사회에서의 위상도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느리지만 천천히 높아지고 있다. 

이 책은 다윈주의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道伴)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적 통찰이 계몽주의 이래 과학에서부터 경제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학문 세계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 주는 세계 다윈주의자 인터뷰집이다.

이 인터뷰집에 참여한 인터뷰이(inteveiwee)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ㅇ 첫째 사도: 다윈주의의 기원지로 일컬어지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50년 가까이 다윈 핀치(되새류)를 연구해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 적자 생존을 통한 종의 분화와 생물 다양성 확대라는 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낸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
ㅇ 둘째 사도: 자연 선택과 함께 다윈 진화론의 두 기둥 중 하나인 성 선택 개념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를 명쾌하게 해명한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헬레나 크로닌.
ㅇ 셋째 사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예언했던 심리학과 생물학의 융합의 산물인 진화 심리학의 최전선에서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연구하는 스티븐 핑커.
ㅇ 넷째 사도: 멘델의 유전학과 DNA 이중 나선 구조 발견으로 20세기 초중반 눈부신 발전을 이룬 유전학의 관점에서 다윈주의 통찰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리처드 도킨스.
ㅇ 다섯째 사도: 의식, 종교, 자유 의지, 문화의 진화 등 기존에는 철학의 과제로만 여겨졌던 인문학적 문제들을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재구축하는 생물 철학자 대니얼 데닛.
ㅇ 여섯째 사도: 화석으로 식물의 진화 계통수를 추적하는 식물학자이자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과 런던 큐 왕립 식물원의 수장을 역임한 피터 크레인.
ㅇ 일곱째 사도: 독특한 역사를 이룩한 일본 영장류학의 정통 후계자이자 유인원 언어 연구의 개척자인 마쓰자와 데쓰로.
ㅇ 여덟째 사도: 방송과 책, 그리고 강연을 통해 다윈의 사상과 생물학의 발전상을 대중에게 널리 퍼뜨리기 위해 애써 온 스티브 존스.
ㅇ 아홉째 사도: 다윈의 가장 유창한 대변자 중 하나인 과학 저술가 매트 리들리
ㅇ 열째 사도: 사이비 과학에 맞서 회의주의 운동을 주도하며 다윈의 진화론을 강력하게 옹호해 온 마이클 셔머.
ㅇ 열한째 사도: DNA 이중 나선 구조의 발견자로 20세기 생물학 그 자체로 평가받았던 제임스 왓슨.
ㅇ 열둘째 사도: 다윈의 삶과 업적, 그의 성격과 행적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재현해 낸 『찰스 다윈 평전』의 저자 재닛 브라운.

저자 최재천 교수는 이 열두 사도들(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를 한 사도로 계산했다.)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찰스 다윈이 어떤 ‘인간’, 어떤 ‘과학자’였는지, 다윈이 썼고 생물학에서 사용되는 ‘진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윈의 업적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다른 분야 위대한 과학자들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다윈주의가 과학만이 아니라 철학과 종교, 나아가 인간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각의 다윈주의자들, 이 책에 등장한 다윈의 사도들은 진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그리고 도대체 왜 다윈이 중요한지 따져 묻는다. 최 교수는 인터뷰를 모두 정리하고 나서 쓴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살면서 내가 해 온 제법 많은 일을 돌이켜보니 다윈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수행한 행전(行傳)이었다. 2009년 세계 여러 곳에서 열두 동료 사도들을 만나 그들의 행전을 함께 되짚어보며 나는 참으로 많은 걸 깨닫고 배웠다.

이 책은 비전문가가 묻고 전문가가 답하는 형식의 일방적 인터뷰를 묶은 책이 아니다. 사도들 간의 진솔한 담론집이다. 우리는 대체로 함께 스승을 칭송하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데 기꺼이 투합했다. 그러나 때로 부딪치고 가끔은 내뱉은 말을 스스로 주워 담기도 했다. 다윈의 사도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면 그들의 책을 읽으면 된다. 그들의 강연을 들으면 된다. 하지만 진솔한 대담은 책과 강연에서 접할 수 없는 내면 깊숙한 곳 또는 아예 마음 뒤편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종종 각본에 있는 질문이 아닌, 엉뚱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런 팽팽한 긴장감을 즐겼으면 좋겠다.” - 맺음말에서

다윈의 삶과 업적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원전을 직접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생 다윈을 붙잡고 생물학부터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구해 온 이들의 경험과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다윈 자신도 몰랐던 그의 삶과 업적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이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생명 과학의 가장 근본 원리로서 받아들여지며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고 경제 위기와 정치적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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