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에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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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에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3.0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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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 정치, 돈: 미국 의료의 역사사회학 | 폴 스타 지음 | 이종찬 옮김 | 한울아카데미 | 760쪽

 

미국은 서구의 선진국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미국의 보건의료 문화는 문화적 특징이 비교적 비슷한 유럽과도 크게 다를 정도로 예외주의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미국 의료의 영향 하에 성장해 온 한국 의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미국 의료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미국 의료의 역사적 변천을 사회과학, 인문학, 의학의 융합적 사유의 지평에서 접근한다. 의학의 전문화, 의과대학과 의학교육, 국민건강보험, 의료수가, 기업의료 등 다양한 주제를 분석한다.

이 책이 미국 의료와 그 역사에 접근하는 관점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 의료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의 산물이기에, 구조적인 분석과 이야기 역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저자의 방법론적 문제의식은 사회학과 역사학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있다. 둘째, 의료의 정치학과 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의학을 광범위한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의료는 한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나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셋째, 저자는 의료의 문화, 제도, 정책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데, 이를 통해 의료사회학의 학문적 존재 근거가 더욱 부각된다.

책은 두 개의 ‘권(book)’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사, 권력 그리고 병원’을 주제로 하는 1권은 근대 의학이 아직 형식과 내용을 갖추기 전인 18세기부터 1930년대까지의 미국 의료를 다룬다. 구체적으로 의사, 기업, 병원이라는 세 부류의 사회적 행위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시장경제력으로 만들어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의사들의 승리가 힘보다는 믿음에, 권력보다는 문화적 권위에 근거한 결과라고 본다. 미국 의료의 사회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 다섯 요인들 ― 첫째, 전문화와 병원의 성장에 따른 비공식적인 통제 체계, 둘째, 의료시장에 대한 통제, 셋째, 의사들의 자본주의적 책무로부터의 면제, 넷째, 의사에 대한 대항세력의 쇠퇴, 다섯째, 보건과 제약 시장에 대한 지배 ― 이 서로 결합해 미국 의사들의 권력 확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어서 ‘의사, 국가, 그리고 기업’은 1권의 시기 이후,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의료가 어떻게 기업화되어 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 의료의 기업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미국적 ‘예외주의’가 미국 의학과 의료에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논의한다.

2017년 원서 개정판에 추가된 에필로그에는 초판 출간 이후 35년간 미국의 보건의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 담겨 있다. 그동안 미국 의료는 어떻게 변했을까? 저자는 답한다. “미국 경제의 25개 업종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물어본 결과, 최악의 평가를 받은 두 민간 부문은 의료산업과 제약산업이었다.” 지난 35년간 미국에서는 의료의 기업화가 더욱 빨라졌고,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인들은 자신이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보건의료의 덫’에 빠진 상황이다.

저자 폴 스타는 베버(Max Weber)로부터 권위의 개념을 빌려오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베버의 사회적 권위와 구별되는 ‘문화적 권위’를 제안한다. 양자 간에는 차이가 있다. “사회적 권위는 명령을 통해 행위를 통제하는 반면에, 문화적 권위는 사실과 가치를 정의함으로써 현실을 창조해 낸다.” 양자는 가끔 서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도 있지만, 사회적 권위가 문화적 권위를 꼭 수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지식 자체보다 사실과 가치의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어 권위의 이론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의사들의 치료 능력이 향상되어 의학적 권위가 확립되었다는 설명에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달은 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자본의 의사에 대한 지배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자본주의가 다양한 의료체계에 적합한 이념이며, 미국 의학이 자본가 계층이나 자본주의 체제의 ‘객관적’ 이해에 의해 발달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파슨스(Talcott Parsons)가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의사와 환자의 ‘역할기대’ 개념이 환자-의사 관계의 역사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차원을 무시하고 있다며, 의학적 권위의 제도적 요인을 논의했던 의료사회학자 프리드슨(Eliot Freidson)에 주목했다. “의사들이 규제의 방식을 좀 더 전략적으로 사용할수록, 의사의 권위를 지지해 주는 법의 강제력도 강도가 세어져 갔다.”

아울러 저자는 의학적 권위와 의료시장의 형성을 근본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본다. 권위에 근거해 의사들이 경제력을 확보하게 되면 의료시장의 조직과 질서를 지배할 수 있다. 여기서 의사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함께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도 의사의 시장지배력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한 사회에서 의사의 자율성과 의료체계에서의 전략적 지위는 의학적 권위의 발달과 의료시장의 형성에 대한 함수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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