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근본적으로 불투명하다는 것, 그것이 진실 중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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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근본적으로 불투명하다는 것, 그것이 진실 중의 진실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3.05 2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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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투명성의 현상학 | 조광제 지음 | 그린비 | 296쪽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현상학은 불투명한 존재를 적발하고 그것이 왜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는 철학적 사유이다. 그렇다면 불투명성이란 무엇인가? 불투명성은 이성으로 대표되는 투명함, 명증함과 대조된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근원적인 불가능성과 ‘존재’의 무한 깊이의 심연 두 가지를 오가며 작동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은 존재의 근원적인 불투명성을 다만 명시적으로 확인할 뿐이며, 이때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명증한 인식’이라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불투명한 사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곧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 ‘감각 사물’을 통해서다. 감각 사물은 주체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순수 객관적인 사물도, 주체의 감각적 관념의 결과물만도 아닌 존재이다.

이 책은 후설부터 하이데거, 마르셀,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리쾨르, 데리다까지 8명의 유력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를 ‘존재의 불투명성과 심연’이라는 화두로 엮어 독자적 논의를 전개한다.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이성의 논리는, 존재하는 사태는 근본적으로 명증하다고 전제해 왔다. 만약 어떤 사태가 명증하지 않다면 사태의 탓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사태를 명증하게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너머에서 찾는 ‘절대 이성’을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존재와 인식이 그토록 명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한 명증성을 벗어난 불투명하고 어두운 영역이란 정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저명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로부터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가 드러나는 대목들을 뽑아 논의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각 사상가들이 사물의 존재 앞에서 자신의 이성적 사유를 어떻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핵심 원인이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칸트가 말한 ‘사물 자체’에서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고, 그로부터 ‘감각 자체’에서 존재의 불투명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투명한 존재를 ‘감각 사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 사물은 대표적인 불투명성의 현상학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에서 특별히 부각된다.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가 추구했던 명증성 내지는 투명성에 대립하면서 오히려 몸의 불투명성을 근본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결국 불투명성은 이성, 반성하는 의식에 대한 불투명성이다. 그리고 존재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세계 자체 역시 근원적으로 불투명함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근원적으로 불투명한 우리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불행한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불투명성을 긍정 또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근원적 불투명성이 오히려 인간과 세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살펴 온 존재의 불투명성에 견주어 보면, 언어는 근원적으로 불투명함을 바탕으로 해서 발설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성 내지는 지성으로써 고정할 수 있는 낱말이나 문장의 의미를 활용해서는 결코 시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시작으로서의 언어관에서 우리는 존재의 불투명함이란 기실 그 자체 그저 무의미함을 의미한다거나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단단한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중략) 요컨대 근원적으로 불투명한 삶을 견뎌 내는 것은 우리가 겪는 인고가 아니라, 알고 보면 우리가 존재자 전체를 포섭하면서 그 전체의 밑바탕에서 움터 나오는 시적인 의미를 끌어들여 보호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저 불투명한 심연을 품은 존재에게로 넘겨주고 아울러 저 존재를 나의 존재로 넘겨받는 상호교환적인 거대한 작업이다.” (143쪽)

존재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욕망을 가진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존재는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무한한 깊이의 어둠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놀라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자의 상태”라고 말했다. 존재론적 우연 앞에 놀라움 혹은 물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재의 불투명성을 탐구하기를 권한다. 우리의 존재와 삶은 근원적으로 감각 사물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힘에 휩쓸리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불투명성을 극복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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