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쟁의 진실게임…평화를 위한 전쟁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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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의 진실게임…평화를 위한 전쟁은 가능한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3.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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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 이해영 지음 | 사계절 | 336쪽

 

이 책은 2022년 2월에 시작된 이상한 전쟁, ‘우크라이나전쟁’의 원인, 경과 그리고 해법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저자 이해영 교수는 “푸틴 치매설” “러시아군 키예프 대패설” 등 이 전쟁에 대해서는 한쪽(이른바 서방 1세계)으로 치우친 해석/보도에 관하여 “과연 사실이 그러한가?”라고 질문한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전쟁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브레히트의 연극처럼 이 전쟁을 바라보는 독자의 관점을 낯선 방향으로 뒤집고, 이 전쟁의 드러나지 않은 혹은 의도적으로 가려진 국면으로 우리를 잡아당긴다.

진실은 언제나 흑과 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들을 모두 포함할 때 우리는 사건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해서 한국에는 오직 흑과 백만 존재한다. 제국주의 러시아와 파시스트 푸틴은 이 전쟁의 절대 악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국민들과 영웅 젤렌스키는 이 전쟁의 숭고한 피해자이자 절대로 승리해야 하는 선이다. 민주주의와 세계의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숭고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와 연대하고, 그들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나아가 용기 있는 자들은 의용군으로 직접 참전하여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선이며 곧 이 세계의 정의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기만 할까? 포화에 스러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맞은편에 또한 전쟁에 희생되는 러시아 국민들이 있지 않나? 푸틴이 자국 병사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죽음을 맞게 하는 독재자라면, 역시 자국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젤렌스키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세계는 과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수십만 발의 포탄과 수십 대의 탱크가 정말로 ‘평화’의 수단인가? 그렇게 구축하려는 평화에 러시아는 포함되는가, 배제당하는가?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이 전쟁을 숭고한 선과 절대 악의 대결로 볼 수 없게 된다.

아마도 이 전쟁 또한 무수한 전쟁들이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 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어떤 지정학 전략과 또 다른 지정학 전략의 충돌이다. 이를 인식하고 전쟁을 선과 악으로 가르지 않는다면 이제 할 일은 이번 전쟁의 과거와 미래를, 그 배경에 있는 많은 관계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던 사건과 인물들을 한 줄로 세우고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주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전략과 손익을 한데 모아서 보면 우크라이나전쟁의 회색 지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전쟁과 평화는 천당과 지옥처럼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절대로 이을 수 없는 사건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의 해석이라고 말한다.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라 상호의 이익과 전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들리지 않던 우크라이나전쟁의 다른 국면을 가리킨다. 전쟁이 정치라는 선으로 평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전쟁의 해석을 통해 해법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바로 그 순간 평화를 상상하고 실행할 교두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지정학적 변화를 인식하고 미래로 나아갈 교두보를 찾고자 한다. 나아가 그로부터 이어질 미래 한국의 삶을 상상한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전쟁의 기원을 나토의 동진과 낡은 ‘루소포비아Russophobia’(Russia와 phobia의 합성어로, ‘러시아 혐오’를 뜻한다) 지정학에서 찾는다. 

현재 미국의 집권 민주당의 주류는 네오콘의 후예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이며, 그 과정에서 소련은 반드시 제압해야 할 주적으로 설정했다. 냉전은 끝났고 소련은 지상에서 사라졌으며 푸틴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네오콘은 자신들의 계획표에 공산주의 소련의 빈자리를 민주주의 러시아로 바꾸었다. 실제로 2014년 이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과 질의 군사 장비와 훈련, 자문을 최대한 제공했다. 그리하여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 전쟁은 미국의 리버럴 혹은 진보 네오콘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바둑돌로 들고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대리전쟁proxy war’이다. 또한 “이 전쟁은 미국이 감독하고 젤렌스키가 연기한 드라마다!”

전쟁은 어느새 1년을 넘어섰다. 러시아의 병력과 자원을 우크라이나에 가두어놓고 경제 제재를 추가하여 러시아를 굴복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러시아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을 강력한 동맹으로 확보하고, 브릭스 국가 및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넓혔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이번 전쟁의 성격을 ‘하이브리드전쟁’으로 정의한다. 전쟁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적 충돌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서방the West 대 나머지the Rest의 세력 경쟁으로 확장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1년) 이래로 서구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했으나 이제 그 목표가 바뀌었다는 저자의 분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도래할 다극 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곧 도래할 두 번째 냉전 시기에도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친미’를 최핵심으로 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문화가 대륙의 지각변동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관하여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지정학적 충격을 성공적으로 흡수하거나, 흡수했지만 충격을 받고 균열이 생기거나, 혹은 충격으로 아예 분열하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든 달러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급속히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정치경제는 엄청난 구조 변경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전쟁의 진짜 의미는 한국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전쟁 너머에 있는 신세계질서를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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