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雙花店은 만두가게인가, 보석가게인가, 색주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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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雙花店은 만두가게인가, 보석가게인가, 색주가인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영어학
  • 승인 2023.03.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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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 교수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인도나 네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사모사는 지역에 따라 속을 채우는 소가 다르고 따라서 맛이 다르다.

사모사(samosa)는 서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종의 군만두 내지는 야채 튀김이다. 원뿔, 반달 모양 등 지역차가 있지만 주로 삼각형 모양인 이 식품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 동아프리카 등 더운 지방 사람들이 좋아하는 페이스트리(pastry), 달리 말해, 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 만든 먹거리다. 무엇보다 기름에 튀긴 것이라 바삭바삭하고 고소하다. 이 사모사가 우리네 만두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생각이 옳지 말란 법 없다. 다만 다른 견해도 살펴보고 따질 건 따져보자. 

  2007년 여름 히말라야 산중의 고대 왕국 라다크에 갔다가 인도 북부의 휴양도시 마날리까지 지프차로 1박 2일이 걸리는 귀환 여행길에 오른 날. 어느 갈림길에 자리한 허술한 식당에서 채소로만 만든 사모사를 먹었다. 그 사모사의 아삭한 감촉과 고소한 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라다크 주민들은 물론 티베트 사람들, 네팔사람들도 튀김 만두 사모사를 모모(momo)라고 부른다. 영동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장칼국수처럼 얼큰하고 맵짤한 수제비는 티-모 또는 텡모라고 부른다. 

사모사의 특징은 속을 채우는 향신료(양념), 양파, 감자, 완두콩 등으로 만든 소의 풍미에 달려 있다. 주 요리로 먹기도 하고, 생선 요리와 고기 요리 사이의 앙트레(entree)나 애피타이저, 아니면 그저 스낵(간식)으로 즐긴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지만 대개 달달하면서 매운 양념 처트니(chutney)에 찍어먹는다. 알다시피 우리는 보통 양념간장에 찍어먹는다. 사모사의 이칭에는 삼부사(sambusa), 사무사(samusa), 신가라(siṅgaṛā), 신나라(siṅāṛā) 등이 있다.

영어 명칭 samosa는 ‘삼각형 페이스트리’라는 뜻의 중세 페르시아어 sanbosag로 거슬러 올라가는 힌디어 samosa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랍어로는 sambusak이라고 하는데 중세 아랍어 조리책은 sambusaj라고 적었다. 

만두를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라고 불렀을까? 고려 가요 <雙花店>을 보면 만두를 ‘솽화’라 지칭했다고 짐작된다. 

雙솽花화店뎜에 雙솽花화 사라 가고신ᄃᆡᆫ
回휘回휘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그러나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박덕유 교수는 중한사전(1989)에 '霜花(솽화)'가 ① 성에, ② 서리 모양의 細工(세공)으로 풀이되어 있음에 착안하여 ‘쌍화(雙花)’는 만두가 아닌 ‘(유리) 세공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쌍화점은 만두가게가 아니라 금은방 또는 장신구 가게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霜花와 雙花는 중앙아시아의 만두 사모사와 음성적으로 차이가 크다. 霜花, 雙花와 소리가 닮은 賞花는 색주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단국대학교 고혜선 교수의 「고려 ‘쌍화’와 ‘삼사(samsa)’의 관련성 연구」(2014)에 의하면, 『高麗史』의 八關會 관련 기록에 사용된 ‘雙下(쌍하)’라는 음식 명칭이 사모사와 음성적 유사성을 보인다. 중국어 한자음이 ‘솽샤(shuang xia)’인 雙下는 식사 말미에 왕에게만 올리는 귀한 음식이었다.

중국은 광대한 국가이다. 따라서 지역마다 성조가 다르고, 발음에 차이가 있다. 雙이라는 한자의 만다린(북경 표준어) 병음이 shuāng, shuàng (shuang1, shuang4)인 반면, 광동 방언에서는 soeng1, sung1(광주), song1(태산)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客家話(하까 방언)에서도 sûng(대만의 하까방언인 시시안어四縣腔話), sung1(메이시안어와 광동어, 梅縣話와 廣東話)으로 다르게 실현된다. 통시적으로도 달라 雙의 중세 중국의 한자음은 /ʃˠʌŋ/이고, 고대음은 /*[s]roŋ/ 내지 /*sroːŋ/이다.

아무튼 우리말 고어사전에 의하면, ‘상화’와 ‘샹화’, ‘샹홰’가 饅頭(상화 만, 상화 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훈몽자회 중 20). 『명물기략(名物紀略)』은 霜花를 상애라 적고, 부풀어 오른다는 점에서 기수(起溲), 기주떡 외에 찌는 떡으로 분류하여 증고(蒸餻) 또는 증병(蒸餠)이라 하였다. 

한편 한국 전통 음식 연구가인 한복려(韓福麗) 선생은 상화병(霜花餠)에 대해, 제주도에서는 상애떡이라 부르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유두에 먹는 절식으로 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발효시킨 다음 그 안에 팥이나 깨, 고기, 나물을 넣고 둥글게 빚어 찐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조선 후기 문인 金昌業이 1712년(숙종 38년) 영의정인 큰 형 金昌集을 따라 청나라에 가서 직접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老稼齋燕行日記노가재연행일기』에 중국(청나라)의 떡문화에 대해 “유박아(柔薄兒)란 떡이 제일 좋다고 일컬어지는데, 밀가루를 눌러 만든 것이 마치 우리나라의 상화떡처럼 생겼다. 합친 부분에 주름이 지게 하여 우리의 만두처럼 가장자리가 쭈글쭈글하다.”라고 소개한 대목이 있다. 귀한 음식이라 조선 궁중의 빈객을 담당하던 사도시(司導寺)에서 사신의 영접상에 올렸다고도 한다.

                                              중국의 각종 혼돈탕

이런 저런 자료를 비교하는 중에 난처한 일이 생겼다. 지난 글에서 분탕(粉湯)의 고어가 스면이고 응이라고도 한다고 말했다. 소화에 이로운 율무 따위의 식품을 갈아 분말로 만들어 꿀물에 풀어 묽게 쑨 일종의 미음 또는 수프 같은 식품일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연행일기의 필자는 청국의 분탕은 밀가루 재료에다 돼지고기로 소를 만든 것이라 전하고 있다. 분탕과 비교하여 실낱 국수에다 파, 마늘, 돼지고기를 섞은 혼돈탕(餛飩湯)을 소개하는 것으로 미루어 분탕이 미음이나 죽 또는 수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음식 알기가 참 쉽지 않다. 

                                                    중국의 각종 粉湯

또 다른 연행록인 『도곡집(陶谷集)』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下」의 기록은 분탕을 더욱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또 粉湯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수면(水麵)과 같다. 여기에 장을 섞어서 계란을 풀어 넣는데, 열과 탕의 종류로 다소 담박하여 그리 느끼하지 않았다.”

다행히 한 가지 고쳐 알게 된 것은 ‘粉湯’의 우리말 고어가 ‘스면’이 아니고 수면이며 청국 사람들이 먹는 분탕이 조선 사람들의 ‘수면’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스면’은 ‘수면’의 옛 표현이거나 와전으로 보인다. 중국의 면요리는 볶음면인 초면(炒麪)이 많은데, 장과 계란을 풀어먹는 국물국수 요리는 우리나라 장칼국수가 대표적이다. 뜨겁고 얼큰 또는 구수한 장칼국수는 오늘날 강릉을 위시한 동해안 지역의 별미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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