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희극을 통해 비극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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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희극을 통해 비극을 말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2.27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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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파네스 희극론 | 류재국 지음 | 세창출판사 | 532쪽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론을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국내 최초의 도서다. 아리스토파네스를 보다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그가 추구한 이상과 삶의 태도 등이 무엇이었는지를 면밀하게 살핀다.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비극보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희극론이 세간의 이해와는 달리 문학적, 철학적, 시사적, 윤리적 차원을 아울러 어떤 분야에서도 부족함 없는 수준 높은 연극 이론 분야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세간의 이해는 많은 경우 희극이란 장르를 그저 웃고 떠드는 장르로 이해해 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저자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익살’과 ‘희화’라는 희극의 도구를 통해 수준 높은 희극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 준다.

저자는 44개의 원본 작품 중 현재 남아 있는 아리스토파네스의 11개 작품을 단지 연극이론적인 측면에서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간학문적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희극이라는 소재에 ‘론(論)’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많은 이에게 생소할 수 있다. 희극의 ‘가볍다’는 이미지와 이론의 ‘무겁다’는 이미지가 쉽게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의 깊이를 더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소위 ‘학자’들의 작업은 마치 이런 세간의 통념이 옳기라도 하다는 듯이 비극은 우월한 것, 희극은 열등한 것이라고 평가해 왔고 실제로도 희극은 그저 그런 취급을 받아 왔다. 그래서인지 비극은 학문적인 분야, 희극은 문학을 다루며 비극의 반대 급부로 다루어지는 한 분야로서 다루어져 왔던 것이 현실이다.

희극은 주로 ‘웃음’이라는 자칫 가벼워 보이는 소재를 사용한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그 동일한 수단을 사용하지만 그 성격은 그와 정반대이다. 비극이 다소 문학적인 성향에 집중하여 픽션에 기반한 이상을 꿈꾸지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설명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말 그대로 ‘웃기는 상황’ 그 자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엇보다 가볍고 편안한 소재로 가장 진중하고도 무거운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사회적·정치적 권력자들, 영향력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고대 아테네 현실 속 많은 이들이 애써 외면하고자 한 현실을 폭로하고자 한 가장 깊이 있는 현실 문학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냈다.

이 책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을 언론의 기능에 비유한다. 민주주의의 발흥지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행해졌던 연극으로서의 현실 문학인 희극은 희극을 꿈꾸었던 비극적 현실에 대한 현실적 비판임을 분명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사고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비판적 해설서라고 할 만하다.

해당 작품은 그동안 번역서 및 아리스토파네스를 분석하는 다양한 논문들만이 존재했던 데 반해 그의 전 작품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단순히 그 작품의 해제와 같은 진부한 설명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학이론, 철학적 논거, 사회문화적 이슈 등을 도입하여 현대적인 이슈로의 재생산을 끌어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존하는 작품 11개를 테마별로 분석하여 작품의 의도, 당대의 분위기와 사회적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마치 현대와 고대의 다리를 놓는 작업과도 같다. 이를 통해 현대에 사는 누구나 고대 그리스의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은 무엇이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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