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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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이명곤 제주대학교·서양철학
  • 승인 2023.02.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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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나르시스의 오류』 (루이 라벨 지음, 이명곤 옮김, 하움출판사, 258쪽, 2023.01)

 

 

• 루이 라벨, 20세기 형이상학을 갱신하다

루이 라벨(Louis Lavelle)은 가브리엘 마르셀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년 동안의 포로로 잡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향후 자신의 사상을 전개할 논문을 구상하고 박사학위 논문인 「감각적 세계에 대한 변증법(La dialectique du monde sensible)」도 옥중생활에서 쓰였다. 그의 본격적인 저술 작업은  「영원한 현존의 변증법(La dialectique de l'éternel présent)」 시리즈물의 첫 번째인 『존재에 관하여(De l'être)』를 출간 하면서였고,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자아의식(La conscience de soi)』을 저술하면서였다. 이후 그는 『총체적 현존』, 『자아와 그 운명』, 『나르시스의 오류』, 『악과 고통』, 『시간과 영원성에 관하여』, 『자아의 능력들』, 『인간의 영혼에 관하여』, 『가치론』, 『영적인 무한성』, 『도덕과 종교』 등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저서들을 약 30여권을 저술하였다. 

그의 사상적인 배경은 중세 존재론의 기초위에 플로티노스적인 범신론을 통합한 정신의 철학(Philosophie de l’esprit)이며, 그의 저작들은 20세기의 형이상학의 방대한 체계를 제시해 주고 있다. 여기에는 ‘존재론’ ‘가치론’ 그리고 ‘윤리학’이 종합되어 있는데, 후학들은 그의 사상을 ‘영원의 철학(Philosophie de l’éternité)’의 한 상징처럼 간주하고 있다. 라벨의 형이상학은 스콜라철학의 ‘존재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철학’ 혹은 데카르트의 ‘실체개념’과도 다른 것이며, 따라서 서양형이상학의 역사를 ‘존재에 대한 망각의 역사’라고 비판한 하이데거의 비판도 넘어서고 있다. 라벨에게 있어서 존재란 근본적으로 주어진 총체(우주적 총체)처럼 고려되고 있지만, 이는 또한 사유하는 ‘인간정신의 성찰’통해서만 의미 있는 것으로 주어지기에 ‘실현해야할 의무’처럼 나타난다. 따라서 라벨의 존재론은 인간의 정신과 총체적 존재와의 관계성으로 규정되며 본질적으로 ‘역동성’으로 나타난다.  

라벨은 ‘존재의 일원성’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플로티노스적 범신론을 연상케 하면서 형이상학의 대상이 우선적으로 절대, 무한, 혹은 일자나 신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개인의 의미가 진정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 절대와의 관계성 속에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벨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토대 위에서 인간의 정신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윤리학과 도덕적인 문제들을 섬세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데, 이는 고독과 소통이라는 현대인의 문제에 대한 놀라운 분석과 전망을 제시해 주고 있는 셈이다. 그의 후학들은 라벨을 마치 ‘고요와 고독 속에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묘사해주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분주한 현대인들에게, 세계와 인생 그리고 특히 종교적인 인간(Homo Religiosus)의 의미에 대해서 일깨워주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철학적 작업이 20세기에 있어서 과거의 형이상학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갱신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 ‘나르시스의 오류’와 현대인의 비극 

              루이 라벨(Louis Lavelle)

라벨에게 있어서 철학함이란 삶의 행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벨의 사상에서 ‘자아의 형성’과 관련하여 현대인이 범하고 있는 공통된 오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용어는 ‘나르시스적(narcissique)’ 즉 ‘자기애적’이라는 용어이다. 바로 이러한 ‘자기애적인 삶의 양식’이 역설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아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하며, 인간본래의 사명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나르시스의 오류』의 1장은 그리스 신화속의 인물인 ‘나르시스라는 청년의 일화’를 등장시켜 이러한 인간의 오류를 잘 분석해주고 있다.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리스의 청년 ‘나르시스’가 자신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진정한 관계성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가야 하는 ‘인간의 사명’을 저버리고, 결국에는 ‘공허한 자아’만을 안고 더 이상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 무의미한 삶에 절규하고 있는 나르시스의 모습은 마치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이 보이며, 또한 마치 성경 속의 원죄의 의미를 암시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 2장부터 라벨은 인생에 대한 서사적이고 변증법적인 분석을 통해서 인간의 실존이 어떻게 자연과 타인 그리고 절대(l'absolu)에 참여하는지를 분석하고, 우연적인 실존을 초월하는 일종의 절대적인 행위(Acte)로서의 ‘정신의 사명(la vocation de l'esprit)’을 밝혀주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실존의 문제들, 감성, 자아, 망각, 운명, 고통, 지혜, 내밀성, 영성 등의 문제들을 개인적인 체험에 기초한 정신심리학적인 분석을 통해 제시해주고 있다. ‘인간성’은 하나이나 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상실하게 하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누구나 동일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오류’나 ‘실수’를 범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이란 ‘실수를 범하고 이를 만회해 가는 것’이라고 할 만큼 인간의 정신과 의지는 불완전하고 빈약하다. 라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범하게 되는 오류들을 분석하면서, 역설적으로 진정한 인간의 삶 혹은 행복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오류와 잘못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만 인간은 ‘진정한 인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에서 라벨이 근본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자기동일성의 문제이다. ‘사회적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사회적 위치나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면, ‘자기 동일성에 대한 감정’은 본질적으로 내적인 것이며, 타인의 시선은 통찰할 수 없는 일종의 ‘내밀성’ 즉, ‘숨겨진 총체적인 자기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동일성은 나의 삶에 있어서 관계성과 가치들에 대한 의식을 전제하는 것이다. 자기 동일성에 대한 감정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의 감정 즉 한마디로 ‘존재감’을 형성해 주는 것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순수한 청년 나르시스가 범한 오류는 정신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답고 이상적인 이미지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 것에 있다. 이것이 나르시스가 범한 가장 근원적인 오류이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질 때 나머지 모든 단추가 잘 못 끼워지듯이 이러한 근원적인 오류는 이후 자아를 왜곡하는 모든 오류들을 연이어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 ‘나르시스의 오류’와 진정한 인간의 길    

이 책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에서 라벨은 의미심장한 두 가지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 하나는 “정상에서 추락하는 영혼에게 오히려 의식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영혼의 정상을 의미하는 무한성(infinité)은 현재 안에 있으며, 무한성이란 끝의 부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길이다”라는 말이다. 자유의 의미가 가장 깊이 와 닿을 때는 자유를 상실할 때 이듯이, 오류란 그 무엇을 상실함을 의미하며, 또한 상실은 상실된 것의 의미를 가장 잘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성에 대한 오류를 통해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역설적인 존재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이 세상의 좋은 것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좋은 것들을 너머서는 그곳에 영혼의 정상이 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무한성’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영혼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곳이 바로 이 무한성이다. 이 무한성은 ‘무’ ‘존재’ ‘일자’ ‘신’ 등 여러 이름으로 묘사된 바로 그것이다.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 무한성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 무한성과 의미연관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무한성은 바로 이 현실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보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르시스는 과도한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유한성의 세계에 대한 사랑)에 매몰되어 오히려 자기-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된, 그리하여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게 된 불행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지금이 나르시스에게는 가장 영적인 갈망이 절실해 지는 때이며, 이것이 라벨이 통찰한 변치 않는 인간성의 진리이다. 따라서 『나르시스의 오류』는 자아의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진정한 인간의 길을 말해주고 있는 ‘인생의 실천적인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곤 제주대학교·서양철학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의 리옹가톨릭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전공, DEA학위를 취득했으며, 파리1대학(판테온 소르본)에서 ‘프랑스 철학사’ 관련 DEA학위를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학과 영성’에 관한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파리1대학 예술대학에서 조형미술학사 및 석사학위(한국화) 그리고 미학 DEA학위를 취득했으며, 2014년에 영남미술대전의 초대작가(한국화)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푸코와의 1시간』, 『토미즘의 생명사상과 영성이론』, 『역사 속의 여성 신비가와 존재의 신비』, 『키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읽기』, 『종교철학 명상록: 성인들의 눈물』 등이 있으며, 〈편하게 만나는 프랑스 철학〉 시리즈를 집필했다. 역서로는 『자아와 그 운명』, 『진리론』, 『키르케고르: 신앙의 개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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