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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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
  • 장성규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국문학
  • 승인 2023.0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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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근 문학 연구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이다. 기존의 문학 연구가 ‘가까이서 읽기’(close reading), 그러니까 주요 작품에 대한 미시적이고 정밀한 미학적 독해를 주된 방법론으로 삼았다면, ‘멀리서 읽기’는 말 그대로 텍스트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보다 거시적인 방식으로, 개별 텍스트가 아닌 텍스트들이 구성한 총체적 세계를 조망하는 것을 지향한다. 실제 멀리서 읽기라는 개념을 통해 일종의 빅데이터로서의 텍스트라는 인식이 도출되었으며, 나아가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아젠다가 제기되기도 한다.

새 학기를 앞두고 많은 언론 매체들을 통해 대학 정원 미달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방 소재 대학은 물론, 서울 소재 대학들까지도 수시와 정시 입시에서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해 추가 모집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낯선 뉴스도 아니다. 폭발적인 속도의 인구 감소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경고되어왔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에 대한 해결은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로 제시되어왔지 않은가? 그럼에도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대학 정원 미달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것은 왜일까?

내 아이는 초등학생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한 반은 20명이 채 안된다. 그렇다고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무슨 특별한 사립학교이거나, 혹은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서울 시내에 있는 공립학교일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 반이 60명 가까이 되고, 정상적인 수업 운영이 어려워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등교하던 일은 이제 옛 말일 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보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1/3 가량으로 줄어들어서 훨씬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줄었으니, 개별 학생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수업도 가능하고, 학교의 특성에 따른 특색있는 수업도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부모가 참여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도 활성화된다. 그러니 학생 수가 급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는 셈이다.

그런데 대학 정원 미달은 왜 문제가 되는가?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 보다 양질의 교육이 가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강좌를 통해 학생 하나하나의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 역량을 높일 수 있지 않은가? 적어도 명색이 대학 강의인데,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을 한 강의실에 앉혀두고 진행하는 형태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는 아이들이 줄어들었다고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통해 기존 교육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양질의 교육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한다. 물론 정부 재정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으로 지금까지 인구 감소를 막겠다, 지방 소멸을 막겠다, 대학 교육을 혁신하겠다 등의 명목으로 투입된 금액이 많을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인구 감소에 맞추어 교수 대비 학생 수를 줄이는 방식을 통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일에 투입된 금액이 많을까? 이미 답은 명확한 문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중등교육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 재정의 문제나 인구 구조의 변화 등을 들어, 이러한 생각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별 대학 차원에서의 미시적인 ‘생존’을 위한 ‘가까이서 읽기’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차원에서 교육의 거시적인 ‘미래’를 고민하기 위한 ‘멀리서 읽기’이다. 어쨌든, 아이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이때 아이들을 사회구성원으로 키우기 위한 ‘교육’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성규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국문학

건국대학교(글로컬캠퍼스) 동화한국어문화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한국 현대 소설을 전공했으며, 문학과 문화 텍스트를 통해 현실의 징후를 읽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에픽 #07』(공저), 『좌절된 혁명과 서사의 형식』, 『한국문학의 중심과 주변의 사상』, 『사막에서 리얼리즘』, 『신성한 잉여』,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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