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속의 자유와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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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속의 자유와 자유주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2.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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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38강_ 정과리 연세대 교수의 「한국 문학 속의 자유와 자유주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기획됐다.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자유 개념과 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 수용되고 진화해왔는지 검토해보는 다섯 번째 섹션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제38강 정과리 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한국 문학 속의 자유와 자유주의


정과리 교수는 “한국 문학에서의 자유주의란 ‘자유’의 쟁취라는 대의의 기나긴 역사적 과정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또한 그 과정이 “한국인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역능과 가능성을 탐구”해온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을 제련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기 정립’을 해나간, 새로운 인간관을 향한 정신적 노정”을 보는 일이 되고 “그것을 볼 때에만 한국 사회 및 한국인의 삶의 의미가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다음으로 “‘한국 문학’에서 ‘자유와 자유주의’가 실질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묻는다고 할 때 “우리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데 즉 한국 문학이 “한국 사회에 ‘자유와 자유주의’가 인지되고 수용되고 제 것화되는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자유’의 용례와 ‘자유롭다’라는 상태의 의미”를 짚어본 뒤, “한국 문학에서 ‘자유’ 개념의 생장의 곡절”을 시인 이상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자유주의를 활공시킨 자유의 두 날개”로서 김수영과 최인훈을 깊이 고찰한 데 이어 “4·19 세대로의 이월”까지를 살핀다. 

 

지난 2월 4일, 정과리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3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문제 제기

한국 문학에서의 자유주의란 ‘자유’의 쟁취라는 대의의 기나긴 역사적 과정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한국인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역능과 가능성을 탐구해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그 과정을 제련해내는 것은 곧바로 ‘자유’의 이름으로 ‘자기 정립’을 해나간, 새로운 인간관을 향한 정신적 노정을 보겠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볼 때에만 한국 사회 및 한국인의 삶의 의미가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문학’인가? 이 물음은 ‘한국 문학’에서 ‘자유와 자유주의’가 실질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한국 문학은 한국 사회에 ‘자유와 자유주의’가 인지되고 수용되고 제 것화되는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2. ‘자유’의 용례와 ‘자유롭다’라는 상태의 의미

역사의 문헌들을 일별하건대 동양에서는 자유라는 용어를 방종에서부터 주관(主管)에 이르는 넓은 의미 스펙트럼을 꽤 느슨하게, 즉 비자각적으로 사용했다.

근대는 바로 ‘자유’를 자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그것은 자신을 세상의 ‘척도’로서 간주하기 시작한 존재들이, 그 척도가 무한한 변신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의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자유에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자각하는 존재가 강조된다. 로크가 말했듯이 “자유는 우리의 정신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그런 의지에 귀속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건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혹은 자신의 의지의 결정에 의해서 특정 행동을 방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에 귀속되는 개념”인 것이다.

자유가 신체에게 귀속된다는 문제는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반도에 자유의 개념이 들어선 다음에도 한동안 그 자유의 개화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넌지시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독자적으로 출현한 ‘자유’라는 개념이 동양인에게서는 꼭 ‘도리’라는 뜻의 보충을 필요로 했다. 자유는 곧 통의와 동의어가 되고, 그것은 “자유자재로 합당한 도리”로서 풀이된다. 자유와 통의가 하나로 묶일 때에만 정서적 안정감을 가진다는 점이고, 이는 자유를 ‘자연스러움’에 귀속시킨다는 것이다.

자유의 신체적인 양상을 “생래적 에너지의 막힘없는 방출”로 볼 때, 그것은 몸의 자연스러운 지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때의 자연스러움은 어떤 인공성도 배제한다. 그러나 동양적 사유에서 이런 자연성은 통상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움’은 통상 조화와 안정의 의미를 띠었다. 즉 인공성이 인공의 강제적 이미지를 벗겨낼 때의 상태다. 이러한 상태는 비록 그 현상이 그렇게 나타난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의식적인 통제의 결과이다.

그런데 자유의 뜻을 이렇게 제한하는 것은 결국은 자유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근대 문물이 생활 깊숙이 침투한 이후에도 ‘자유’의 순수한 뜻은 아주 오랫동안 이해되지도 수용되지도 않았다. 아시아, 그리고 조선인들이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하기에 큰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다면, 그것은 수용자들에 의해서 다른 용어로 대체될 가능성이 컸다고 짐작할 수 있다.

 

3. 한국 문학에서 ‘자유’ 개념의 생장의 곡절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3·1 운동이다. 3·1 운동의 독립선언서의 첫 번째 문장은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이었다. 3·1 운동은 근대적인 것을 제 것화하겠다는 의지가 폭발한 것이다. 이 문장에 ‘자유’는 없고, 대신 ‘독립’과 ‘자주’가 들어선 것이다.

즉 ‘자주’가 ‘자유’를 대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삶의 주도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자주’와 ‘자유’는 거의 같은 뜻을 갖는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자주’가 ‘소속’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는 특정 공동체에 대한 소속의 확정과 그 소속에 대한, 소속에서의 권리를 가리킨다. 즉 「독립선언문」에서 “아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포하노라”는 “조선에서는 조선인에게 자주권이 있다”는 뜻이다. 반면 ‘자유’는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을 전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한반도 및 일제하 한국 문학 안에서 개화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가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에게 귀속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소속을 찾기보다 자신의 ‘일’, 즉 운동성에 몰입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인데, 「3·1 독립선언문」은 한반도의 거주민들이 아직 거기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운동성이란 문제는 그 사람의 ‘정신적 수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했던 주장을 되새길 필요를 느낀다. 우리가 칸트의 처방을 수령한다면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성인으로서의 자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내내 한반도의 문학은 ‘소년’에서부터 ‘청년’ 되기를 부르짖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심성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한국 문학에서 스스로 자유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투신에 집중한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의 선각자들의 존재와 몰이해의 늪에 빠진 다수의 군중들 사이의 격차는 컸다.

 

1930년대에 이상(李箱, 1910~1937)이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중단당한 수난은 차라리 자유에 대한 집단적 각성을 위한 불가피한 스캔들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슨 개수작이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중단한 사건은 단독자로서의 시인을 처음으로 표상하면서 대번에 박제화하여, 결코 지워지지 않을 무지함의 표식을 한국 문화 안에 새겨 놓았으니, 그 이후 수많은 문학인들이 그를 표본으로 해서 자유의 모험을 전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자유’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천재성과 불행의 바탕을 이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자살자들은 모두 자살하는 것의 자유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며 더 큰 고난과 치욕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는 것도 또한 자유라는 데 대한 인식을 얻는 사림들이다.

우리는 그가 「날개」에서 언명한 생존법 ‘위트와 패러독스’가 자살하지 않는 자유 의사의 처세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위트와 패러독스’는 ‘자유’의 심화가 아니라 자유가 폐색된 상태에서의 생존법이다. 물론 그 생존법도 자유가 개화하는 방식으로 펼쳐져야 그 의미를 얻을 것이다. 다만, 독자는 이상의 자유가 ‘강제된 계약’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본항 바깥으로 어떻게 펼져질 것인지는 순전히 이상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李箱)식 자유의 심층을 들여다보기 위한 아주 흥미진진한 모험을 촉발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주제는 이 모험을 자제시킨다. 일단 그것은 천재 이상의 관할 영역이다. 그런데 일반 독자는 박제된 이상만을 본다. 이상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민이 ‘자살이냐 아니냐’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거대한 군중(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에 대해 절망한다. 그의 수필은 “불쾌와 고통의 연속”인 현실에 대한 쓰디쓴 인식으로 끝난다.

우리는 자유의 온전한 실행을 위해서는 ‘성인됨’이 조건임을 보았다. 그것은 자유와 자유주의를 한데 묶어서 탐구하는 일이 한 사회 또는 공동체의 일반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주의’는 일반에게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공간에서 성인됨은 개인의 사항에 속하지만, 소년이 대다수를 이루는 공간에서 성인됨은 아주 중요한 일반의 문제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재 이상은 ‘성인’과 관련이 없다.

 

4. 자유주의를 활공시킨 자유의 두 날개

한국 문학사는 근대적 정신을 특이하게 굴절시키면서 진화하였다. 자주와 자유의 차이를 유념하면 그것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일찍 시작되었고 오래 지속한다. 반면 자유주의는 늦게 출발하고 여전히 소수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의 조건은 서서히 축적되고 있었다. 그 조건은 4·19에 와서 온전히 충족된다. 왜냐하면 4·19는 한국인이 ‘인물’의 자격으로 세계에 도전하여 그걸 전복시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는 ‘마음이나 의지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존재에 귀속된다’고 말했는데, 그 존재들이 정말 출현한 걸 보여준 게 4·19였다. 그 사건의 자연 발생적 참여자였던 4·19 세대는, 이후 한국의 정신 사회를 주도하는 중심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세대를 형성한 데는 중요한 물리적 조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 조건을 성숙시키는 데에 정신적 내용이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해야 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즉 자유란 무엇인가? 왜 자유인가? 자유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등의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이른바 ‘육하원칙’의 질문들에 내용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문학은 그 문제에 있어서 선편적인 작업을 수행하였다. 

한국 문학에서 김수영과 최인훈을 자유주의의 묘상을 형성한 두 개의 씨앗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묘상’을 이룬다 함은 그들에 의해서, 자유라는 이름 안에 하나둘 정신적 원소들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가. 김수영의 경우: 상황을 업고 넘는 기술

김수영의 최초이자 최종적 관심이 ‘자유’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김수영에 의해서 자주 발언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유의 수호를 “세계사적 가치”에까지 격상시킨다. 그것은 그가 자유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이상으로부터 한 걸음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이상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고 있었다. 김수영은 자유가 생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누구보다도 절망했었다. 그것이 김수영적 자유 인식의 첫 단계이다. 이것은 그가 이상과 공유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 점이 최인훈과 다른 지점이다.

김수영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조건의 도저한 부정성이 아니라, 이 부정성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이상과 달라지는 지점이다. 이상도 죽음 속에 신생이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걸 잘 보여주는 시가 「절벽」이다. 그런데 「절벽」에서 죽음을 신생으로 바꾸는 기술은 개인의 마술에 가깝다. 시인은 ‘꽃’을 부재시키고 ‘향기’를 남겨, ‘꽃’을 미래화한다. 김수영의 기술은 아주 다르다.

「구라중화」에서 약간 관념적으로 표현된 그 기술은 꽃의 방종성 자체에서 자유의 필사적인 추구를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대식 교량」에 와서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요컨대 현재의 부정적 상황의 원소들을 극복의 자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사랑’과 하나로 통하게 된다. 적을 형제로 만드는 행위이니까 말이다. 이 사랑이 범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것은 상황의 부정성 자체를 질료로 삼는 데서 그 효과를 갖는다.

이로써 김수영은 자유주의의 흐름에 중요한 방법론 하나를 보태게 된다. 훗날 그는 이 방법론을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이라고 명명한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 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사랑의 변주곡」, [1967.2.])

바로 이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통해서 그는 마침내 이상이 직면했던 자살-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극복할 뿐 아니라, 죽음 자체를 신생의 자원으로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죽기 2년 전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를 발견하면서, 그로부터 평범한 것을 그려 비범한 세계를 환기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론을 개발한다. 즉 진부함에서 혁신을, 일상에서 신생을 촉발하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실로 혁신적인 방법론으로서 2년 후 그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지 않았다면, 아주 중요한 미학적이면서도 삶 그 자체에 관계하는 원리로 발전했을 것이다. 다만 그의 마지막 작품 「풀」이 그 방법론의 가장 완미한 결실이라는 점을 부연하기로 하자.

 

나. 최인훈의 경우: 실존적 체험으로서의 자유

김수영이 자유주의에 보탠 것은 자유의 실현을 가로막는 상황을 타개하는 기술이었다. 이에 더해, 그는 상황 자체를 새 세계의 자원으로 끌어당기는 기술까지 보탰다. 

최인훈이 개척한 자유주의의 자원은 다른 것이었다. 중등 교육의 장에서 최인훈의 『광장』(최초 출판, 1961)은 바깥에서 들어온 이데올로기 비판의 교재로 전적으로 활용되었다. 작품의 상당수의 내용이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까닭도 있었지만, 1970년대의 민족주의가 민족에 순수의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발달시킨 ‘분단문학론’이 외부의 이데올로기들을 모두 악으로 규정하고, 한반도의 거주민들을 순진한 희생자들로 형상화함으로써 일종의 희생자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한국인에게 정서적인 울림이 컸던 탓이 크다.

그런데 『광장』을 꼼꼼히 읽으면 주인공 ‘명준’의 의도는 그런 이데올로기 비판이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든 한반도의 주민들에게 실제적인 경험으로 ‘체화되지 않는’ 사태였다. ‘광장’(이념)이 ‘밀실’(개인)과 만나지 못하고 ‘밀실’이 ‘광장’으로 확대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명준’의 고민은 ‘스스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체험을 직접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남과 북 양쪽에 모두 실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6·25 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의 “정치보위부원”으로 서울로 내려와, 간첩 혐의로 체포된 옛 친구 ‘태식’을 취조실에서 폭행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소설 이론에서는 ‘명준’의 이런 악마적 성격을 두고 ‘문제적 주인공(héros problématique)’이라고 부른다. 골드만의 정의에 의하면, ‘문제적 주인공’은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세계를 찾는다.” 이 말을 다시 풀이하면, 신이 사라진 시대, 즉 명확한 진리가 사라진 시대에서 자기와 진리의 일치를 찾으려는 주인공은 그 상태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수한 오류를 범하면서 진리와의 일치를 찾아 헤매지만, 오류와 방황(악마적 성격)은 끝나질 않는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명준’이 인민군 보위부 장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명준이 어떤 행동을 통해서든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체험이 되도록 만들기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이 갈망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내 삶은 내가 치른다’이다.

최인훈이 자유에 대한 이해 혹은 자유주의에 첨가한 것은 ‘실존적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김수영이 자유를 가로막는 상황에 대한 타개의 기술을 찾아간 것과 다른 방향에서 최인훈은 자유로운 주체의 존재 형상을 농밀한 형태로 부조했다고 할 수 있다.

 

5. 4·19 세대로의 이월

김수영의 방법론은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일종의 ‘착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최인훈의 실존적 경험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한다. 그러나 겨우 ‘착상’이고, 겨우 ‘미달’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 착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실제로 겪어보면 안다. 어쨌든 그들은 인간의 행동과 상황의 인식에 아주 중요한 자유주의적 활로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자유는 자유를 실행하는 자에 의해서 열리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각성이자 동시에 자유와 사랑(혹은 혁신과 일상)이 필수불가결하게 연루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제공하였다. 그러한 깨달음을 실행할 육체를 그들이 가졌던 것일까?

일반성의 차원에서 보자면, 김수영ㆍ최인훈 세대는 그럴 역능을 갖추지 못했다. 그 세대가 그런 물리적 조건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각 개인의 능력과 성취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해야 하리라. 그걸 유보하고 논지를 이어간다면, 그런 물리적 조건을 확보한 건 앞에서 말했듯 4·19 세대였다.

실로 4·19 세대의 문학은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을 크게 넓히며 아주 다채롭고도 생동하는 실험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험은 한국 지식장의 전반적인 정신적 분위기로 보자면 소수자의 형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 지식인의 정신적 진화는 민족주의의 방향이 압도적이었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는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세계 인식의 출발점이 다르다. 따라서 민족주의도 자유를 포함할 수 있고, 자유주의도 민족을 포함할 수 있지만, 그 각각의 양상은 큰 이념적 차이를 보이게 된다.

한국 지식인의 지형도를 민족주의의 다수성과 자유주의의 소수성 간의 길항으로 볼 수 있다면, 희한하게도 대중문화의 판에서는 ‘자유’에 대한 욕망이 기세등등하게 팽대하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특히 1990년대의 어린이 인권 투쟁 이후, 전 국민이 자유 시민으로서의 신체적 형질을 갖추게 된 이래 자유 지향은 민족 지향을 안으로 흡수하면서 세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낳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의 성과가 지적 성찰과 맞물릴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겨 두고 있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정서적 성향과 이성적 운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식장의 움직임과 문화장의 움직임의 이 상위성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를 순전히 흥미로운 물음으로서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한국 문화와 한국 문학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인 연관을 모색하고 그 매개 장치들을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미래의 한국 사회의 ‘존재 의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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