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이미지로 읽는 문화의 기표, 재즈시대 플래퍼덤(flapper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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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와 이미지로 읽는 문화의 기표, 재즈시대 플래퍼덤(flapperdom)
  • 박혜원 창원대학교·의류학
  • 승인 2023.02.25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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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에세이]

 

화가 존 헬드(John Held Jr.)가 그린 잡지 『Life』 표지에 나타난 플래퍼들의 모습(출처: 박혜원, “1920년대의 통속소설 『플래퍼와 철학자들』과 대중잡지 『라이프』의 삽화를 통해 본 플래퍼 문화현상과 의미.”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Vol. 72, No. 6, pp. 130-149)

패션디자인을 좋아하다가 패션의 역사로 흥미가 바뀌었다. 지금은 한 시대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을 이해하기 가장 적합한 것이 패션 스펙트럼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다. 패션의 변화를 살펴보다 보면 급격한 전환기들이 있다. 비잔틴 시대, 고딕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가 그랬고,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과 부르주아계급의 시대가 그랬다. 현대성이란 것은 전통의 거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볼 때 현대성을 담고 있는 패션은 사회적인 자유의 반영이자 기성 상류층과 계급에 대한 반발의 표현으로 보인다. 

소위 재즈시대(Jazz Age)로 알려진 1920년대 미국 소비문화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 플래퍼(flappers)였다. 플래퍼에 대한 당시의 충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890년대 미국 신여성 깁슨 걸(Gibson girl)의 교양과 품위에 익숙해져야 한다. 깁슨 걸은 키가 크고 늘씬하여 가슴, 엉덩이가 풍만한 S자형 신체의 젊은 여성이나 성적으로 저속하거나 문란하지 않았다. 깁슨 걸의 신체적 매력은 연약한 듯 풍만한 이상적인 미국 여성이다. 그들은 숙녀(lady)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았고 부드러운 커브의 코르셋을 착용하고 잘 차려입은 모습이며, 상냥하고 건강하며 독립적이고 지적인 컬리지 여학생이었다. 한편 플래퍼는 재즈에 맞추어 찰스톤(Charleston), 심미(Shimmy), 블랙 버텀(Black Bottom) 등 끊임없이 움직이는 춤을 추며 공공연하게 흡연과 음주, 일탈을 즐기던 소녀들이다. 

재즈시대의 상징으로 잘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코트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초기 단편집 『Flappers and Philosophers』와 화가 존 헬드(John Held Jr.)의 『Life』지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플래퍼의 태도와 의식, 그리고 패션이 텍스트와 이미지로 명확하게 확인된다. 『Flappers and Philosophers』에 실린 『앞바다의 해적 The offshore pirate』, 『버니스 단발을 하다 Bernice bobs her hair』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들은 모두 플래퍼들이다. 소설 속에서 아디타, 버니스, 마조리는 주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은 중상류층 젊은 여성들로 자신감이 넘치고 당대의 관습에 도전하는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현재를 ‘가볍게’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재즈와 빠른 댄스에 열광하고 성적으로 개방적이며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피츠제럴드가 그의 작품에서 보여준 플래퍼에 대한 글의 묘사는 플래퍼의 외모보다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 도덕적 가치, 개방적 성의식 등에 집중하였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당시 미국의 물질주의 문화를 대변하며 구시대와의 대립과 저항, 현실주의, 그리고 물질적, 소비적 과잉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플래퍼들을 각기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 묘사하고 있지만 과거의 이상적 낭만주의적 취향의 여성과 분명히 다른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인 플래퍼 문화를 그대로 설명한다.

             (좌) The cover of the 1920 first edition, (우) F. Scott Fitzgerald(1921 portrait) 출처: Wikipedia

한편 헬드의 1920년대 『Life』 잡지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플래퍼의 외양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마르고 길고 직선적인 플래퍼의 비현실적 신체가 주목된다. 남녀공학을 다니는 베티 코애드(Betty Co-Ed)라고 불리우는 헬드의 모델은 가늘고 긴 볼륨감 없는 밋밋한 몸매에 긴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단순화된 도발적 이미지이다. 플래퍼 베티는 당시 많은 영향을 주었고 플래퍼의 대표적 이미지로 정형화되었다. 이러한 몸매는 이전 시대의 교양과 품위를 지닌 깁슨 걸(Gibson girl)의 곡선적인 몸매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헬드의 플래퍼는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고 지적이지 않아 보이며 매우 소란스런 모습을 표현한다. 격렬하게 춤추고 있는 플래퍼, 무례함과 과감한 플래퍼들의 행동들이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유머있게 표현되고 있다. 미성숙하고, 자기 멋대로이며 성적 적극성을 드러내고 직설적이고 고상하지 못한 모습들이 직설적이고 민망한 제목과 함께 잡지 표지에 실렸다. 헬드의 일러스트레이션에 나타나는 플래퍼들의 일탈은 피츠제럴드의 소설의 텍스트에서 묘사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기성세대에게는 놀랍고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인 문화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모두 ‘진지하지 않은 펀(fun)’으로 그려지고 있다. 헬드의 플래퍼들은 모두 짧은 단발이거나 단발을 하는 모습이며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나오는 버니스가 고민 끝에 단발을 결심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삽화들이 표현되어 있어서 이 시기 보브 단발의 유행은 플래퍼 패션의 시작이며 완성임을 알 수 있었다. 

피츠제럴드의 소설과 헬드의 잡지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에는 마치 대량생산으로 복제된 상품과 같은 플래퍼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유사하게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이미지는 현실주의, 자유주의, 이기주의에 근거한 불량한 태도, 소란스러움, 성적 적극성, 단발과 신체의 노출, 가벼운 패션과 움직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수많은 독자에게 영향을 주었던 소설의 텍스트와 대중잡지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은 플래퍼의 이미지를 소개하고 복제하고 정형화시켰다. 그리고 다시 대중들에게 일종의 상품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짐작된다. 시대적 변화와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였던 대중매체에서는 플래퍼의 외모와 패션뿐 아니라 태도와 행동을 담고 있다. 사회적인 담론은 부정적이었지만, 피츠제럴드의 소설과 헬드가 그린 『Life』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플래퍼 세대가 1920년대 미국의 소비주의 문화의 시대적 기표임을 알 수 있다. 


박혜원 창원대학교·의류학

국립창원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배우고 연구했다. 시대 문화의 기호, 사람을 이해하는 문(門)으로서의 패션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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