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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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엘리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3.02.25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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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이후에도 시민 대부분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한 해에 어차피 독감, 폐렴으로 국내에서 1~2만 명이 죽는데 웬 호들갑이람?’ 하면서 불만이었다. 마스크도 쓰기 싫었지만 불필요한 시비를 막기 위해 꼭 써야 할 곳에서는 썼다. 다행히 이제 실내 마스크 강제 착용도 대부분 해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이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쓰고 다닌다. “이게 더 편하다.” “추워서 쓴다.” 등등의 이유를 대지만 여기에는 한국인의 유난한 건강 염려증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더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관의 통제에 익숙하고 심지어 그것을 바라고 거기에 기댄다는 사실이다. 별로 재난도 아닌데 요란하게 자주 울리는 재난 안내 문자. 하도 시끄러워서 귀찮아하는 성격인 나일망정 이리저리 알아내어 수신 거부에 성공하였다. 그래도 나는 그 “재난”들을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에 처해 있다. 방송 등 하도 여러 군데서 알려주니까.

한국의 지하철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지하철일 것이다. 거짓말 좀 보태 1분이 멀다 하고 각종의 ‘하지 마라’ 안내 방송을 내보낸다. “도촬 하지 마라.”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지 마라.” 등등. 해라 하는 방송도 많다. “자리를 양보해라.” “마스크를 써라.” 오줌 싸지 마라, 침 뱉지 마라는 왜 없는지. 표 끊고 타라도 있어야지. 백수가 되어 아파트 거실에서 빈둥대다 보면 우리의 친절한 관리사무소에서 또 친절한 안내 방송을 해준다. “투표에 참여해라.” “관리비 오늘까지 내라.” “약 뿌리니 문 닫아라.” “아니 약 뿌리는 거 연기되었으니 문 도로 열어라.” 이렇게 말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인가 보다. 

이렇게 관의 통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관의 권위를 또 지독하게 무시한다. 길거리도 아니고 경찰 지구대에서 경찰관이 술 취한 인간한테 얻어맞고 그 경찰관은 아무 대응도 못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태풍 오니 야영 삼가라는 안내를 그렇게 해도 꼭 물가에서 사고 쳐서 밧줄에 매달려 나오는 인간들이 있다. 지가 알아서 지킬 건 좀 지키자.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관의 통제를 그리워하고 자유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수십 년 전에 달성한 정치적 민주화와는 별개다. 민주화 투쟁의 여파로 정부에 대한 시시비비는 거세지만 반대로 그 정부의 지시를 그리워한다. 세상사 대부분을 개인의 자유로 해야 하고 또 그에 따른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한다는 인식이 희박하다. 젊은 세대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 되었지만 그것과 개인 자유에 대한 인식은 별개다. 그들은 타인과의 공존보다 개인 이익과 개인 취향을 우선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관이 개입해 주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다. 

개인 자유의 실현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수반되고, 이를 위해 준법 정신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정치인을 만날 욕한다. 하지만 도덕성이나 준법 정신의 수준에서 다른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높다는 보장은 없다. 정치인의 싸움질과 비리는 다양한 매체에서 날마다 시시각각 되풀이 중계방송해주니 그만큼 돋보일 뿐이다. 관의 지시와 통제에 매달리지 않고 개개인의 도덕성과 준법 정신에 입각하여 개인이 자유를 누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진정한 선진 문명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 마스크 강제의 해제가 세계에서 가장 늦음에도 불평을 하기는커녕 앞으로도 계속 쓰겠다는 사람들이 다수인 이상한 나라에 사는 이상한 엘리스가 세상이 이상하여 주절주절해 보았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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