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잔소리
상태바
아이유 … 잔소리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3.02.25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과 철학 사이〉

■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늦게 다니지 좀 마 / 술은 멀리 좀 해봐 
싫은 얘기 하게 되는 내 맘을 몰라 / 좋은 얘기만 나누고 싶은 내 맘을 몰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 니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이럴래 자꾸 (너) 더는 못 참고 (나) / 정말 화낼지 몰라
누구보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 / 이런 내 맘을 믿어줘”

 

아이유가 부른 노래 <잔소리>다. 새해를 맞으며 올해는 짝꿍에게 잔소리를 듣지 말자고 다짐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작심삼일이라 하더니 여전히 잔소리를 듣고 있다. 가장 잦은 잔소리는 단연 건강을 위한 잔소리다. 예전보다 몸무게가 많이 늘면서 건강을 위협하는 수치도 늘었다. 용기를 내서 검진을 받으니 아니나 다를까 당뇨병과 고혈압의 경계에 있단다. 다이어트를 하란다. 하지만 나는 올빼미족이다. 다이어트의 적은 야식이 아닌가. 그렇다고 밤새 마냥 굶을 순 없다. 게다가 야식만큼 달콤한 게 또 있을까. 아, 야식의 행복!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는 다 안다. 몰래 치킨을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 들리는 그의 잔소리, “먹지 마!”

“이왕 시켰는데!” “ ...... ” “배고픈데!” “ ...... ” “선심 좀 쓰지?” “ ...... ” “오늘만!” 온갖 구차한 핑계를 끌어모아 사정을 하고 눈치 보며 슬며시 입에 넣는다. 오만 볼트 레이저 눈빛을 받으며. 먹고 나면 나른해진다. 소파에 눕고 싶다. 하지만 나는 심한 역류성 식도염이 있다. 먹고 나서 눕는 것은 최악이다. 지옥 같은 무수면 내시경 검사를 마친 뒤 의사가 경고하며 보여준 새빨간 식도의 모습은 끔찍했다. 그래도 나른함을 이길 수 없다. 몰래 소파에 슬며시 누우려는 순간 들리는 그의 잔소리, “눕지 마!”

짝꿍이 밉다. 아니 짝꿍의 잔소리가 밉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라지만,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라지만, 누구보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라지만, 너의 잔소리는 밉다. 독일 철학자 니체도 이런 마음에 동감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옛날이든 지금이든 결코 변하지 않는 가르침을 일깨워준다. 그는 달콤한 말만 하는 ‘이웃’과 쓴 말도 하는 ‘벗’을 나누고, 이웃이 아니라 벗을 가까이 두도록 권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좋은 말을 하는 벗보다 달콤한 말을 하는 이웃을 가까이 두려 할까? 니체에 따르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참고 견뎌내지 못하며, 너희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이웃을 유혹하여 사랑하도록 만들고 ... 너희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려 드는 것이다. .... 너희 자신을 예찬하려 할 때 너희는 증인을 끌어들인다. 너희에 대해 좋게 생각하도록 그 증인을 유도하고 나서 너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

나 너희에게 이웃이 아니라 벗을 갖도록 가르치노라. 너희에게는 벗이 ... 초인을 예감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 나 너희에게 ... 창조하는 벗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이다. ... 너 너의 벗 속에 있는 초인을 너희의 존재 이유로서 사랑해야 한다. ... 나 너희에게 이웃에 대한 사랑을 권하지 않노라. 나 더없이 먼 곳에 있는 벗에 대한 사랑을 권하노라. ....

너 너의 벗에게 초인을 향한 화살이 되고 동경이 되어야 한다. .... 벗에 대한 연민은 딱딱한 깍지 속에 감추도록 하라. 그래야 그것은 섬세하고 감미로운 맛을 낼 것이다. ....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벗을 사귈 수 없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벗이 하는 좋은 말은 무엇일까? 나를 초인이 되게 해주는 말이다. 다시 말해 나를 넘어서 더 나은 나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는 말이다. 나를 무조건 예찬하는 말은 나를 넘어서게 해줄 수 없다. 그러한 말을 하는 이는 노예이지 벗이 아니다. 나에게 자신을 무조건 예찬토록 강요하는 말도 나를 넘어서게 해줄 수 없다. 내 자존감을 무너뜨릴 뿐이다. 그러한 말을 하는 이는 폭군이지 벗이 아니다. 자기를 참으로 사랑하는 이는 초인이 되고자 하는 이다. 다시 말해 나를 넘어서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다. 그는 폭군도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노예 같은 ‘이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달콤한 말뿐만 아니라 쓴 말도 해주는 ‘벗’을 원한다.

한 기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일이 있었다. 법무를 관장하는 이가 밤늦게 수십 명의 변호사와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해서다. 그 자리에 없었다는 진실만 밝히면 될 일인데 집요하게 캐묻는 그를 괘씸하게 여겨선지 본때를 보이려 한 듯하다. 기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를 위한 소리라고, 그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라고, 누구보다 그를, 아니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라고, 그 맘을 믿어달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그 말 듣지 않는 이에게는 듣기 싫은 뻔한 잔소리로 들리는가 보다. 또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기세다.

"먹지 마!" "눕지 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날 위한 소리인데, 누구보다 나를 위한 마음의 소리인데, 그 말 듣지 않는 나에게는 듣기 싫은 뻔한 잔소리일 뿐이다. 눈에 힘을 주고 겁을 줘봐도, 화를 내고 소리쳐도, 그 말을 듣지 않는 나에게는 여전히 뻔한 잔소리로 들린다. 마침내 짝꿍이 단호히 말한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이럴래 자꾸 너, 더는 못 참고 나, 정말 화낼지 몰라.” 그리곤 덧붙인다.

"늦게 다니지 좀 마!"
"술은 멀리 좀 해봐!"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