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어의 날(2월 21일)과 다언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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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어의 날(2월 21일)과 다언어 교육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3.02.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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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2023년 2월 21일은 제23차 세계 모어의 날(International Mother Language Day)이자 방글라데시 언어 운동 일흔한 돌 기념일이다. 이날은 방글라데시 언어 운동(각주 참조)을 기념해 유네스코에서 제정한 날로, 유네스코에서는 2001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했지만 이 운동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방글라데시에서는 1971년 파키스탄에서 독립한 이래로 이날을 줄곧 3대 국가 기념일 중 하나로 기념해 왔다. (나머지 두 개는 독립 선언일인 3월 26일과 승전 기념일인 12월 16일이다.)

아래 사진은 필자가 다카대학에서 한국어 교원으로 일하던 2004년 2월 21일 이 학교 교정 안에 있는 언어 운동 순국선열 기념탑(শহীদ মিনার, Shôhīd Minar)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곳이 바로 언어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파키스탄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한 자리이다. “우리 형제들의 피로 물든 2월 21일, 우리 어찌 잊을 수 있으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언어 운동 기념일 노래는 올해 2월에도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경건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방글라데시 언어 운동 순국선열 기념탑(다카대학교 교정). 2004년 2월 21일 조원형 촬영

이제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함께 기념하게 된 2월 21일을 맞아 UN에서는 ‘다언어 교육’을 올해 ‘세계 모어의 날’의 주제로 제시했다. UN 홈페이지(https://www.un.org/en/observances/mother-language-day, 2023년 2월 19일 접속)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40퍼센트가 자신들의 모어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거주 지역의 공용어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어로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실질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일제 강점기와 같이 한국어와 한글을 사용할 권리를 외세에게 빼앗기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나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으로 충분할까.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토박이 한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언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한다. 그런데 이들의 자녀들은 지금 어떤 언어를 배우고 있는가. 특히 한국 사회 이주민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결혼 이민자들의 자녀들은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의 모어를 배울 기회를 사실상 얻지 못한 채 오직 한국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부모조차 자기의 모어를 쓸 기회를 갖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 사회는 애당초 다문화 정책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사회이다. 한국에는 오직 동화 정책만 있었을 뿐 다문화 정책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2022년 10월 25일 동국대학교에서 개최한 다르마교양교육연구소 ‘사회 문제와 미래의 민주주의’ 특강에서 발표를 맡은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가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자리에 패널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의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특히 결혼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한국인으로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살면서 부모의 모국과 그 언어에 대해서도 깊은 식견을 가지고 그 언어 사용자들과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가지게 해야 할 것이다. 결혼 이주민들의 모어를 다른 한국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을 할 수 있는 장도 널리 마련했으면 한다. 그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이주민들에게 교수법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교육 공간을 마련해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모어를 한국인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문화 역량을 풍부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주민들의 모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정책들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정책이 될 것이다.

(각주: 방글라데시 언어 운동은 방글라데시가 ‘동파키스탄’이던 시절 이 지역 사람들의 모어인 ‘벵골 문자로 표기하는 벵골어’를 파키스탄 정부에서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은 것에 저항해 일어난 운동이다. 이 과정에서 1952년 2월 21일 다카대학교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파키스탄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포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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