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철학 … 생명에 대한 철학이 아닌 생명에 의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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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철학 … 생명에 대한 철학이 아닌 생명에 의한 철학
  •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 승인 2023.02.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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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생명철학: 생명과학 시대의 생명 이해』 (신승환 지음, 이학사, 370쪽, 2023.01)

 

생명철학은 생명과 철학을 연결지은 말에서 보듯이 생명으로 철학 작업을 수행하려 한다. 이 연결사는 목적어적이지 않고 주어적이다. 즉 생명에 대한 학적 지식을 해명하는 작업이 아니라 생명을 주어로 해서, 생명으로 ‘철학’한다. 수많은 철학자들은 나름대로 철학을 정의하면서 이를 토대로 해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철학을 정의하는 그 자체가 개별 철학자의 고유한 철학적 작업일 수밖에 없다. 부족하지만 나 자신 한 명의 고유한 철학자라면, 나는 철학을 “인간이 자신의 지성으로 수행하는 이해와 해석의 작업”으로 정의할 것이다. 무엇을 이해하고 해석하는가 하는 것이 철학의 영역을 결정한다. 생명철학은 생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모든 개별철학이 그러하다. 이 철학이 목적어적이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철학은 그 주제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그 주제의 의미가 방향지어지기 때문이다. 이 이해의 체계는 철저히 존재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이다. 그런 까닭에 생명철학은 생명에 대한 지식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재론에 근거해서 생명을 이해하고 해명하는 작업인 것이다. 생명철학은 생명의 존재론적 이해인 생명성에 토대를 두고 생명을 해명하는 철학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철학은 자기회귀적이다. 그것은 철학을 규정하는 그 사유가 바로 철학의 본질이라는 의미에서 철학 자체가 자기회귀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명철학을 통해 세 가지 철학적 과제를 수행하려 한다. 이미 한계에 이른 실체 중심의 유럽철학을 극복하는 단초를 생명성에서 찾으려는 과제가 그 첫 번째이다. 이것은 생명이 지닌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적 실재인 생명이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지닌 이러한 ‘physis’적 특성 때문이다. 생명의 이러한 특성을 해명할 수 있을 때 존재자를 실체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서구 철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질 것이다. 실체중심의 서구철학 전통은 존재자의 존재에 담긴 생성적 특성을 보지 못한다. 생명성에 기반을 둔 철학은 이러한 특성을 명확히 언어화함으로써 자연주의적 한계를 극복할 단초를 제시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생명철학의 두 번째 과제가 이어진다. 

생명 철학은 생명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자연주의가 지닌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생명의 존재론적 의미를 해명하려 한다. 진화생물학적 기반 위에서 생명에 대한 지식을 전유하는 현대의 생명과학은 생명을 다만 자연적 사실로만 설명하려 한다. 그러한 학적 접근은 생명이 지닌 실체적 지평 이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생명은  그러나 생명은 그런 층위를 넘어 생명으로 존재하려는 의지를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인 철학함이 자기회귀적이듯이 살려는 의지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론적 특성을 가리킨다. 생명은 ‘physis’적이면서 또한 ‘logos’적이다. 생명철학이 자연주의적 한계를 넘어서는 데 자리한다는 말은 생명에 담긴 이 존재론적 특성을 해명하지 못하는 현대 생명과학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생명의 ‘logos’적 특성을 해명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말이 곧 생명을 초자연적 실재를 통해 설명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생명철학은 생명을 있게 하는 어떤 초자연적 실재를 전제하지 않는다. 생명의 스스로 그렇게 됨과 살려는 의지를 지닌 생명 현상을 존재론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자연주의적 맹목이나 초자연주의적 허상을 넘어설 것이다.

세 번째 과제는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원리를 정초할 때 이에 근거하여 생명을 살리는 윤리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데 있다. 윤리학이 형이상학의 토대 위에서야 타당하게 정립될 수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생명의 자연적 토대는 물론, 존재론적 지평 역시 점차 위험에 처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생명을 살리는 윤리적 이해와 실천은 분명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를 요구한다. 생명철학은 이를 위한 윤리 형이상학적 토대를 정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 『생명철학』은 먼저 현대 생명과학이 전유하는 생명에 대한 지식과 그러한 분석의 한계를 비판한다. 그와 함께 현대철학 영역에서 논의하는 생명철학의 배경과 논의 범주를 설명한다. 이어 2장에서는 이를 넘어 생명의 자기이해와 생명성을 정의한 뒤 3장에서는 생명철학에 담긴 탈근대성의 특성과 함께 이런 관점에서 생명 이해를 논의한 동 서의 사유전통을 살펴본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자연이해와 생명이해를 중요한 논의의 토대로 제시한다. 제4장에서는 생명철학을 말하는 중요한 철학적 주장과 함께 그 한계를 비판한다.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한스 요나스의 생명철학과 함께 생명정치철학이 이 장의 논의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5장 생명 형이상학에서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생명철학의 형이상학적 특성을 다섯 가지 관점에서 해명하려 시도했다. 이 생명철학은 근대 이후의 인간이 실재와 세계, 역사와 자연, 자아와 타자를 이해하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지향한다. 그 생명성을 이 책에서는 생명감성과 삶의 이성, 초월영성으로 제시한다. 

인간의 삶은 이성이나 정신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생명성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 존재론적 정세의 자리는 이성이 아니라 바로 이 생명체의 전 의식인 생명성이다. 인간의 생명체적 발전은 의미론적이며 문화적으로 변이하고 발전하며 전환된다. 자연적 생명은 지성적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을 때 의미를 지니게 되며, 생명이 나아가야할 길이 자기회귀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생명체의 삶의 과정은 생명체의 자연적인 특성을 넘어 의미론적이며 초월적 생명존재로 자리매김될 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의미를 이 책은 철학사적 관점에서 서구 형이상학 전통을 넘어서려는 탈형이상학의 맥락과 연결 지을 수 있다. 그것은 생명철학이 근대성을 극복하는 탈근대성의 형이상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서구 근대성에 의해 틀 지워진 현대의 자연주의적 문화는 이런 특성을 애써 외면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 존재이기에 이러한 맹목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생명철학은 생명에 담긴 존재론적 특성을 언어화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수행해야 할 현재의 철학적 과제를 달성하려 시도한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생명의 특성을 해석학적으로 성찰하여 이를 바탕으로 서구 근대성을 극복하는 탈근대의 철학을 모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지평』, 『지금, 여기의 인문학』, 『철학, 인간을 답하다』, 『해석학: 새로운 사유를 위한 이해의 철학』, 『행복과 삶의 해석학』, 『형이상학과 탈형이상학』, 『포스트휴머니즘의 유래와 도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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