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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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해 생각하다
  • 양선이 한국외국어대학교·철학
  • 승인 2023.02.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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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던 1930년대에 예술작품의 위상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놓고 있는 현재 우리는 벤야민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예술작품 개념을 새로이 규정하는 데 필요한 논의를 해야 한다. 

벤야민은 기술의 발달, 특히 복제기술의 발달로 그전에는 예술작품에서 창의성, 천재성, 영원성 등을 중심으로 예술작품을 규정하던 것이 바뀌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아우라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아우라의 상실’은 가져왔지만 복제된 예술작품의 확산은 대중에게 예술적 삶을 누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고 평가하였다. 예술에 관한 규정에서 벤야민의 이와 같은 평가는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물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재 우리의 고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를 전제로 하지만 그것은 또한 감상자, 즉 소비자를 필요로 한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고 그것에 충족되는 것은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지 약 90년이 지난 현재 인공지능의 발달로 예술 분야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특히 그림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다. 전통적인 미술대회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우승을 차지한 예도 있으며, 인공지능과 인간 작가에게 동일한 재료 이미지를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하여 점수를 매겼을 때 인공지능 작품이 인간 작품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는 인공지능에 저작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일찍이 아이작 아시모프가 그의 책 <바이센티얼 맨>(1976년, 1999년에 SF영화로도 방영됨)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영화)에 따르면 제작사의 실수로 인간과 유사하며, 창의성 분야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이 로봇은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인간이 되고 싶어 하다가 결국은 법적으로 자유와 권리를 인정받게 되고 인간이 되기 위해 영생을 포기하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인공지능에 저작권을 줄 것인가라는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가진 것을 가질 수 있느냐는 문제로 볼 수 있고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철학적 문제에 대해 합의에 도달해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이란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인격이란 이성과 반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하는 지능적 존재로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사고를 하는 존재”라고 정의하였다. 달리 말하면 인격적 존재는 자기를 자기로 의식할 수 있는 의식적 존재를 의미한다. 인격을 이렇게 규정했을 때 인격을 가진 존재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기억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를 의미한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권리 또한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에서 인공지능이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 보호 요청을 미국 저작권 청에 한 사례가 있었으나 ‘사람의 의도나 창의성 없이 자동 생성된 인공지능 창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인공지능의 저작권 신청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에 법적 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면 인공지능은 법적인 책임에서 배제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물이 불법적이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현재 학계에서 인공지능의 책임과 관련해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의 개발자들에게 책임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해당 인공지능이 완성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분야의 기술과 데이터가 합쳐졌을 것이고, 그 과정에 관여한 기술자들도 무수히 많을 것이기 때문에 플로리디(L. Floridi 2013, 2016)는 이러한 복잡한 관계망을 전제로 ‘분산된 책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또한, 인공지능이 문제를 일으킨 상황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의 투명성, 인간에 의한 통제 가능성을 위해 시스템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디서 왜 그러한 오류가 발생했는가를 스스로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을 설계해야 한다고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점차 가열되는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우수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경쟁이 치열한 국가와 기업 간의 경쟁 속에서 ‘분산된 책임’과 ‘설명 가능한 AI’에 대한 요구는 실효성이 적어 보인다.

강한 인공지능에 대비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는 도덕적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도덕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인격, 자유의지(자율성), 도덕 감정 등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이를 인공지능에 적용해 보면 자아 정체성을 지니고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 등은 아직 인공지능이 가질 수 없고, 자유의지라는 것의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으므로 그 대안으로 도덕 감정을 가지도록 설계해야 한다. 현재 감성 로봇(페퍼, 키스멧, 나딘 등)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만약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공지능(로봇)이 적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으로 된다는 것이 배움의 문제라면 인간이 그래왔듯 인공지능에게도 도덕적 민감성과 정직, 신뢰, 죄책감과 같은 도덕 감정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양선이 한국외국어대학교·철학

영국 더럼 대학교(Durham University)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BK 철학교육연구사업단 교수, 서양근대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영국경험론(흄), 심리철학(감정), 윤리학(메타) 전문가이며,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 영화가 묻고 철학이 답하다』, 『서양근대 윤리학』(공저), 『마음과 철학』(공저), 『서양근대 미학』(공저), 『서양근대 교육철학』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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