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우리를 어떻게 곤경에 빠뜨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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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우리를 어떻게 곤경에 빠뜨리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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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맞은 뇌: 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 | 대니얼 샥터 지음 | 홍보람 옮김 | 인물과사상사 | 444쪽

 

이 책은 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를 분석한다. 기억은 왜 불완전하며, 그 기억으로 인해 우리는 어떻게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살펴본다. 우리는 기억을 잊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며,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기억으로 오랫동안 시달리기도 한다. 누군가와 만났던 일을 잊어버리거나 안경을 놓아둔 자리 혹은 낯익은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인간은 카메라처럼 경험을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에서 핵심 요소를 뽑아낸 다음에 경험을 재창조하거나 재구조화한다. 그 과정에서 기억의 오류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 체계는 어쩌다 이토록 성가시다 못해 종종 위험천만한 특징을 보이게 되었을까? 저자 대니얼 샥터는 기억에 대한 인상적인 실험연구들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기억의 오류, 즉 소멸·정신없음·막힘·오귀인·피암시성·편향·지속성 등을 분석해나간다. ‘소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정신없음’은 주의력과 기억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막힘’은 정보를 불러오려고 애쓰지만 정보 찾기에 실패한 것을 말한다. ‘오귀인’은 환상을 현실로 오해하거나 신문에서 본 내용을 친구가 해준 말로 잘못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피암시성’은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려고 할 때 유도 질문이나 암시에 의해 기억이 주입되는 것을 말한다. ‘편향’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지속성’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은 걱정스러운 생각이나 사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기억의 이 7가지 오류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대자연이 저지른 실수일까? 이 책에는 신경과학에서 이루어낸 여러 발견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학습과 기억이 일어날 때의 뇌 활동을 보여주면서 기억의 7가지 오류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준다. 저자는 기억이 잊힐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엿볼 수 있는 신경연상 연구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는 대자연의 크나큰 실수로 인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기억 체계를 갖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기억의 7가지 오류가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자 기억의 또 다른 적응적 특징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 진화의 부산물이며, 우리 뇌의 기능이 제대로 실현되고 처리되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것이다. 소멸은 기억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환경의 특징에 적응한 결과이며, 오귀인은 우리의 기억 체계가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세세하게 저장하는 대신에 선택적이고 효율적으로 부호화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즉, 기억의 7가지 오류는 인간 정신의 바람직하면서도 적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특징의 부산물이다.

우리의 기억 체계는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정보로 머릿속을 어수선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데이터 과부하를 제공하는 기억 체계를 원하지 않는다. 즉, 광범위하게 부호화를 할 만큼 중요한 사건들만 잘 기억하도록 한다. 그렇지 못한 사건들은 중요하지 않은 사건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기억할 가능성도 없다. 이것은 유용하고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스템은 매우 실용적이다. 최근에 정보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주 이용하지 않아 미래에도 사용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정보를 줄일 때 얻게 되는 이익과 망각 때문에 겪게 되는 괴로움 사이에서 균형이 이루어진다.

뇌가 우리의 모든 경험을 기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억이 “계속되고 통제되지 않아 완전히 기진맥진해”질 것이다. 기억의 세부 사항이 머릿속에 어수선하게 자리 잡아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은 “편향은 일반화, 개념, 범주를 형성하려는 인간의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경향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편향은 과거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또 다른 대가라는 것이다. 사건의 요점만 기억해서 일어나는 오귀인은 우리의 인지 기능에 필수적인 범주화와 일반화 과정의 부산물이다. 저자는 기억의 7가지 오류가 저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것은 기억을 잘 작동하게 하는 특징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정신의 유산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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