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곁에, 아름다운 악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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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곁에, 아름다운 악기가 있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19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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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클래식 악기를 그리다: 피아노에서 하프까지, 명화가 연주하는 여섯 빛깔 클래식 이야기 | 장금 지음 | 북피움 | 320쪽

 

악마와 거래를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원조는 파가니니가 아니다, 피아노는 처음에는 ‘럭셔리한 가구’였다, 서양 군대를 공포에 떨게 한 터키 군대의 비장의 무기는 악기였다, 여성스러운 악기인 플루트를 남성들이 사랑하게 된 이유,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하프를 유행시켰다……. 

이 책은 바이올린, 피아노, 팀파니, 류트, 플루트, 하프 등 6가지 클래식 악기를 키워드로 악기와 악기 제조의 역사, 악기를 사랑한 음악가와 그들에 얽힌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까지 살펴보면서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풍경들을 폭넓게 고찰하는 인문교양서이다.

이 책에서 악기의 구조나 조율, 연주 방법 같은 사전적인 정보는 ‘사이드 메뉴’이다. ‘메인 디시’는 악기를 통해 살피는 클래식이 유럽 사회에 미친 사회적, 문화적 영향, 즉 클래식 음악을 둘러싼 사람과 사건의 파노라마다. 악기 탄생과 개량의 비밀, 악기 연주자들이 차마 말하지 못했던 고충, 악기가 불러온 온갖 사건 사고와 역사 속에 숨어 있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풀려나온다.

예를 들어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까지 일컬어지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19세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놀라운 재능을 결코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파가니니의 신들린 듯한 테크닉의 힘 있는 연주를 뒷받침해준 ‘개량된 바이올린 활’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짧고 볼록한 모양이었던 바이올린 활은 19세기에 파가니니의 등장 무렵에 개량되었고, 파가니니는 이 새로운 활로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청중을 휘어잡았다.

피아노는 대단히 대중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급 악기’ 이미지가 강하다. 드넓은 거실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 사진 한 장은 열마디 말보다 강렬하게 뇌리를 강타한다. 사실 피아노는 ‘럭셔리 가구’로 출발했다. 초기 피아노 제작자들은 가구 제작자 출신이었다.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 배틀 뒤에서 피아노 제작사들도 피 튀기는 판매 전쟁을 벌였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피아노 악보’ 출판 관련해서는 베토벤이 웃고 쇼팽이 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피아노가 가정집에 한 대씩 놓이기까지 악기 판매업자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의 우여곡절도 펼쳐진다.

굉음으로 유럽 대륙을 혼비백산하게 만들며 위풍당당하게 서양음악사에 등장한 터키 군대의 ‘최종병기’ 팀파니는 전장에서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둥둥~!’ 소리만으로 아군의 사기를 팍팍 북돋우고, 적군을 ‘쫄보’로 만들 수 있는 무기라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을 것이다. 군악대 출신의 악기였던 팀파니는 그 소리의 위풍당당함으로 인해 궁정의 ‘전령사’로 활약하게 되었고, 궁정을 등에 업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군악대 수준의 악기를 오케스트라 악기로 ‘순한 양’처럼 길들인 사람은 베토벤이었다.

작고 가냘픈 음색의 플루트가 뜻밖에 현대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도 신선하다. ‘현대음악을 잠에서 깨웠다’고 평가받는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 드뷔시가 비몽사몽하는 목신 판을 표현하기 위해 낙점한 악기가 바로 플루트였다.

꽃도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누군가의 꽃이 될 수 없듯이, 악기 역시 누군가 터치해주지 않으면 울려서 존재감을 발하지 못한다. 그들이 악기를 터치하자 전 유럽이 들썩였던 사람들이 있었다. 17세기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 18세기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18세기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들이다. 국적도 다르고 살았던 시대도 달랐던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직접 악기까지 연주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국정을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엘리자베스 1세는 류트(기타의 전신인 악기)를, 마리 앙투아네트는 하프를, 프리드리히 대왕은 플루트를 사랑했고, 직접 열심히 연습하여 연주회까지 열었다.

‘최고 지존’의 악기 사랑이 단순히 즐거운 연주회와 박수갈채에서 끝날 수 있을까? 권력자가 사랑한 모든 것은 사회 현상을 만들어낼 정도로 광풍을 불러온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역사가 증명했다. 왕이 플루트를 불었으니 유럽의 남성 귀족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여성적인 악기로 여겨졌던 플루트는 하루아침에 남성 귀족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으며, 유럽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중간 중간 삽입된 50여 점의 그림은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모여서 각자의 악기를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를 진지하게 듣는 귀족 남성들의 모습, 군대의 전의를 북돋우기 위해 말 등에 매단 팀파니를 힘차게 둥둥 울리는 모습, 자기 몸집보다 커다란 하프를 낑낑거리며 연주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 등을 보면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함께 유쾌하고 떠들썩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악기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 손에 잡힐 듯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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