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시대를 보면 현대 일본의 어두운 속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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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를 보면 현대 일본의 어두운 속살이 보인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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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지의 그늘: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 | 이찬수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32쪽

 

이 책은 현재의 자민당 중심의 보수 일색 정치의 일본이, 메이지 시대 이래로 문화, 철학(종교) 사상에 눌어붙은 짙은 그늘을 여전히 간직한 체제라는 점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난 200년간 일본인의 종교적 내면부터 사회적 정서, 정치적 문법까지 종합함으로써 일본 전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이를 통해 일본이 주변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 한국인으로서는 궁금한 문제들을 명쾌하게 다룬다.

메이지, 신도(神道), 호국영령, 천황제, 멸사봉공, 혐한, ‘일본회의’, 국민(國民) 등의 키워드를 근간으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사죄하지 않는 전범국가, 종교적 천황주의, 보수주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같은 속성으로 채워 근현대 일본의 속살들은 단지 ‘호전적인 일본인의 침략 근성’으로 설명되는 역사적 사건의 개념어가 아니라 철저한 종교철학적 토대 위에 구축된 체제라는 발견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는 그간 한국인이 주로 역사적인 맥락에 집중하여 일본을 파악해 온 것과 달리, 심층에서의 일본 이해를 가능케 한다. 특히 일본의 보수주의란 진보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사상이 아니라, 천황을 정점으로 하여 메이지 시대 ‘영혼의 정치’ ‘제사하는 국가’의 전통과 정서를 승계하는 집단적 사고방식이자 태도라는 점을 주목한다. 이것이 일본이 왜 이웃국가와 국민들에게 정성 있는 사과를 함으로써 과거사를 벗어나서 미래로 향하는 길을 택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렇게 일본을 깊이 알아야만, 비로소 한일관계의 해원과 동북아 평화 체제 모색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악의 평범성’은 아이히만이 “유대인 대량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악마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동아시아 일대를 전화(戰禍)로 내몰고 수백만 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행위를 행하고서도 오늘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오불관언하는 것은 그들이 그 문제에 관한 한 ‘사고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1차적으로 20세기 전후의 역사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데서 비롯하지만, 근본적으로 메이지 이래 ‘일본 영광론’을 한 번도 떨쳐 버리지 않았던 ‘일본국의 근대 사상, 철학, 정교, 문화’에 두루 걸쳐 있는 ‘메이지의 그늘’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일본만 기억하거나,  배상이 끝난 ‘위안부’나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를 새롭게 들고 나오고, ‘(한국의) 법원조차도 정치적인 판결을 하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국가와 국민’으로서 한국을 멀끔히 쳐다볼 뿐이다. 

그들이 ‘정상국가 일본’을 그토록 갈구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평범한 일본의 본래’ 모습이라고 여기는, ‘일본의 평범성’에 대한 갈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인)으로서는 국가(정부)든 국민이든 간에 ‘국가 간에 협상(한일협상)’이 끝난 문제를 ‘국민적인 반발’을 이유로 ‘뒤집는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정신이 천황이며, 따라서 국가의 결정은 ‘신(神)’의 명령과 같은 것이며, 우리(일본)이 그러하니, 다른 나라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하고, 그러하여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 책에서는 메이지 정부가 오랜 민중 신앙인 신도(神道)를 국가적 통치 시스템의 근간으로 삼는 과정, 즉 부모에 대한 효행을 선조에 대한 제사와 연결시키고 제사의 대상을 일본의 신화적 기원인 아마테라스에까지 확대시켜서,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는 천황을 숭배하게 하고, 그를 통해 천황 중심의 통일 국가를 성립시켜온 과정에 대해 조목조목 정리한다.

특히 전몰자의 혼령, 즉 ‘호국영령’을 위로하고 제사함으로써 국민의 호국적 자세를 강화하고, 그를 통해 국민의 정신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전략을 이 책에서는 ‘영혼의 정치(학)’이라 명명한다. 죽은 자(조상신, 호국영령 등 귀신 전반)가 산 자를 움직이는 일본 특유의 ‘영혼과 제사의 정치’의 특징을 역사적 흐름과 주제를 따라가며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메이지 시대 이른바 제사의 정치를 중심으로 사실상 ‘천황교’가 탄생했다. 일본인은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의식중에 거의 ‘천황교 신자’가 되었다. 이 천황교는 공과 사를 분리하는 일본식 ‘오오야케(公)’와 ‘와타쿠시(私)’의 개념을 더 강화시켰고, 이것이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일본적 대인관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일본이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이유, 인류 보편의 가치보다는 내부의 가치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일본에는 왜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지, 한국과는 상이한 일본인의 ‘하늘’관 등을 밝힘으로써, 일본의 문화적 정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한일 간 소모적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왜 일본 최고의 지성들이 천황제 안에 머물면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찬양하기만 했는지 그 철학적 논리와 오류를 밝힌다. 서양 사상가들을 일본 연구로 끌어들였던 일본 최고의 철학자들은 물론 여러 종단들이 천황제를 찬양하고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 배경과 논리,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일본적 ‘그늘’ 혹은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한일기본조약,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한일 간 해석의 차이가 왜 이렇게 큰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치즘이 ‘민주주의적인 절차’(국민투표)에 의해 권력과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마침내 반민주주의적 독재(총통) 체제를 달성해 냈다면, 일본의 경우 메이지 이래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일본교(日本敎)’ 체제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해 나가고, 종교적(정서적, 신념적)으로 교화해 나간 결과물이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와 만주-중국대륙을 침략하고, 태평양 전쟁을 발발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들을 향해 종교전쟁을 벌이며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마녀사냥으로 세계를 정화(淨化)하는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었으며,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천황(神)을 위해 순교(殉敎)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메이지의 그늘, 천황의 발 아래 ‘가스라이팅 된’ 일본, 일본인, 일본 역사이고, 그 본질은 현재의 일본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국민’보다 ‘국가’와 ‘국가주의’가 상위에 있던 일본적 ‘공기’”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을 앎으로써 일본을 이기고, 일본을 이김으로써 일본을 화해의 광장으로 맞아들이는 멀고 험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무엇보다 일본을 위한 일이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과거의 식민 역사에 대한 기억의 상처,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의 상처를 씻는 길이며, 한-일 관계의 건전한 발전은 곧 국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행복한 발전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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