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무용 속에 정립된 하이데거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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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용 속에 정립된 하이데거의 진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2.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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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무용의 미학과 하이데거의 진리 | 배학수 지음 | 해피북미디어 | 296쪽

 

“우리 곳이 좋은 것이여!” 전통 예술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하고, 일반인들도 자주 듣다 보니 전통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끼리 자화자찬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며 전통 무용의 예술적 가치를 이 책에서 묻는다.

사자춤, 부채춤, 사물놀이… K팝 아이돌의 무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전통 의상과 소품, 춤(선)들. 과연 우리는 우리 전통의 조선무용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한국의 전통무용을 철학적으로 바라보고 그 동작 속 진리를 파헤치는 저자는 그간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정의되던 한국무용을 명확히 규정하고 규명하여 한국무용의 새로운 활로를 열고자 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예술 창작은 작품에 진리를 건설하는 활동이며, 예술 감상은 작품에서 전개되는 진리를 깨닫는 활동이다. 예술은 형상을 통하여 존재의 진리를 진술한다. 존재의 진리는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작품 속에 은폐된 진리가 드러나고 감상자가 그 존재의 진리를 발견할 때에 예술 작품의 가치가 드러난다. 저자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기반으로 개별 무용 작품을 파헤쳐 조선무용의 동작 속에 담긴 미학과 진리를 독자들이 직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우리 전통무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앞서, 다의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던 한국무용이라는 용어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단어 사용을 제시한다. 한국무용이라는 단어는 한국의 전통무용, 한국적 무용, 한국인이 공연하는 무용 등 그 뜻이 넓고 방대하다. 그는 한국의 전통무용에 대한 논의를 위해 우선 전통무용을 1910년 이전 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 조선 반도에서 창작된 무용으로 한정하고, ‘조선무용’이라고 바꾸어 부르자고 이야기한다.

조선무용은 시대적으로 분류하면, 1910년 이전의 전통조선무용과 그 이후에 전통적 기법으로 창작한 신조선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조선무용에는 궁중이나 지방의 관청에서 연행하던 춘앵전, 망선문, 선유악(船遊樂), 고무(鼓舞) 같은 정재와, 진도씻김굿, 동해안 별신굿, 동래야류 같은 여향의 춤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승무, 살풀이, 태평무 같은 국가 문화재는 전통무용의 대표로 간주되어 왔다. 필자는 이런 상식이 아무 근거가 없음을 주장하며, 그런 춤은 1930년대 한성준이 전통의 양식으로 창작한 신조선무용이라는 점을 논의한다.

저자는 조선무용에 내재해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 춤의 이름에 담긴 뜻을 밝히고, 춤이 연행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당 조선무용이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주로 공연을 하였는지, 어떤 무용수가 어떤 장단에 맞춰 팔을 뻗었는지, 누가 그 춤을 계승하였는지 등 조선무용의 성립과 발전을 상세히 기술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해석의 오류도 바로잡는다. 살풀이는 사실 한을 풀기 위해 연행된 것이 아니라 자유의 신명을 표현하는 춤이었음을, 태평무를 춘 것은 조선의 왕과 왕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호남은 소리, 영남은 춤.”이라 말하지만 호남에는 없는 춤이 영남에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꼼꼼한 사료 분석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 밝혀낸다. 동작에 담긴 의미와 그 상징까지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에 담긴 대중의 정서까지 파악하는 저자는 동해안별신굿, 동래고무, 지전무 등 지역의 조선무용에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만약 무용가의 개별성에 차이가 없다면 지역 무용은 조선무용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무용수는 각자 개성적 인간이기 때문에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형식과 내용을 통합하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21세기 지역 무용이란 향토무용이 아니라 지역 무용가의 개성이 담겨 있는 조선무용인 것이다. 

저자는 조선무용의 기원과 그 변천과정을 해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춤에 담긴 미학과 상징 등을 기술하며 하이데거의 예술론에 기반하여 조선무용을 해설한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동작이 고정된 하나의 의미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다른 무용들에 비해서 조선무용은 유독 그 동작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 조선무용의 안무자나 무용수 그리고 연구자들이 동작을 폐쇄적 방식으로만 바라보고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와 현대에 연행되는 조선무용의 의미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무용을 행하는 사람도 무용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도 자신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그 존재의 진리를 다르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조선무용의 고정화된 의미를 넘어서 존재의 진리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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