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실종과 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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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실종과 인류의 미래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3.02.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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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꽃피는 봄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꽃이 피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생물이 벌이다. 벌은 머리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음료수 컵에 빠져 성가시게 하며, 자신이 공격받았다고 여길 때는 독침으로 알러지를 일으켜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인류는 거의 9,000년 전부터 꿀벌(Apis mellifera)을 다루기 시작했다. 유럽과 동∙북아프리카의 고대 도기에서 발견된 밀랍의 흔적은 초기의 농부들이 꿀벌을 키웠음을 보여준다. 인류는 식량과 약용으로 꿀과 밀랍을 채취했는데, 이것은 고대의 수렵 채집문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꿀을 채취하기 위해 사다리와 끈 그리고 연기를 사용한 흔적을 보여주는 인류의 고대 동굴 벽화를 통해, 선사 시대에도 인류는 꿀벌을 다뤘을 것으로 여겨진다. 꿀벌은 가축처럼 길들지는 않았으나, 인류는 꿀벌에게 벌통을 제공하여 더 쉽게 꿀과 밀랍을 채취해왔다. 그러나 가축화된 동물에서 행해지는 인위선택에 의한 육종이 어렵고 처녀생식을 행하기 때문에 꿀벌의 유전적 변화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인류와 꿀벌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서 인류는 꿀벌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어야 한다. 2020년도 PNAS에 발표된 애들러(Lynn S. Adler) 그룹의 연구에 의하면, 현화식물 자체만으로는 꿀벌의 질적인 삶에 충분하지 않으며, 온 계절을 통틀어 다양한 종류의 꽃이 필요하다. 즉 꿀벌은 다양한 식생지의 질 높은 꽃 서비스가 필요하다. 수분(受粉) 매개동물의 감소는 식량 생산을 감소시키는데, 이들 매개동물은 살충제, 병독원과 꽃의 부족을 포함한 여러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기합성 농약의 광범위한 사용을 기점으로 꿀벌의 수는 점차 감소했다. 1990년부터는 유럽과 미국에서 꿀벌의 벌집붕괴질병(CCD)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3년 전부터 같은 현상이 나타나 농업과 생태계 차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CCD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꿀벌의 장에 서식하는 미포자충인 노제마(Nosema ceranae), 바이러스, 진드기, 살충제와 제초제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CCD에는 바로아 진드기, 바이러스와 유럽 부저병, 영양 부실, 살충제와 제초제, 그리고 개화 시기를 변동시키는 기후 변화 같은 환경적 요인이 관여하며, CCD를 겪는 꿀벌들은 여러 종류의 DNA 수선 유전자가 결핍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추가적인 연구 결과에 의하면, 꿀벌이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같은 살충제에 노출되면 면역계가 억제되어 병독원에 취약해지고, 귀소(歸巢)와 생식능력이 떨어진다. 이를 토대로 EU는 2013년 5월에 3종류의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살포 후 6년 뒤에도 식물에서 검출되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사용 금지가 긴급히 요구된다. 

 

꽃의 수분은 유성생식 현화식물에서 필수적인 과정으로, 꿀벌은 이 과정의 중요한 기여자다. 수분은 종자 생성을 위한 과정으로, 수정된 난세포가 자라 종자가 포함된 열매가 되고, 그것을 섭취하는 동물에 의해 퍼트려진다. 벌들은 시금치, 사과와 아몬드를 포함한 많은 종류의 식물을 수분시킨다. 난세포와 정자가 만나는 수분은 유전적 다양성을 일으키고, 수분에 의한 종자 생산은 먹이사슬에서 동물의 먹이가 된다. 인류가 섭취하는 대부분의 식량 생산은 수백만 년 전부터 행해져 왔던, 꽃과 꽃 사이의 중매쟁이 역할을 해온 벌들에 의존한다. 

지구상에는 꿀벌을 포함하여 인류와 친숙한 2만 종 이상의 벌이 존재한다. 현재 꿀벌은 전 지구적으로 서식지 소실, 병독원, 살충제, 기후 변화, 적절한 꽃밭의 질적 및 양적 감소를 포함한 수많은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많은 꿀벌 집단이 봄마다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종이 감소하고 있으며 일부 종은 멸종에 직면해 있다. 2017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북미에 서식하는 4,000종 이상의 벌 중 약 25%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벌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류의 생존 시간은 4년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벌들이 없다면, 수분이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식물도 없고, 동물도 없으며, 결국 인류도 생존하지 못한다”라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금언이 있다. 많은 작물은 벌 등의 수분 매개동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벌이 사라지면 농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벌들이 사라지면 벌들에게 수분을 부분 또는 전적으로 의존하는 곡물의 양이 약 75%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꿀벌의 모든 아종(亞種)이 사라져도, 꽃에는 다른 수분 매개동물이 찾아올 것이고, 한편으로 밀, 벼와 옥수수 등의 작물은 풍매화이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언급과 달리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퍼듀 대학의 곤충학자인 크룹케(Christian Krupke) 교수에 의하면, 인류가 섭취하는 작물을 수분시키는 벌들 없이도 인류는 생존할 수 있으나, 식단은 상당히 변할 것이다. 즉, 식단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다양한 종류의 식량 이용가능성이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식물이 벌에 수분을 의존하기 때문에 벌이 사라진다면 벌에 의존하는 식물 역시 자손을 퍼트리지 못하고 결국 죽을 것이다. 이것은 먹이사슬에서 식물에 의존하는 동물이 사라지는 것처럼 생태계 전반을 관통하는 연쇄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식물을 수분시키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벌의 수분 서비스를 대체하는 로봇이나 드론의 사용 같은 기법이 개발된다 해도 규모화하기 어렵고 비효율적이어서 산출량이 적을 것이고, 결국 식량 생산의 비용이 상승할 것이다. 벌은 수분하는 데 매우 단순하고 효과적이며 더구나 무료로 봉사한다. 농장과 지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이런 무상 노동자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만족하지 못하면 노동자들은 그곳을 떠나게 된다. 

 

먹이사슬에서 벌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지구 차원에서 곡물 종의 70% 이상이 수분 매개동물에 의존한다. 약 20년 전부터 CCD가 나타났는데 2016년도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만 벌 군락의 약 44%가 붕괴하였고, 유럽 야생벌의 약 10%가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 CCD를 일으키는 첫 번째 요인은 서식지 소실로 벌들의 먹이가 되는 현화식물의 소실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야생 초지의 약 97%가 사라진 사실을 고려하면 벌들의 서식지가 매우 협소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기후 변화로 온난한 겨울은 개화 시기 같은 식물의 생체리듬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벌들의 활동 시기와 다르게 사과나무 꽃이 빨리 개화한다면, 벌들은 식량을 구할 수 없으며, 사과나무는 수분이 일어나지 못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한다. 기후 온난화 자체가 벌에 직접 영향을 미쳐 행동을 교란하기도 한다. 세 번째 요인은 네오니코티노이드를 포함한 살충제의 사용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벌의 면역계에 독성을 끼쳐 해충에 취약하게 만들고, 귀소 및 생식능력을 손상시킨다. 네 번째 요인은 해충과 질병을 들 수 있는데, 진드기인 꿀벌응애는 벌의 날개나 몸통에 부착되어 벌통으로 들어갈 수 있다. 벌통 안에서 이들은 알을 낳고 어린 벌, 특히 수벌을 섭식하는데 궁극적으로 전체 벌집을 휩쓸어버린다. 

식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 외에도 생태계가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수분 매개동물의 수분 서비스가 중요하다. 생태적 측면에서 이런 연결고리가 제거되면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고, 그에 따라 생태계 서비스도 사라질 것이다. 호주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1990년대 이래 야생벌 종의 약 25%가 감소하였다. 인류는 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벌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벌들의 자체 방어체계가 작동되지 못하는 인간이 일으킨 환경 요인들이다. 이런 환경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당장 실천해야 하는 몇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 맹독성 살충제의 사용을 통제∙금지하고, 천적을 이용한 생물 농약 같은 대체 수단을 개발∙사용하는 등 환경 친화적 농업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둘째, 단일재배 경작의 폐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지역에 단일 작물을 지속적으로 식재할 경우, 수분 매개 동물에게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셋째, 파괴된 서식지의 복원과 광범위한 재-개화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한다. 어느 경우든 생태계를 보전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수확량 감소를 보상하기 위한 적절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정원에 벌들이 좋아하는 꽃을 심거나 살충제 사용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류는 인류 종의 생존뿐만 아니라 지구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벌들의 존재 의미를 재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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