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랄한 비평의 말로 그린 우리 미술의 궤적
상태바
신랄한 비평의 말로 그린 우리 미술의 궤적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12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 | 오윤정·권행가·최재혁·신정훈·이영욱 외 4명 지음 | 메디치미디어 | 736쪽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조선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미술’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을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미술 작가나 작품, 사조나 양식, 미술의 시대적 과제 등을 논한 비평문을 모아 그것으로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들여다보려는 비평문 모음집이다. 

조선에도 미술 활동과 미술가가 있었지만 ‘미술’이라는 말은 없었다. 1881년, 일본 조사시찰단의 일원이었던 이헌영이 일본의 미술단체 ‘관고미술회’를 언급한 것이 ‘미술’이라는 말의 시초다. 이후 미술은 부국을 꿈꾸는 조선의 산업전략으로, 서구의 근대적 시선을 내면화하는 시각장치로, 식민지배를 강고하게 만드는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억압에서 해방된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투쟁수단 등으로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혹은 이런 것들과 대결하며 예술로서의 자의식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와 ‘순수’, 서양화와 동양화, 추상과 구상 등이 각각 이 땅에서 어떤 미술이 가능한지를 두고 서로 겨루었다. 이 책은 그 진지한 격돌을 당대 미술비평의 말들을 통해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 19세기 말 서구의 ‘모던 아트’가 들어온 이래 1990년대까지 약 100년간의 미술 비평문 중 138편을 선별해 편집했다. 신문기사나 선언문, 광고 등 일부 성격이 다른 텍스트들이 섞여 있지만, 선별된 글의 대부분은 비평문이다.

비평문은 해당 시기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근거다. 비평문은 각각의 시대에 비평가(미술계)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질문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려 했는지 등 미술활동/작가/작품을 둘러싼 사유와 지향점, 그에 대한 입장의 차이 등을 담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미술계 정황을 깊이 있게 알려줄 뿐 아니라, 같은 시기의 서로 다른 입장들이나 이전 이후 시기의 견해들과 비교하여 미술을 둘러싼 담론의 맥락과 계열, 연속과 변화를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 또 통상적인 미술사 서술과 달리 비평가들의 생생한 육성은 마치 당시의 미술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생동감과 즐거움을 준다. 또한 해당 비평글이 전하고자 하는 논리만이 아니라 거기 담긴 개인의 구체성(문체 등)은 당사자들이 의식한 사안 못지않게 의식하지 못한 시대상황의 기미들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독자의 해석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편저자들은 우선 개항 이후 ‘미술’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의 시간대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총 8개 장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장마다 해당 시기를 특징짓는 4-6개의 소주제를 채택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평문을 선별해 실었다. 각 장의 서두에는 해당 시기를 개괄하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시대 개괄을 통해 비평문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해당 시기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미술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소주제 채택의 근거를 밝혔다. 또 선택된 글(비평문 원문)마다 글의 요지와 집필 맥락을 알려주는 간단한 해제를 달아, 해당 비평문이 쓰인 맥락과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이해가 힘든 용어나 알기 어려운 사건들의 경우 각주 등을 만들어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으며, 각 비평문이나 해당 시기의 미술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72편의 도판을 골라 실었다.

‘현대 한국미술’이라는 틀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바라보는 것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그동안 관성적으로 해방을 전후해 근/현대미술을 나누던 관행에서 생긴 난관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질적으로 단절이 크지 않은 시기들을 강력한 구분선으로 나눔으로써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기준을 제시하기 힘들었던 어려움이나, 시간이 흘러 계속해서 새로운 사회·문화적 전환이 생겨나 이러한 근/현대 구분이 포괄해야 할 시간대가 늘어나는 문제 등이 그렇다.

또한 ‘현대 한국미술’이라는 틀은 그동안 ‘한국’이라는 공간 규정을 앞세워 이곳 미술의 변화를 지나치게 ‘내적 발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제점에서 벗어나게 한다. 확실히 ‘현대 한국미술’이라는 용법은 지난 시기 한국미술의 흐름을 지역 간의 상호 영향 관계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현대’라는 지평 안에서 살펴보기에 유리하다. 그런가 하면 100여 년간의 시대 상황을 현대라는 단일 규정으로 묶어냄으로써 현재와 과거의 미술을 연속성 속에서 심도 있게 살펴보는 일에도 적합하다. 이를 통해 그간 미술 작가들이 이루어낸 성취를 좀 더 입체적으로 심도 있게 살펴보거나, 혹은 굴절된 인식으로 부당하게 잊혀진 작가를 새로이 주목하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