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온 조선왕들의 애책문과 시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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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나온 조선왕들의 애책문과 시책문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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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들의 애책문과 시책문, 세상 밖으로 나오다 (상/하) | 이남철·배용구 지음 | 공감의힘 | 각 624, 656쪽

 

애책문哀冊文이란, 왕이나 왕비·대비·세자·세자빈의 상례에 고인의 성덕을 기리고, 그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으로 지은 책문으로. 국장도감에서 준비했다. 문사가 뛰어난 문관을 애책제술관으로 선임하여 짓도록 하고, 그 내용을 서사관이 정서한 후 이를 죽책竹冊에 새겨 마련했다. 애책문은 견전遣奠을 올릴 때 독애책관이 봉독하였으며, 발인 시에는 함에 봉안하고 애책요여로 산릉까지 옮겼다.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을 현궁에 안치시킬 때, 영의정이 지문, 증옥, 증백과 함께 애책을 현궁 안에 안치하였다. 이후 혹 천릉할 때에는 애책문을 다시 저술하지 않고, 애책문 말미에 천릉 사실을 기록했다.

시책문諡冊文은 왕이나 왕비의 시호(제왕·경상·유현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칭송하여 임금이 추증하던 이름)를 올릴 때, 그가 살았을 때의 덕행을 칭송하여 지은 글을 말한다.

행장行狀은 한문 문체의 하나이다. 행장은 죽은 사람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아니면 그 아들이 죽은 사람의 정보를 서술하여 사관史官들이 역사를 편찬하는 사료 또는 죽은 사람의 명문銘文·만장·비지·전기 등을 제작하는 데에 자료로 제공하려는 것이다.

행장은 연보라고도 한다. 행장이 언제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는가는 불분명하다. 오늘날 전하는 행장 중 가장 연대가 앞선 것은 1265년(원종 6년)에 작성된 민적의 행장이다. 행장은 시호·비명·묘지명 작성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고려에서 시호를 내리는 일을 관장하던 전의시가 목종대에 그 기능과 직제가 정립된 것으로 보아, 행장은 늦어도 목종대 이전부터 작성되었다고 추측된다. 이후 행장은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계승되었고, 유학의 발전 및 유교 문화의 융성과 함께 보편화되었다.

행장의 내용은 작성시대와 작성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현존하는 고려·조선 시대의 행장을 보면 대개 행장인의 관직, 성명, 본관·가계, 출생년, 성장·수학 과정, 출사로·역관·행적·공적, 졸년, 장지, 부인·부인가계, 성품, 자손, 행장 작성자의 순서로 구성되었다. 행장은 위로는 왕·대신·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벼슬하지 않은 유학에 이르는 인물 모두가 작성의 대상이 되었다.

행장의 작성자는 행장인의 기호·지위·학행·재행 등과 관련되어 다소 차이가 있었다. 행장인 자신이 평소에 행장을 지어두었다가 자손에게 전하는가 하면, 왕명에 따라 문장에 능한 관인이 작성하거나, 행장인의 자손의 청탁에 따라 친구나 문인 또는 자손들이 작성하기도 했다. 이중 조선 후기에 들어 종2품 이하 관인 및 유학에 있어서는 문집의 간행이 성행하고, 그 문집에는 문집의 주인공과 그 후손의 연보나 행장을 수록하게 했는데 대개 교우 또는 문인이 행장을 작성했다.

행장은 한 가문의 행적을 기술한 가장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의 졸기, 비명·묘지·묘갈명·연보 등을 작성하는 데 기초가 되었고, 증시의 대상이 되는 관인·공신의 경우에는 시호 상정의 토대가 되었다. 행장은 해당 인물에 관한 가계·출사로·역관·치적·공적·교우 관계 등이 기록된 일대기이므로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행적을 연구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 행장은 비명·묘지·묘갈명과 같이 그 작성자가 행장인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거나 자손 등이 되기 때문에 공이 주가 되고 허물은 제외되기 쉬우므로 이것의 이용과 해석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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