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가를 평가하라 2: 3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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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를 평가하라 2: 3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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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변기용의 ‘우문현답’ -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10일 확정 발표한 ‘2021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기본계획’의 골자는 먼저 교육여건과 성과 등 주요 정량 지표를 활용하여 재정 지원 제한대학을 추려낸 뒤 이들에 대해서는 아예 3주기 진단 참여 자체를 배제하고, 나머지 대학 중에서 진단 평가를 통해 일반재정지원 대학을 선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본계획에서 구체적 비율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대체로 2주기와 같이 60% 내외를 선정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부의 발표를 접하는 순간 필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계획에 따라 일반재정대학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2주기와 마찬가지로 단기간 동안 군사작전 하듯이 많은 대학을 평가해야 되는데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할까 라는 의문과, 정량지표 위주의 일차적 선별 과정을 통해 재정 지원이 원천적으로 배제될 재정지원 제한 대학과 미선정 대학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점이었다.

먼저 필자가 보기에 단기간 동안 수많은 대학을 평가해야 하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의 성격상 일반 재정지원 대학 선정을 위한 평가가 타당성 있게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체 대학의 60% 내외를 정량지표 위주의 형식적 평가를 통해 선정하는 상황에서 소위 SKY 대학이나 지역 거점 국립대학들을 탈락시키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능하고, ‘평가 기술적’으로 타당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모든 대학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정부의 제한된 평가 자원을 ‘일반 재정지원 대학’ 선정보다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통해 살려야 하는 한계 선상에 있는 대학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기본적으로 정량지표 위주의 평가가 되는 한, 경계선상에 있는 몇 개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혜 대학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견해를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요 정량지표를 통해 1차적으로 걸러내는 대상을 여건이 특히 열악한 재정지원 제한대학 뿐만 아니라, 최상위권에 가까운 30~40%까지를 먼저 걸러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평가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지원에 대한 평가는 ‘자율역량’이 성숙한 상위권 대학일수록 느슨하게, 미성숙한 대학일수록 타이트하게 수행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진단 평가를 통과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위권 대학은 평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량 지표 위주로 선정하고, 이를 통해 비축 가능한 평가 자원을 20~30%의 경계 선상에 있는 대학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경계 선상에 있는 대학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형식적인 집체 평가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 방문을 포함한 심층적 평가를 통해 정부의 공적 자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정말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눈, 코, 입을 따로 평가하는 영역별 분리 평가가 아니라, 기관의 전체 역량을 총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1, 2주기 평가를 통해 보아 왔던 개별 대학의 역량과 자구 노력 실적을 파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형식적이고, 분절적 평가 방식으로는 외형적인 정원 규모 감축은 일부 가능할지 몰라도, 위기에 처한 현재 우리 대학에 정말 필요한 체질 개선을 이루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중장기적 발전 비전과 관련 없는 단순한 평가 대비용 지표 관리, 대학의 체질 개선보다는 외관만 번지르르한 윤색된 보고서 작성에 모든 교직원 올 인하기, 그리고 형식적 평가체제 하에서 체질 개선보다는 요행을 바라는 대학들과 이들을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컨설팅 회사들이 물 만난 듯이 활개 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또 하나 문제는 교육부의 기본계획에는 일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하위권 대학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 닫는다는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따라 오지 못하는 대학들은 퇴출시키면 그 뿐인 것일까? 사실 필자가 볼 때도 회생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극히 제한된 부실·한계 사립대학의 경우 퇴출 경로를 법령상으로 명확히 제시하고 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퇴출을 유도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중하위권에 속하는 대학들이 자구노력을 통해 생존을 위한 타당한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 ‘퇴출을 전제로 한 밀어붙이기 정책’ 보다는 밀착 평가와 모니터링을 통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여건이 좋지 않은 대학들도 이들이 폐쇄될 때 지역 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정부가 퇴출과 재정지원 제한 등 페널티 부여뿐만이 아니라 자구 노력 활성화를 위한 비전과 활로를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학이 스스로 노력을 할 수 있는 계기라도 형성될 수 있을 것 아닌가? 정부가 별다른 대책 없이 무작정 퇴출 정책만을 고수할 경우 조만간 대학이되 대학이 아닌 대학인 소위 ‘좀비대학’이 여기 저기 나타날 것이다.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역 신문사들이 그래 왔듯이 인센티브 구조상 아무리 어려워도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을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날이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부실대학을 쉽게 퇴출시킬 수 있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닥쳐올 것이 눈에 보이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알면서도 모두가 모른 체 하는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 정부가 이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타당성 있는 비전을 하루 바삐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부실대학 양산에 따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학생과 지역사회에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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