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의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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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국경
  • 오원환 국립군산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교수. 
  • 승인 2023.02.1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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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지난해 말 민주노총 간부의 간첩 활동 혐의가 불거졌고, 올 초 민주노총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일부 언론을 필두로 간첩 수사 관련 소식이 간첩단으로 확대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공안정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런 사건은 반공교육을 받아온 세대의 감성 구조 속에 자리한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면서,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북한이주민에 대한 경계심을 키울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북한이주민은 약 3만여 명이 있고, 이 중 일부는 탈남 후 영국과 캐나다 등에 거주하고 있다. 북한이주민이 탈남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배제이다. 언론에서 간첩 관련 보도가 나올 때면 간첩 사건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여론몰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이주민을 우리와 다른 집단으로 내몰곤 한다. 또 특별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언론은 관습적으로 북한이주민을 우리와 다른 타자로 재현해왔다.

수용자는 현실에서보다는 미디어를 통해서 북한이주민을 만나고, 미디어에 구축된 담론적 시각을 통해서 탈북민을 바라보기 쉽다. 특히 방송의 여타 장르들보다도 TV 뉴스는 북한이주민에 대한 인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TV 뉴스는 ‘실제’라는 증거적 기능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TV 뉴스 못지않게 실제적 기능을 발휘하는 다큐멘터리와 비교할 때, 뉴스는 짧은 시간 안에 ‘선택적 생략’에 의한 단순화된 형식과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관습적 반복에 의한 타자성 구축이 다큐멘터리보다 강력하다. TV 뉴스의 어깨걸이 화면이나 배경 이미지에서 표제나 탈북민의 이미지 재현은 그런 선택적 생략에 의한 전형적인 구성물이다. 

북한이주민 관련 TV 뉴스의 어깨걸이 화면 구성은 ‘탈북자’처럼 보이게 하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문화 공동체 내에 탈북민에 대한 특정 의미를 구축해왔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지상파 방송의 간판 뉴스프로그램에 활용된 북한이주민 관련 보도의 어깨걸이 화면을 분석하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탈북민의 신체 이미지는 주로 뒷모습의 남성이고, 검은색 그래픽으로 표현됐으며, 배경에는 적색으로 표시된 북한 지도나 인공기가 있었다. 즉 북한이주민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많음에도 불구하고 탈북민을 적색 국가의 남성으로 재현했고, 한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이고 몰개성화된 집단으로 대상화하면서 은밀한 존재로 타자화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부터 변화가 감지된다. 어깨걸이 화면이 배경 전체 이미지로 확대되면서 북한이주민의 신체 이미지는 뒷모습이 아닌 정면으로, 검은색 그래픽 이미지가 아닌 특정 개개인의 모습으로, 범죄 사건의 용의자나 피해자의 경우는 여타 일반 뉴스와 마찬가지로 모자이크나 블러(blur) 효과를 통해서 표현됐다. 적색 국가 출신을 상징하는 기호들은 많이 사라졌고 사회적 약자라는 담론적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간 한국 사회의 북한이주민은 ‘민족 내부의 적대적이고 가난한 타자’로 재현돼왔고, 남한 주민의 마음속 우호적 경계 밖에 머물러 있었다. 북한이주민에 대한 언론의 타자화 양상이 일부 변해왔지만, 간첩 사건 관련 보도는 그러한 변화를 지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안보담론과 적대적 상황 인식이 득세하는 시국에서 ‘먼저 온 미래’로 불리는 북한이주민에 대한 우리 마음속 국경이 다시금 견고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오원환 국립군산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교수. 

현재 국립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장, 한국언론학회 통일과 다문화 커뮤니케이션 연구회장, 주관성연구 편집이사 등으로 활동.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 학사, 플로리다대학교(Univ. of Florida) 매스컴 석사, 고려대학교에서 <탈북 청년의 정체성 연구>(2011)로 박사학위 취득.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에서의 북한이주민 재현과 정체성에 관한 것이고 그 외 방송영상 콘텐츠의 서사와 영상미학, 담론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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