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곤충들과 어떤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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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곤충들과 어떤 생태주의
  • 김옥성 단국대학교·생태인문학자
  • 승인 2023.02.1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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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에세이]

 

오륙 년 전 남향으로 연구실을 옮긴 뒤부터는 늦가을 햇살 좋은 날이면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다. 무당벌레며 노린재 따위의 벌레들이 창틈으로 기어들어 오는 것이다. 적을 때는 네댓 마리, 많을 때는 여남은 마리까지 들어온다. 이 녀석들은 월동하기 위해 연구실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지켜볼 따름이다. 남향 창 근처에 머무르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아마도 책장 뒷면 틈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3월 무렵 날이 따듯해지면 이 곤충들은 하나둘 잠에서 깨어난다. 가만두면 용케 비밀 통로를 찾아서 나간다. 간혹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녀석이 있으면 따뜻한 날 창을 열고 밖으로 내보내 준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설 즈음 며칠 고향집에 다녀온 것을 빼면 거의 집과 학교를 오가며 겨울을 보냈다. 겨우내 연구실에 나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낸 셈이다. 추운 겨울 방학이라 캠퍼스는 산사(山寺)처럼 적막하다. 이 적막 속에서 나는 이따금 내 연구실 구석구석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을 곤충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물방울무늬 빨간 원피스를 입은 귀여운 꼬마 숙녀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고약한 노린내를 풍기는 건달들은 편안한 잠을 자고 있을까. 봄이 오면 모두들 무사히 깨어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고인 물 밑
해금 속에 꼬물거리는 빨간
실낱 같은 벌레를 들여다보며
머리 위 
등뒤의 
나를 바라보는 어떤 큰 눈을 생각하다가
나는 그만 
그 실낱 같은 빨간 벌레가 되다. 

- 김달진, 「벌레」 전문, 『김달진 시 전집』, 문학동네, 1997(『죽순』, 1979, 봄, 복간호)


다른 생명체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은 나의 오랜 취미 중 하나이다. 김달진(1907~1989) 시인도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졌던 모양이다. 김달진 시인은 「벌레」 외에도 「고독한 동무」, 「산장의 밤」 등에서도 벌레와 교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벌레」에서 시적 화자는 고인 물속에 사는 실지렁이 같은 벌레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자신의 등 뒤에서도 ‘어떤 큰 존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어떤 큰 눈”은 절대자의 상징이다. 그것은 신일 수도, 우주의 섭리일 수도 있다. “어떤 큰 눈”의 경지에서 본다면, 인간도 벌레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우주-자연의 차원에서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와 동등한 형제인 것이다. 

근대 이후 인류는 “벌레”로 표상되는 자연을 타자화하면서 지배하고 착취해왔다. 우리를 굽어보는 “어떤 큰 눈”을 망각하고 우리의 형제인 다른 종들과의 관계를 깨뜨려버렸다. 인류는 스스로가 우주의 주인이자 절대자라는 오만과 착각에 빠져 지구 공동체 시스템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지난겨울의 강추위는 그러한 자멸 행위의 결과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류를 혼란에 빠뜨린 팬데믹 또한 그 결과물이라는 점을 많은 지식인이 인정하였다. “어떤 큰 눈”이 “등뒤”에서 우리에게 매서운 채찍을 휘두른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종말의 시계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이 전환을 시작할 가장 빠른 시기라는 것을 암시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할 때다. 생태주의적인 삶을 회복하는 일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고 지구 공동체를 재건하는 가장 근본적인 길일 것이다. 생태주의적 삶은 매우 다양하다. 지구, 국가, 지역 사회, 가정, 개인 등의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의 생태주의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주의 연구자로서 나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2014년 봄부터 주말 농사를 시작하였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신비한 밭에 서서』 등과 같은 서적들을 탐독하며 자연 재배를 공부하고 실천에 옮겼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의무적으로 땅을 일구고 작물을 가꾸며 주말 농부의 삶을 살았다. 첫 두 해에는 가족들이 먹을 채소 일부를 간신히 충당했지만, 3년 차부터는 이웃과 나눌 수도 있었다. 

내게 주말 농부의 삶은 단순히 채소의 자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갖가지 생명체와 조우하고 교감하는 즐거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하여 흙을 살려내면서 내가 지구의 회복에 일조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자연의 일부이며 형제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준 생태주의의 핵심 중 하나가 자본주의 비판이다. 그가 ‘월든’에서 실험한 삶은 자본주의 바깥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거주하면서 생태주의적 삶을 영위하기는 쉽지 않다. 둘은 양립하기 어렵다.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경쟁……. 온갖 과잉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못된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운 현대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주말 하루 이틀을 농사에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말 농부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가해오는 압력과 8년 동안의 정신적인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걸어가는 생태주의적 삶의 길은 힘겹고 험난하다. 

 

김옥성 단국대학교·생태인문학자

서울대 종교학과와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단국대 국문과 현대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6년 대학문학상 시부분, 1997년 대학문학상 평론부문을 수상했으며, 2013년 김준오 시학상을 받았다. 주요 학술서로 『한국 현대시와 불교 생태학』, 『한국 현대시와 종교 생태학』 , 『현대시의 신비주의와 종교적 미학』,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불교적 시학』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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