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신천지, 그리고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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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신천지, 그리고 한국 사회
  • 김찬주 이화여대·물리학과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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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일상의 삶이 보장받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3월 한 달은 이미 정상적인 학사 일정을 포기한 상태다. 비상 상황에 놓이고 나니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졌던 평범한 순간들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곤 한다.

약간의 논란은 있지만, 처음 얼마간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처는 꽤 효과적이었다. WHO에서도 한국에 역학조사 자료를 요청하는 등 국제적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소위 31번 확진자의 출현과 함께 불과 며칠 사이에 우리나라는 감염자 수에서 중국에 이어 단연 2위로 뛰어올랐다. 이런 놀라운 반전은 신천지라는 신흥종교와 관계가 깊다. 확진자의 절대다수가 신천지 교인이거나 이들에게서 감염되었다. 바이러스가 종교를 따라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신천지가 코로나19 확산의 절대적 진원지 역할을 하는 것은 우연이거나 이번만의 특수한 현상일까?

무엇보다도 신천지의 예배방식은 코로나19와 같은 비말감염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옆 사람과 닿을 정도로 밀집하여 장시간 바닥에서 예배를 보는데 도중에 몸을 움직이고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기도와 노래를 한다. 수많은 비말이 주변에 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딱히 이번 코로나19에만 신천지 교인들의 감염률이 높은 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물론 이건 신천지뿐 아니라 비슷한 방식의 회합을 하는 집단에 모두 적용된다. 다만 신천지 같은 비밀스런 종교집단은 전염병이 돌더라도 모임을 중지하지 않고 이어갈 것이므로 더욱 더 치명적일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10년 전 발병했던 신종플루는 국내에서 약 76만 명이 감염되었다. 이중에 신천지 교인이 있었을까? 간단한 수학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10년 전 신천지 교인 수는 약 7만 명이고 우리나라 인구는 대강 5천만 명이다. 따라서 신천지 신도가 한 명도 감염되지 않았을 확률은 (4993/5000)76만=10-463으로 사실상 0이다. 즉, 신천지 교인이 적어도 한 명은 감염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이, 일단 한 명의 신천지 교인이 감염되면 다른 신천지 교인에게 퍼지는 것은 거의 순식간이다. 길어도 1,2주 만에 수천 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지금은 감염 경로를 일일이 추적하여 코로나19 감염자의 절대다수가 신천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 신천지 교인을 격리하는 것은 당연히 상상 밖의 일이고, 그들은 평상시처럼 매주 예배를 보고 다른 교회에도 잠입했을 것이다. 신종플루 감염자 76만명을 지금 다시 추적하면 그중에 최소 몇만 명은 신천지 교인일 것이다. 물론 이건 신천지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위에서 말한 특성이 있는 집단은 모두 마찬가지다.

2015년에 발병하여 186명의 감염자를 낸, 치사율 20%의 MERS는 어떨까. 이때 신천지 교인은 16만 명 남짓이므로 감염자 중에 신천지 교인이 없을 확률은 (4984/5000)186=0.55 정도다. 따라서 2015년에 MERS가 신천지로 전파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MERS는 중동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신천지와 거리가 있다는 점이 매우 다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주요 감염지였던 병원에서 신천지 교도가 감염되기라도 했었다면 순식간에 신천지 전체로 퍼져 수천 명이 사망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31번째 환자가 신천지 교인이었는데 이건 운이 얼마나 나쁜 것이었을까. 현재 신천지 교인은 24만 정도이므로, 31명의 감염자 중에 신천지 교인이 하나도 없을 확률은 (4976/5000)31=0.86이다. 즉, 이번 경우는 14%라는 작은 확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운이 나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 지구적 대유행의 추세라면 감염자가 100명, 200명으로 느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국 신천지 교인 중에 감염자가 나왔을 것이고, 지금처럼 신천지에서 수천 명의 감염자를 내는 것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몇달 간의 시간을 벌었겠고, 매우 작은 확률로는 신천지까지 퍼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유례없는 급격한 확산은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신천지와 같은 밀교 성격의 신흥 종교가 지금과 같이 성장하게 된 구조적 문제 말이다. 오늘 우리가 코로나19로 겪는 어려움은 우리 사회의 이런 취약함이 바이러스에 의해 증폭되어 나타난, 어쩌면 필연적인 사건이다. 앞으로 다른 전염병이 발생해도,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잘 대비해도, 우리는 지금과 똑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김찬주 이화여대·물리학과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입자물리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한국물리학회의 백천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현대물리학과 인간사고의 변혁’ 강의는 2012년에 SBS, 한국교육개발원, 대교협이 공동 기획한 ‘대학 100대 좋은 강의’에 선정되었다. 같은 이름으로 2015년부터 K-MOOC 온라인 강의를 개설하고 있으며, 이 강의는 2015년과 2018년에 전체 K-MOOC 강의 중 학습자 만족도 1위로 선정되었다. 저서로 「어느 물리학자의 세상 보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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