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외피를 벗겨내고 ‘반독서’로서의 신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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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외피를 벗겨내고 ‘반독서’로서의 신화 읽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04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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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삼국유사: 우리 민족의 신화적 원형을 찾아서 | 김정란 지음 | 한길사 | 472쪽

 

일연의 『삼국유사』는 우리 겨레의 대표고전으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하지 않았다면 책명의 ‘유사’가 ‘遺史’가 아니라 ‘遺事’라는 사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일연은 자신이 저술한 역사를 그저 ‘남겨진 일 또는 이야기’ 정도로 겸손하게 이름 지었다. 하지만 그 명칭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왕명으로 편찬되어 정사(正史)의 지위를 갖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가 유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어 이른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관한 비합리적인 이야기들을 배제했다면, 『삼국유사』는 불교적 관점에서 오히려 민간전승의 기사, 신화, 전설, 시가 따위를 풍부히 담고 있다. 일연은 평생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며 선조들의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들을 수집했고, 그것을 하나의 역사로 품어 안았던 것이다.

이 책은 『삼국유사』의 이런 풍부한 ‘이야기성’에 주목하며 세계 신화의 맥락 위에서 우리 신화의 원형에 새롭게 접근해보고자 한 연구다. 『삼국유사』에 담긴 수많은 설화는 역사이자 상상 속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신화다. 물론 『삼국유사』에서 읽어내려 한 것은 ‘역사’보다는 ‘신화’다.

따라서 저자는 역사 이전에 신화 및 설화가 형성된 바탕을 탐색한다. 이야기들에 덧붙여져 있는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역사적 외피를 최대한 벗겨내고 그 신화적 원형에 다가간다. 이야기의 전체 스토리나 구조를 따라가는 대신 의미 있어 보이는 신화의 최소단위에 주목한다. 이런 저술 태도로서 저자는 이른바 ‘반독서’(contre-lecture)를 지향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읽기, 이미 형성된 어떤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읽기, 그런 해체적 읽기를 저자는 ‘꿈’의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무의식 깊이 가라앉아 있는 숨겨진 ‘열망’의 이름으로 수행한다. 책 제목이 ‘꿈꾸는 삼국유사’인 이유다.

이 책은 『삼국유사』의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대표적인 설화들을 세 가지 주제 아래 묶었다. 첫째 ‘위대한 어머니들’에서는 곰 설화, 유화부인 설화, 수로부인 설화, 알영 설화를, 둘째 ‘신성함의 현현’에서는 처용 설화, 서동 설화, 만파식적 설화, 도화녀와 비형랑 설화를, 셋째 ‘길 위의 성인’에서는 신라불교 십성(十聖) 가운데 두 인물인 사복과 원효 설화다. 『삼국유사』에서 절반 가까운 비중(138조목 가운데 59조목)을 차지하는 기이(紀異) 편에 수록된 설화들이 대부분이다. 기이는 ‘기이’(奇異)한 일들을 기록해놓은 편목이 아니라 사서(史書)의 본기(本紀)로서 신비한 사건들을 채택하고 있는 편목이다.

일연이 살았던 때는 수십 차례 몽골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고통 받았던 시대다. 그런 절망의 시대에 일연은 이야기로나마 사람들에게 꿈을 고취하려고 했다. 선조들의 신이한 사적들을 전함으로써 바닥에 떨어진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려 했다. 현실적인 역사가 아니라 이상화된 역사, 선조들의 성스러움을 확인시켜주는 신화로서의 역사, 그리고 종국에는 구원의 방편으로서 불교를 제시한다.

신화학자로서 저자는 잘 알고 있다. 어떠한 독법으로도 신화는 완전히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화는 모든 방식의 읽기에 버텨내는 매우 특이한 담론이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 읽어도 신화에는 해석에 저항하는, 읽히지 않는 빈틈이 남는다. 신화 해석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모든 신화가 똑같이 가지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고 말한다. “신화가 인간 운명과의 싸움의 형식”이라는 것. 유일하게 인간만이 존재와 죽음의 의미를 묻기에 그렇다. 옛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지, 누구로서 존재하는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알지 못한다. 이 지독히 본질적인,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어둠] 앞에 인간은 어떤 상징[신화]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인간은 상징이라는 엑스칼리버를 거대한 우주의 어둠을 향해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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