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어떻게 미술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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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어떻게 미술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을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2.0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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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미술 산책: 모방에서 시작해 예술 선진국이 되기까지, 프랑스 미술사 500년 |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390쪽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가 피어났던 그곳, 피카소 같은 세계적 화가들이 모여들었던 나라 프랑스. 예술의, 예술가의 나라 프랑스는 세계 예술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우리는 왜, 어떻게 프랑스가 이러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이 책은 권력의 투쟁과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나폴레옹 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프랑스 예술이 발전해온 과정을 프랑스 역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주체적 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 지금, 우리의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는가를 이 책을 통해 되새김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해, 렘브란트, 루벤스, 밀레, 고흐 등은 수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그들의 드로잉 중에는 자연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승 혹은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한 것들이 많다. 고흐는 밀레의 작품들을 모방했고,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다. 모방과 모사와는 거리가 먼 듯한 대가들이 다른 이들의 작품들을 그려낸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 이면에는 대가의 작품을 모방하고, 예술의 기본기술을 터득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 화가들의 고충이 담겨 있다. 모방 속에서 완성된 창조적 예술세계는 프랑스가 세계 미술의 메카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과 벨라스케스, 무리요 등 스페인 대가들의 작품들을 제시하고, 이들의 작품을 옮겨 담았던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보여준다. 〈풀밭 위의 점심〉으로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네, 인상주의의 대가 모네, 사실주의의 선두주자 쿠르베 등 내로라하는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또 다른 명화를 발견할 수 있다. “모방할 수 있는 자는 창조할 수 있다”라는 다 빈치의 말처럼 프랑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대가들과 스페인 화가들을 모방해오면서 19세기경부터 시작된 활발한 미술운동의 발판으로 삼았고, 지금까지도 세계예술의 지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유럽의 강대국이자 문화 강대국으로 알려진 프랑스는 11세기 이전만 해도 서유럽의 일개 소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14세기 경 프랑수아 1세가 왕위를 이어면서 서서히 국력을 구축해가기 시작한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 즉 강력한 왕권과 국력을 갖춘 절대왕정기부터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등장한 나폴레옹은 세계 제패라는 네 글자를 전 유럽에 수놓았다. 이렇게 강력해진 프랑스는 무력뿐 아니라 문화적 침략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가 설립되면서 전 유럽에 프랑스 미술을 전파하는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세계 각지의 명화들을 약탈하였다. 특히 나폴레옹 시대에는 전 세계적인 예술품 약탈이 이루어졌으며, 나폴레옹은 특히 스페인 대가들의 작품들에 집착했다. 루이 14세의 권력과 나폴레옹의 세계 제패의 야심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걸작 〈모나리자〉를 비롯해 루벤스, 무리요, 벨라스케스 등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들을 약탈해 프랑스 최대의 국립 루브르 뮤지엄의 기반을 삼았다. 정치와 권력 다툼 속에서 루브르에 걸리게 된 약 30만 점에 달하는 소장 작품들은 프랑스를 뛰어난 예술가들의 요람으로 만들고 있다.

“모방의 미술사를 통해서 드러난 것은 화가의 길을 걷기로 한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과거 성공한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하며, 그런 기회를 루브르 뮤지엄에서 주로 활용하면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가운데 그들의 독특한 양식을 익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는데, 주어진 혹은 루브르에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궁정 취향을 따르게 되었다. 화가들이 이탈리아, 독일,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직접 여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궁정 취향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이런 것이 일반적으로 가능해진 19세기 초부터 프랑스 미술은 프랑스인의 취향에 근거하는 독자적인 특색을 띠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방이 수련의 한 과정으로 존속될 수밖에 없었던 이래 모방의 미술사는 중단될 수 없었다. 모방은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발견하기 위한 참조의 성격이 짙다. 모방과 창조의 차이는 모방을 통해서 재창조가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피카소가 고야를 참조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예가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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