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운이 무엇이고,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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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운이 무엇이고,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걸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2.0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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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란 무엇인가: 행운과 불운에 관한 오류와 진실 | 스티븐 D. 헤일스 지음 |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348쪽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고 늘 무탈하며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그러한 바람과 욕망,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때 한결같이 동반되는 것이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굳건한 의지에 더해지는 성공 요소, 그것은 바로 ‘운’이다. 어떤 일에서든 운이 따라야만 한다는 믿음이다. 이토록 모든 일과 상황에 깊이 관여된 운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이해되고 있을까?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에게 운은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으며, 광범위한 영역에서 제기되는 운의 문제를 어떤 이론과 논리로 접근했을까? 운을 합리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운과 그 의미를 둘러싼 논란에 이의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 없이 편향적으로 받아들인 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는 이미 운을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운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우리의 에너지를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점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있던 먼지 쌓인 묵은 개념을 머릿속에서 씻어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며, 운을 놓아버리면 세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그동안 신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을 통해 운을 이해하고자 다채로운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플라톤 시대의 신화적 이야기부터 현대의 이론가까지 운의 역사를 일관하고, 운을 설명하고 그 역할을 밝히기 위한 이론과 논리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이 책은 첫 출발점으로 운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에르의 이야기부터 티케(그리스 신화)와 포르투나(로마 신화)를 통해 고대인들이 운과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운에 대해 순종하거나, 반항하거나, 부정했다. 운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포르투나를 달래거나, 불운을 남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행운을 차지하려 애썼다. 흔히 운은 대체 가능한 것, 이용하거나 다시 채울 수 있는 신비로운 자연력으로 여겨졌다. 한편 스토아학파는 외부 세계가 우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함으로써 포르투나의 위력을 무시하려 했다. 이들은 변덕스러운 우연에 당하지 않으려면 정념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운을 부정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운명의 신이 인간의 운명을 정해놓았으므로 우리 인생에서 운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처럼 고대인들이 믿은 운명의 여신, 중세의 제비뽑기, 갈릴레오의 도박 연구, 운의 정복자를 자처한 18세기 수학자들의 기록 등은 우리 삶에서 운과 운명, 선택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수학자들은 확률 이론으로 운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연은 신의 변덕이 아니라 수학 법칙에 좌우되므로, 운 또한 예측 가능한 법칙과 같다는 걸 증명하려 한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에 운과 실력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운과 실력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근세의 학자들은 수학이라는 살상 무기로 운을 정복하고 없애버리기 위해 확률 이론을 개발했지만 비선형적 상호작용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서 궁극적 예측은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확률이 낮은 일에서 성공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나 뒷면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처럼 무작위성이 드러나면 운과 실력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고득점 행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농구선수는 비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서 평소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확률 이론으로 운을 설명할 때 불거지는 문제로 준거 집합, 통계적 잡음, 규범적 요소 등이 있다.

가능성, 확률, 통계와 같은 것들은 기술적인 도구일 뿐 가치나 공적, 상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운에 관한 또 하나의 설명 방식인 양상 이론에서는 유의미하고 양상적으로 취약한 사건이 운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된다. 까딱하면 잘못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수월하게 잘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나쁜 것이다. 의미 없거나 양상적으로 견고한 사건은 운과 무관하다. 현실 세계에서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났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칭기즈 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오고타이 칸이 죽지 않았다면 수부타이의 몽골 전사들이 유럽 대륙을 짓밟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오늘날과 같은 유럽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양은 ‘순전히 운’으로 살아남은 것일까? 이것은 양상 이론은 가능 세계들 간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측정하여 취약함과 견고함을 파악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세계 간의 거리를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며 행운의 필연적 진리 같은 사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세 번째 접근법인 통제 이론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을 운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직관적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2012년 윔블던 대회에서 승산이 낮았던 루카스 로솔이 챔피언 라파엘 나달을 상대로 승리했다. 당시 로솔은 최고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자신의 경기력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왜 그의 승리는 행운처럼 보일까? 이처럼 통제력의 실체는 모호하며 통제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신뢰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통시적 관점으로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의 일부로서 행운(혹은 불운)이라 판단되는 사건도 공시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을 초월해 다른 사건들과는 무관해지고, 따라서 운과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윤리와 인식론의 많은 난제는 결과적 운과 태생적 운으로 설명된다. 우리 행동의 결과에 운이 끼어든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얼마나 칭찬받거나 비난받아야 할까? 우리 삶의 행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범위, 도덕적 특권의 개념 등이 행운과 불운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도덕적 운의 심리적 원리를 설명해주는 방법으로 ‘사후 확신 편향’이 있으며, 사회적 운과 특권의 문제도 운 이론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켜준다. 운은 지식 분야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프레이밍 효과와 개인의 성향(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또한 운에 대한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복권 번호 여섯 개 중 하나를 못 맞혀서 1등에 당첨되지 못한 경우, 원폭 투하 현장에 두 번이나 머물렀지만 93세까지 장수한 일본인, 40년간 벼락을 일곱 번 맞은 산림감시원은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한 사건을 설명할 때 표현을 교묘하게 바꾸면, 똑같은 사건이 엄청난 행운 또는 끔찍한 불운으로 보인다. 도박에서 큰돈을 따는 것조차 당사자의 관점에 따라 행운으로 간주되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운에 관한 모든 이론은 아직까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운은 인지적 착각이며, 우리의 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에르의 신화에서, 라케시스는 불운한 인생에 대한 책임은 그 삶을 선택한 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운이 얼마나 작용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며, 운은 객관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 상황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즉 주관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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