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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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 잡기
  • 박지상·경북대 물리학과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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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수 단상]

2019년 가을 학기는 매우 정신없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신분이 바뀌면서 요구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에는 공부하고 연구하면 되었고,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대부분의 시간에 연구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영구 귀국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강의와 연구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강의와 관련해서 배운 점이 유난히 많았다. 가르칠 때 배운다는 세네카의 말도 이전보다 크게 느껴졌다.

강의해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학생이었을 때는 몰랐지만, 앞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면 딴짓하는 아이들이 눈에 너무 잘 띄었다. 조금 지나고 나서 보니 교실 맨 뒤에서 자는 학생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수업에 와서 앉아있는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다. 대리 출석하는 학생들이나 출석 부르면 사라지는 아이들, 퀴즈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들을 보면 대학 역시 세상의 축소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길러내는 것이 현 교육 시스템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이 관점에서 보면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학생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깊이 있는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학부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뛰어난 학생들만을 위해 다른 모든 학생의 학업 성취도에 무관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수의 학생 역시 과목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지식을 배우고 가야 하지 않을까?

언뜻 보면 상반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수님마다 다른 해답을 내놓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수업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은 최대한 다 가르치되, 평가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숙제 대신 퀴즈를 많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다른 교수님들로부터 학생들이 다른 학우들의 풀이를 베껴서 제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퀴즈를 보기 전에 어떤 문제를 낼지 알려주었고, 다소 문제를 변형할 수 있다고 공지하였다. 처음에는 단원이 끝날 때마다 퀴즈를 본다고 해서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학생들로부터 별다른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다. 시험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했다. 대학생이라면 자신의 풀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대부분 주관식으로 출제했다. 처음에는 변별력이 없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신기하게도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다양해서 평가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첫 학기가 끝난 후 불현듯 이런 질문이 들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꼭 강의실에서 들어야 할까? 요새 학생들은 인터넷 강의에 익숙하기 때문에 대학교 강의도 녹화된 인터넷 강의로 듣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반문도 들었다. 왜 사람들은 운동을 배울 때 전문가에게 지도를 받을까? 운동 방법에 대한 영상은 인터넷에 널려 있고,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거기다 누가 억지로 시키는 사람도 없다. 개인적으로 찾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람들은 효율적인 학습을 원한다. 한정된 시간에 더 좋은 성과를 내려면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며, 특히 잘못된 점을 바로바로 지적하고 교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등 떠밀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로 강의실에서 수업하고 퀴즈를 많이 보는 것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첫걸음을 떼었으니 앞으로 강의를 하다 보면 개선할 것이 매 학기 보일 것이다. 강의 평가를 통해 학생들로부터 지적도 자주 받을 것이며, 다른 선배 교수님들로부터 배울 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특정한 강의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도구나 방법을 조금씩 시도해보려고 한다. 효과가 있으면 받아들이고 없으면 폐기하다 보면 보다 나은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지상·경북대 물리학과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물리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신재생에너지 연구소, 미국 아르곤 국립 연구소,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현재 경북대 물리학과 조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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