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근대인, 레오나르도 브루니…근대 공화주의의 씨앗인 시민적 휴머니즘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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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근대인, 레오나르도 브루니…근대 공화주의의 씨앗인 시민적 휴머니즘의 선구자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2.04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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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찬가 | 레오나르도 브루니 지음 | 임병철 옮김 | 책세상 | 164쪽

 

르네상스기의 중심에 살았던 피렌체의 휴머니스트 레오나르도 브루니. 그는 중세 이래 이념적으로만 이어져 온 공화주의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실적인 정치이념으로 정립했다. 그는 중세가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적 격변의 시대를 살았으며, 이러한 시대상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얻게 된 교훈이 그를 ‘시민적 휴머니즘’이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선구적 인물이 되게 해주었다.

『피렌체 찬가』는 이 같은 브루니 사상의 일단이 최초로 제시된 저작이다. 이를 통해 단순히 피렌체라는 한 도시에 대한 수사적 찬양을 넘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공화주의 정치이념, 공민적 윤리 의식과 같은 새로운 관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관념의 자생적 발전보다는 그것의 생성과 발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관계에 주목하면서, 르네상스 사회의 역동성과 창조성에 주목하게 된다.

브루니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나아가 능동적으로 정치 체제에 참여하는 자율적인 인간상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서양 공화주의 전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평가로 인해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그의 시민적 휴머니즘과 공화주의 정치이념이 발아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르네상스기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정치와 정치 활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본문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피렌체의 물리적 측면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한다. 렌체의 지정학적 탁월함, 도시의 청결함, 아름답고 장엄한 건축물, 피렌체가 차지하는 비옥한 영토, 풍부한 농산물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장은 물리적 측면에서 도시의 기원으로 주제를 전환한다. 피렌체가 로마 공화정 시대에 로마인들에 의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피렌체인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자유라는 신념을 간직하고 있으며, 황제 또는 전제정에 반대하는 정치이념을 견지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장은 피렌체의 대외 정책을 다루었다.

피렌체가 전 이탈리아 자유의 수호자로서 늘 약자의 편에 서 왔으며, 주변 도시에 관용을 베풀어 로마인의 덕성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마지막 장을 피렌체의 내부 조직과 정체政體를 묘사하는 데 할애한다. 이 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렌체의 정치 구조 또는 내부 조직이 법에 기반한 완전한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피렌체의 모든 정체와 조직이 ‘정의의 구현’이라는 대명제에 따라 결정되고 운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피렌체의 모든 시민은 그 어떤 것에도 침해받지 않는 최대한의 자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브루니의 정치이념으로서의 자유라는 관념이 개념적으로 구성된 최초의 저작이다. 자유와 정의를 피렌체의 모든 정치 체제가 지향하는 행동윤리의 원천으로 다루었다. 엄밀히 보면, 그에게 자유 없는 정의는 있을 수 없고 정의 없는 자유 또한 있을 수 없다. 자유와 정의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며, 자유의 보존이야말로 도시 공동체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 자체다. 이에 따라 피렌체가 자유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시민이 법적으로 평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시민적 이상이라는 관념은 피렌체의 지적 전통 속에서 계승되고 한층 폭넓게 발전했다. 그것이 낳은 자유, 덕성, 공화주의 같은 정치적 관념들이, 자유주의 이념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형태의 서양 근대 정치사상을 발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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