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대청호반 향수 호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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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대청호반 향수 호수길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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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 충북 옥천 향수 호수길

 

         산자락에 잔도처럼 그어진 길이 보인다. 황새터에서 용댕이 쉼터와 주막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옥천은 원래 내륙 속의 내륙이었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중간에 자리하고 금강이 산자락을 갈피갈피 갈지자로 헤집으며 흘렀다. 1980년 12월, 대청댐이 완공되었다. 담수가 시작되자 멱 감고 천렵하던 모래밭과 강변 산자락의 마을들이 물에 잠겼다. 산들은 더러 물 돌아가는 모퉁이가 되었고 더러는 섬이 되었다. 그 강변 산자락을 타고 ‘향수 호수길’이 나있다. 2019년에 만들어졌으니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다. ‘향수’는 옥천 출신 시인인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또 물에 잠긴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향수 호수길’은 마성산(馬城山) 자락에 조성돼 있다. 마성산은 옥천의 진산으로 ‘세상에 전하기를, 지방 사람들이 말의 조상에 제사 지냈으므로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마성산 저편은 옥천 구읍이다. 그곳의 실개천 가에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향수 호수길은 흙길 2㎞, 나무 데크길 3.6㎞, 모두 5.6㎞로 금강변 산허리에 매달려 있다.

‘향수 호수길’은 옥천읍 수북리 마성산 날망마당에서 물비늘 전망대, 황새터, 용댕이 쉼터(황룡암), 안내면 장계리 주막마을까지 금강 변 산허리에 매달려 있다. 흙길 2㎞, 나무 데크길 3.6㎞, 모두 5.6㎞로 ‘옥천 9경’ 중 8경이다. 40여 년간 인적이 뚝 끊긴 덕에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날 것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가 무성하다. 봄이면 산벚과 진달래, 으름덩굴과 댓잎 현호색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꽃향유와 산국과 까실쑥부쟁이가 흐드러진다. 이 길이 포함된 옥천군 대청호 일대 안터지구는 올해 5월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다.  

 

멋진 소나무가 드높은 솔향 쉼터. 대청호가 생기기 이전부터 저기에 서서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몸 기울여 바라보았다.

‘날망마당’에서 출발한다. ‘날망’은 충북 사투리로 ‘마루’를 뜻한다. 도로에서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 마루에 닿으면 낙낙한 마당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흙길이 하강하면서 저 아래 얼어붙은 강을 보여준다. 강은 배들을 붙잡고는 얼어버렸다. 입춘이 지나자마자 이미 봄을 감지한 강물은 얼음장을 탕탕 치며 꿀렁꿀렁 먹먹한 소리를 낸다. 길 가에 푸른 사철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키 작은 단풍나무가 발그레한 어린 가지들을 잔뜩 펼쳐 놓았다. 흙길은 한 뼘만큼 상승하다가 급격하게 쏟아지면서 몇 번이나 산모롱이를 돈다. 강으로 흐르는 오목한 골에는 외딴 집들이 적막하게 앉아 있다. 그러는 동안 얼음 강은 쩍쩍 갈라져 깨어진 접시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물비늘 전망대. 과거 옥천읍에 상수도를 공급하던 취수탑 시설로 1982년 운영이 중단된 것을 전망대로 활용하고 있다. 

금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물비늘 전망대’다. 과거에는 옥천읍에 상수도를 공급하던 취수탑 시설이었다. 1982년 이원정수장이 만들어지면서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2011년 ‘향수 바람길’을 조성하면서 전망대로 다시 태어났다. ‘향수바람길’은 이곳에서 며느리재와 이슬봉을 거쳐 참나무골산을 잇는 약 10km 능선길이다. 향수 호수길보다 먼저 금강을 조망하는 등산로로 유명했다. ‘향수 호수길’은 ‘향수 바람길’을 금강 바로 옆으로 내려놓은 모양새다. 얼어있던 강이 이곳에서 간잔지런한 물결을 만들고 있다. 강 건너는 석탄리 안터마을이다. 어디선가 배 한척이 포말을 일으키며 안터마을로 향한다. 도로가 연결되어 있지만 선착장도 있다. 출렁이는 물가의 얼음 위에 사람들이 보이고 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물비늘 전망대에서 데크길이 시작되며 향수바람길과 향수 호수길로 갈라진다. 
                                  강 건너 옥천읍 오대리. 배로만 들고 날 수 있는 섬 아닌 섬이다. 

물비늘 전망대부터 데크길이 시작된다. 강 너머 산자락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다. 오대리(五垈里)다. 이름이 말해주듯 원래 5개 마을이 있었지만 대청호 건설로 수몰되고 한 개 마을만 남았다. 현재는 10가구도 안된다고 한다. 마을은 옥천읍에 속해 있지만 산 쪽으로는 도로가 없어 배를 타고 들고 나야하는 섬 아닌 섬이다. 강변에 묘비들이 많다. 그 가운데 비각 하나가 선명하다. 옥천육씨를 기리는 효열비각이다. 창녕조씨 집안으로 시집온 그녀는 찢어지는 가난에도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 잘라서 생피를 먹였고,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되어서는 유복자인 아들을 훌륭히 키워 냈다고 전한다. 안터마을로 향했던 배가 오대리 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금강물이 굽이치는 곳은 강한 물살로 얼음이 얼지 않는단다. 오대리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얼음 강이다. 데크길 아래에 고장 난 오대리 선착장이 난파선처럼 얼음에 갇혀 있다. 안터마을과 오대리 앞 금강만이 물결을 만들고 있다. 
 

향수 호수길 곳곳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판을 만난다. ‘다시 해협’을 앞에 두고 너른 골에 ‘우듬지 데크’가 놓여 있다.  

‘산 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뵈네.’(산 너머 저쪽) 길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를 만난다. ‘따순 봄날 이른 아침부터/ 산에서 온 새가 울음 운다.’(산에서 온 새) 다람쥐 쉼터를 지나며 시를 읊어본다. 지나온 먼 곳에 ‘물비늘 전망대가’ 조그맣다. ‘삼월 삼짇날/ 질나라비, 훨, 훨,/ 제비새끼, 훨, 훨’ 고비 군락지를 지난다. 고비는 고사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말이 ‘몽상’이란다. 고비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흘러가는 심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 오랑쥬 껍질 씹는 시름...’(슬픈 인상화) 멋진 소나무가 드높은 ‘솔향 쉼터’를 지난다. 길 곳곳에 그의 시가 있다. 

 

                       운치 넘치는 화장실이다. 향수호수길에는 서너 군데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황새터. 옛날 황새들이 많이 날아들었던 지역이다.

‘외진 곳 지날 제 기적은 무서워서 운다/ 당나귀처럼 처량하구나.’ 정지용의 시 ‘다시 해협’을 앞에 두고 너른 골에 ‘우듬지 데크’가 놓여 있다. 우듬지는 나무 꼭대기를 뜻한다. 데크 높이가 9m로 ‘향수 호수길’에서 가장 높은 다리라 한다. 우듬지 아래 골이 해협처럼 깊다. 이제 숲길이 시작된다. 어떤 새가 비명을 질렀고, 어떤 새는 노래를 불렀으며, 또 어떤 새는 울었다. 목덜미가 붉은 새는 그 귀여운 발로 나무줄기를 꽉 쥐고는 나선형으로 오르며 작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운치가 넘치는 화장실을 지나고 마른 덩굴나무들이 기대 잠든 터널을 지나면 날개를 펼친 하얀 황새가 보인다. ‘황새터’다. 옛날 황새들이 많이 날아들었던 지역이다. 이곳에서 ‘용댕이 쉼터’와 ‘주막마을’로 이어지는 2.3km 길이 이어진다. 산자락에 잔도처럼 그어진 길이 보인다. 이마는 차가웠고 등줄기는 뜨겁다. 황새터 앞 버석거리는 숲을 이리저리 저회하다 돌아선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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