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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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의 약진
  • 박세희 서울대 명예교수·수학과
  • 승인 202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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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나이 70이던 2006년, 일본의 한 유명 사립대학을 방문하던 중 그 학교 교양교육연구센터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 센터의 7인 위원회는 우리 대학의 교육 현황을 세세하게 조사하여, 정년한지 6년차였던 필자보다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필자에게 물어본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교육평가기관의 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 대학 중 50위 또는 100위 안에 들어갈 만큼 약진한 내력을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대답을 좀 더 자세히 적으면 대충 다음과 같다.

혹독한 일본 강점기에 同祖同根과 內鮮一體를 표방하면서도, 일본은 우리에게 대학 설립을 허용하지 않다가 막판에야 처음에는 2개, 뒤에는 3개 학부로 된 경성제국대학이라는 것을 세웠다. 그 규모도 일본의 것은 물론 대만의 것보다 훨씬 작으며, 일본인에 비하여 극히 적은 수의 조선인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인구 비례로 우리의 2배 정도였던 일본에 수많은 대학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자.

광복 직후 분단과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서 우리의 국립종합대학이 처음 생겼는데,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 대학을 표방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명목상 대학 교수 한 사람도 없던 나라에서 많은 인재들이 대학 교육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중 사상적 갈등으로 여러 사람이 월북하고, 다시 1950년부터 3년 2개월간의 한국 전쟁 기간 중 많은 학자들을 잃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중에 인재 보전을 위한 대학 교육이 확대되었다.

한편 2차 대전 후 미국의 대학교육이 급격히 팽창한 덕으로, 50년대에 미국 대학원의 장학금으로 유학하여 박사가 된 이들이 나타났으나, 그 중 돌아온 이는 극소수였다. 그 뒤로도 수많은 이들이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1970년대의 미국의 불경기와 취직난 또는 자발적으로 많은 이들이 귀국하여 단연 우리 학계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이는 일본의 폐쇄성에 대비되는 미국의 개방성의 결과이다.

흔히 20세기의 우리나라 대학교수의 평균수준은 50년대 말에는 학사, 60년대 말에는 석사, 70년대 말에는 과반수가 박사일 정도로 상승해 왔으며, 90년대에는 국제적인 연구를 주도하고 많은 박사를 키워댄 `대교수‘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50년대까지의 관행이던, 교수의 학생 시절의 노트를 받아 적는 강의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의 교과과정과 교과서를 도입하고, 대학원에서 강의, 숙제, 시험을 치고 세미나와 연구를 하게 하는 미국식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유럽 대학에서의 학생 혁명과는 전혀 관련 없이 우리나라만의 자생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80년대에는 일본 학계의 영향은 거의 소멸되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광복 이후의 우리 대학의 졸업생으로 채워졌다. 더구나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져 학회 발표, 자료 수집, 연수 참가 등의 명목으로 국내 교수들의 국제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리하여 우리 학계의 수준 향상과 국제화로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한편, 그 때까지 금기였던 공산권 국가들과의 교류도 시작되었다.

더구나 90년대 이후의 인터넷의 보급으로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되면서 자료수집이 훨씬 용이해지고, 해외 학계와의 교류도 훨씬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또 같은 시기 첨단과학의 창출에서 우리 대학이 세계적인 조류에 편승한 것도 약진의 한 계기가 되었다. 전통과학에서는 비록 후진이었지만, 똑같이 시작한 첨단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밀려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우리 교수들의 이러한 노력이 행복한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30년 이상의 정치적 불안정, 그에 따르는 학원 소요 사태, 70년대 중반까지의 박봉으로 인한 생활고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들이 결집되어 우리나라 대학의 약진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 경제를 일으킨 근로자, 문화를 창출하는 이들, 국제 대회에 출전한 체육인, 그밖에도 국위를 선양해온 수많은 이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 우리나라 대학을 국제수준으로 약진시켜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 한국의 교수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이다.


박세희 서울대 명예교수·수학과

서울대 대학원 수리과학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인디아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수학회 회장, 한국수리과학연구소 소장, 한국과학사학회 이사, 국제수학연맹(I.M.U.) 한국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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