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보다 뒤에 오는 책이 아니라 공연보다 앞서 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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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보다 뒤에 오는 책이 아니라 공연보다 앞서 오는 책
  • 조만수 충북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01.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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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무대 위의 책』 (조만수 지음, 파롤앤, 544쪽, 2022.12)

 

연극은 무엇인가? 연극에 관한 책은 누가 읽는 것일까? 연극은 인접한 예술장르인 문학이나 영화 등과 어떻게 다를까? 『무대 위의 책』은 2003년부터 2022년까지 20년간 우리 연극무대에서 공연된 작품들, 작가론, 연출가론 및 이 시기의 공연계의 쟁점들을 다루고 있는 연극평론집이다. 더불어 위의 질문들에 평론가로서 답하는 책이기도 하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무대’라는 공연의 영역과 그에 대한 글쓰기 즉 ‘비평’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대한’ 책이 아니라, 무대 ‘위’의 책이기를 주장하는 것은 비평과 공연의 관계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재정립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책의 처음과 끝 즉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형식으로 ‘연극비평을 위한 소론’ 1, 2를 배치하고 이를 통해서 ‘무대 위의 책’ 그리고 ‘낯선 아름다움’이라는 비평론을 제시하였다.

흔히 비평은 대상이 되는 작품보다 시간적으로 뒤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비평은 앞서 제시된 대상에 대한 평가의 시도이다. 특히 흥행산업의 성격을 갖는 ‘공연’ 영역에서 비평은 관객들의 선택을 위해서 미리 작품의 미학적 등급을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주기를 기대받는다. 하지만 국내 공연시장에서는 매우 짧은 공연지속기간 때문에 비평이 관객의 선택을 선도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뮤지컬이나 일부 상업극을 제외한다면 공연에 대해 비평가가 그의 해석과 평가를 제시했을 때는 이미 공연은 끝난 후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무대 위의 책』은 비평의 독자를 관객이 아니라 비평의 대상이 되는 작품을 창작한 창작자로 설정한다. 그리고 반드시 해당 작품에 대한 비평가의 해석과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작업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비평이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필자의 비평관은 공연 뒤에 오는 비평이 아니라, 공연보다 앞서 오는 비평이다. 아마도 필자가 드라마터그로서 무대를 함께 만드는 작업을 해온 것은 이처럼 공연에 대한 평가로서의 비평보다는 창작자에게 레퍼런스가 되는 비평을 원하기 때문일 것 같다.

이와 같이 시간적으로 전도된 비평의 방식은 조형예술가 전소정이 8인의 비평가에게 자신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가상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먼저 쓰기를 요청하고 이를 모아 출판했던 프로젝트에 필자가 참여하여 썼던 글 「무대 위의 텍스트」의 시각의 연장선에 있다. 전소정 작가가 비평 Critique이라는 단어를 전도시킨 Euqitirc를 이 프로젝트 비평집의 제목으로 삼았듯이, 작품과 비평의 시간적 관계를 전도시키는 발상은 때로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로 왜곡되거나 냉소적 외면 관계로 변질될 수 있는 창작과 비평의 관계를 서로에게서 영감을 받는 대화의 관계로 이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대 위의 책’은 햄릿이 무대 위에서 있는 책을 상기시킨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2막 2장에서 햄릿은 책을 읽고 있다. 폴로니어스는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햄릿에게 물어보지만 햄릿은 ‘말, 말, 말’이라는 모호한 대답만을 해준다. 그런데 햄릿이 읽고 있던 이 책, 그러니까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대 위에서 햄릿이 읽고 있던 이 책이, 훗날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깊은 숙고 끝에 그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동인일 것이다. 햄릿을 움직이게 하는 책, 그 책에는 무엇이 쓰여 있을까? 비평은 이처럼 창작자를 움직이게 하는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연극비평을 위한 소론 2: 낯선 아름다움」은 비평적 글쓰기의 지향점을 이야기한다. 비평행위는 미궁 속에서 길을 찾는 행위와 같다. 조명이 꺼진 극장과 무대는 마치 어둠 속의 미궁처럼 의미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비평은 마치 조명처럼 이 어둠 속에서 빛이 되려고 한다. 창작자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의미의 망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미노타우로스를 잡기 위해, 그리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오는 아리안느의 실과 같은 해석적 지도를 그리는 것이 흔히 비평가에게 기대되는 것이다. 비평가는 테세우스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연극의 신은 디오니소스이다. 술에 취해 황소의 등에 걸터앉은 디오니소스는 어둠 속에서는 하체는 황소이며, 상체는 인간인 미노타우로스처럼 보인다. 미궁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는 디오니소스를, 그러므로 연극을 죽이는 것이다. 연극평론가는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명증함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연극비평은 문자텍스트와 공연의 실체 사이의 간극이 주는 어둠 속에서 미궁을 더듬는다. 그리하여 연극비평은 말해지지 않는 것, 보여지지 않는 것 속에서 무언의 말들을, 그리고 보이지 않으면서 인지되는 ‘낯선’ 세계에 가닿고자 한다. 낯섦은 타자의 영역에 들어설 때 겪는다. 그리고 절대적인 낯섦은 절대타자, 진리, 이데아 혹은 아름다움의 영역이다. 비평은 의미를 확정짓거나 의미에 다다르는 해석의 지도를 그리기보다는 창작가가 가닿았을 이 낯선 아름다움에 비평가 역시 자신의 언어로 가닿기 위한 행위이다. 그렇기에 비평은 심판자, 판단자의 위치가 아닌 자기 글쓰기의 영역 속에 있다. 그러므로 비평은 비평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평의 대상인 창작자가 바라보는 동일한 지점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속에 비평론을 제시하고 있다면, 1부에는 작가론이 2부에는 연출가론이 담겨있다. 고연옥, 고영범, 박상현, 선욱현, 장우재, 정영욱 6인의 작가론은 대부분 이들 작가들의 작품집에 해설로 썼던 글들이다. 이들 작가들을 선택한 것은 이들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라기보다는 필자 자신이 연극의 본질을 찾는 여정 속에서 이들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2부의 연출가론도 마찬가지이다. 김광보, 김동현, 박근형, 박상현, 박정희, 배요섭, 서재형, 양정웅, 윤한솔, 이성열, 임도완, 최용훈 각각의 연출가들의 연출세계를 관통하는 특성을 찾으려 하지만, 평론가가 찾는 그들의 특성은 그들 자신이 납득하는 세계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세대의 대가들이 아닌 평론가와 세대적으로 차이가 없는 연출가들을 다룸으로써, 평론의 행위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연출가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3부 담론의 무대에서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들뢰즈, 낭시, 랑시에르 등의 철학자들의 담론을 통해 성찰하고 있다. 동일한 작품이 끝없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올라가는 연극의 특성,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에 의해 드러내는 무대의 개념, 그리고 창작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관객의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 그리고 극장이라는 제도, 그리고 국가의 문화정책 속에서의 공연예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4부 ‘무대의 안과 밖’에서는 연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전소정, 전준호 등 조형예술가들의 작품을 ‘무대’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무대라는 개념은 단지 공연예술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외에도 4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연극 장르를 벗어나는 시도들을 살펴본다. 또한 <버닝>,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 영화에 대한 단상 또한 담고 있다. 

5부에서는 24편의 연극 리뷰가 이어진다. 연극은 사라짐의 예술이다. 문학이 문자화된 텍스트를 남기고, 미술이나 영화가 시각화된 이미지를 남긴다면, 연극은 무대 위에서 잠시 구축되었다가 무엇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햄릿이 말하듯 “남는 것은 침묵뿐”이다. 리뷰는 사라진 것을 기억하여 묘사하고 복원하는 작업은 아니다. 리뷰의 형식으로 쓰여지는 연극비평은 이 침묵의 저편으로 사라진 목소리와 대화한다. 마치 햄릿에게 나타나 “나를 잊지 말라”고 외치는 유령처럼 저기 섬광처럼 빛나며 사라졌기에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아름다운 세계가 있음을 연극리뷰는 상기시키고자 한다. 지금은 사라진 우리 연극에서 가장 섬세했던 해석자인 연출가 김동연의 작업들 몇 편이 이 리뷰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이 글을 다시 접하게 될 연극관객들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쓴 필자 자신에게도 기쁨이다.

6부 ‘책 속의 미로’에서는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비평세계를 읽는 작업을 시도한다. 안치운 비평에 대한 비평이지만, 이는 반드시 그의 글쓰기 작업을 평가하기 위한 메타 비평은 아니다. 차라리 안치운 비평에 대한 해석의 시도이다. 이때 안치운은 하나의 텍스트가 되며 두터운 사유의 기호로 이루어진 이 텍스트를 통해서 우리는 무대와 연극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다시 다듬어간다. 결국 안치운의 텍스트는 극장에서 내가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면서, 나의 비평은 다시 안치운이 읽어야 할 책이 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무대 위의 책』은 ‘연극’이라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문화의 한 장르를 다루고 있는 책이기에 많은 독자와 만나기를 기대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감동과 재미를 넘어서 무대 위에서 사라져 버린 낯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읽어내기를 원하는 관객-독자라면 한번쯤 펼쳐 보기를 감히 필자로서 권하고 싶다.


조만수 충북대·프랑스문학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서 프랑스 언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연극에 대한 글을 쓰거나 드라마터그로서 연극 만들기에 참여한다. 남산예술센터 극장드라마터그, 국립극단 희곡우체국장 등을 역임했다. <오슬로>, <서교동에서 죽다>, <햇빛샤워>, <단테의 신곡> 등 40여 편의 작품에 참여했다.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세계고전오디세이』, 『동시대연출가론』 등을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철학자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가 함께 쓴 『무대』를 번역했다. 이외에도 짧은 수필집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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