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어떻게 인류 역사를 창조하고 변화시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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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어떻게 인류 역사를 창조하고 변화시켜 왔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1.29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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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으로 읽는 세계사: 사소한 몸에 숨겨진 독특하고 거대한 문명의 역사 | 캐스린 페트라스·로스 페트라스 지음 | 박지선 옮김 | 다산초당 | 376쪽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특별하고 거대한 계기에 의해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세계사 속 결정적 사건들은 사소하고도 친숙한 ‘몸’에 의해 발생되고, 그 운명이 결정되었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우주시대를 꿈꾸는 지금까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몸’은 어떻게 역사적 사건을 발생시켰을까? 이 책의 저자인 페트라스 남매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낮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수학자 파스칼의 의문에 답을 구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몸’을 통해 바라본 역사 속에서 과거의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얻어냈다.

프리다 칼로는 몸을 관통하는 사고로 인해 척추가 망가져 평생 의료용 코르셋을 착용한 채 살았지만 그로 인해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합스부르크의 턱은 근친혼에서 비롯된 유전적 문제였으나 이들은 근친혼 덕분에 왕권을 쥘 수 있었고, 반대로 근친혼 때문에 몰락해 버렸다. 이렇듯 ‘몸’으로 읽는 역사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사 이면에 숨겨진 비화를 낱낱이 밝힌다.

이 책은 이미 잘 알려진 역사 속 사건이더라도 ‘몸’을 매개로 하여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사건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클레오파트라의 요부 이미지, 조지 워싱턴의 노예 해방이나 미국 최초의 우주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지략가이자 이집트의 훌륭한 위정자였다거나, 조지 워싱턴이 흑인 노예의 치아를 뽑아 썼단 사실이나,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 이륙 전 우주복을 입은 채 소변을 본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수학자 파스칼이 남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어도 세계의 형세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거대한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친숙하다 못해 당연한 ‘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기원전 5만 년 동굴 벽화를 남기던 손은 세계 최초의 예술 행위로 기억되었다. 오래전 사람들은 왜 어두컴컴한 동굴 안까지 들어가 손 그림을 남겼을까? 여러 가설이 존재하나 핸드 스텐실이 ‘인간이 예술을 통해 의사소통한 모든 형태 중 가장 최초’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손은 사람이 태어나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 부위다. 사람은 손으로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손을 사용할수록 뇌가 발달하는 등 손은 인류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렇듯 동굴 벽화를 남기던 고대의 손부터 우주복에 실례를 저지른 지금의 방광에 이르기까지, 세계사 속의 다양한 몸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문화와 가치, 삶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적인 우리의 몸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몸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은 문명사를 뒤바꿀 만큼 큰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초상화 속 마르틴 루터는 항상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마르틴 루터는 중세 말의 전형적인 변비 환자로, 변기 위에 앉아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엉덩이 통증과 경련을 참고, 배변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변기 위에 앉아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교회의 부조리를 깊이 생각했다.

또 다른 흥미로운 몸 이야기도 있다.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보면 앙다문 입이 어딘가 뾰루퉁해 보인다. 그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미국의 독립을 일구어낸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 노예 해방을 외쳤던 영웅이었다. 워싱턴이 명성을 크게 얻을수록 치아 건강은 반비례했기에 나중에는 이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공식 석상의 그는 튼튼한 이를 드러내며 연설을 하곤 했다. 그렇다면 조지 워싱턴은 누구의 치아로 씹고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워싱턴은 흑인 노예를 300명 가까이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틀니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가장 좋은 틀니는 사람의 치아를 그대로 쓰는 것이었고, 멀쩡한 사람의 생니를 뽑았기 때문에 주로 노예였던 흑인들의 이를 뽑아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다시 마르틴 루터와 조지 워싱턴의 표정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가 변비로 인해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과연 종교개혁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조지 워싱턴이 끔찍한 치통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노예 해방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세계사 곳곳에 숨어 있는 몸 이야기에는 다각적인 시선으로 살펴봐야만 얻을 수 있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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